유포리아와 반려 가전 이야기 4. 사업을 하다 보면

알다유포리아성인용품

유포리아와 반려 가전 이야기 4. 사업을 하다 보면

유포리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 이번 화에서는 ‘성인용품 산업’에 대한 언급이 주가 되므로, '섹스 토이' 또는 '반려 가전' 대신 성인용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유포리아는 안전한 셀프 플레져를 성인에게만 허용된 것으로 규정하는 ‘성인용품’이라는 단어와 규제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빻다 [빠ː타]
[동사] 물기가 없는 것을 짓찧어서 가루로 만들다.

 

이 단어는 동사원형 '빻다'에서 '빻았다'로 바뀌면서 사람의 외모를 비하는 말로 변했다. 최근에는 사상이나 생각이 그릇된 사람이나 취향, 대상을 말할 때 쓰인다.

'빻은' 세상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일러스트 이민

2019년이다. 번화가 한가운데 고급 편집샵처럼 진열해 놓은 거대 오프라인 성인용품 가게들이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성인용품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핑크색 시트지로 덮여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후미진 곳의 이상야릇한 가게와 맞닿아 있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여성의 자위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유포리아가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여성의 자위는 남성의 볼 거리나 헤테로 섹스의 곁가지로 여기는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더 지배적이었다. 당시 여성용 성인용품이란 헤테로 섹스 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회사의 사명은 셀프 케어로서의 성의 가치를 전파하고, 성에 대한 편견과 불평등과 싸우는 것이다. 여성들이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안심하고 제품을 살펴보고 구매하여,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성인용품을 둘러싼 많은 제약과 편견, 부정적인 인식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이런 신념을 지켜가며 성인용품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신념을 지킨다는 일은 뻔히 보이는 돈 되는 길을 택하지 않고 에둘러 가는 일이다. 때로는 좋은 광고 기회를 놓치는 일이기도 하고, 카드 결제를 받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며, 돈 되는 상품을 마다하는 일이기도 하다. '빻았지만 돈이 되는' 지름길들을 둘러 갈 때마다 '그래서 운영이 되겠냐'는 걱정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유포리아를 아껴 주시고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 덕에 유포리아는 3년이나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간편 결제도, BC카드 결제도
어렵습니다

유포리아에서는 간편 결제와 BC 카드를 이용한 결제가 되지 않는다. 고객 편의와 매출이 직결되는 쇼핑몰에서 카드 결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매출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여신법에서는 <사행 행위 등 건전한 국민생활을 저해하고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 카드사가 결제를 대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성인용품 결제를 금지하는 조항은 없다. 그러나 이 조항을 이유로 심사를 담당하는 카드사마다 해당 조항에 대한 해석이 달라서 성인용품 결제가 가능하기도, 가능하지 않기도 하다. 바로 유포리아에서 BC카드로 결제를 할 수 없게 된 배경이다. 간편 결제는 PG사나 신용카드사보다 더 보수적이어서 심사에 들어가기도 전에 거절을 당했다.

구체적인 방법을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사실 규제를 에둘러 갈 수 있는 길은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유포리아는 성인용품이 ‘건전한 국민생활을 저해하고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라고 해석하는 시각에 분명히 반대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해석에 반대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거짓말을 해서 심사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BC카드 심사에는 거절당하고 말았다.

모든 카드사에서 결제를 받고 있는 타 업체들이 모두 꼼수를 썼다는 의미는 아니다. 성인용품에 대한 카드사 심사 기준은 명확하지 않아서 가입 심사를 할 때 마다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모든 카드사 승인이 될 때까지 PG사를 바꿔가며 여러 차례 심사를 요청했다면 전 카드사에서 결제 승인을 받을 수도 있다.

반면에 오픈 마켓에서 판매되는 성인용품들은 이미 오픈 마켓의 결제 시스템을 통해 모든 카드사 결제는 물론, 온갖 간편 결제를 이용하여 편리하게 결제를 할 수 있다. 직접 운영하는 소규모 쇼핑몰에게만 주어지는 불평등한 규제인 것이다. 유포리아는 조만간 법제처에 해당 조항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할 계획이다.

수상한 광고 제안

어느 영업일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의례적으로 걸려오는 CS콜과는 조금 다른 전화였다. 업무제휴를 앞세운 일종의 광고 게시 권유 전화였던 것이다. 그 업체는 100만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커뮤니티라고 자랑스레 소개하며 광고를 제안했다.

성인용품 업계는 마케팅이나 광고를 한다는 것이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업계이다. 블로그 운영은 물론이고, 구글, 유튜브,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등 다른 업계에서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수단들이 거의 다 막힌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업종상의 어려움으로 마케팅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걸려온 전화라 무슨 내용이든 일단 끝까지 들어는 볼 생각이었다.

  1. 회사의 푸시로 광고 게시글 당 몇천~몇만 조회수가 보장되기에 구매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 점.
  2. 큰 업체 두 곳이 단독 게시판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미 여러 업체가 입점한 점.
  3. 입점비 nnn 만원이면 커뮤니티에 배너 삽입과 게시글 관리, 유저 이벤트까지 열어준다는 점.
  4. (수익 구조를 묻자) 월 매출 5억 원 이상의 회사라서 걱정 마시라는 말까지.

해당 업체가 말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매출 향상에는 도움이 될 만한 홍보 기회일 터였다. 성인용품 판매 업체로서, 어찌 되었든 광고를 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귀하기에 혹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귀한 홍보 제안을 고민도 하지 않고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업체가 토렌트 공유 사이트에서 파생된 커뮤니티였기 때문이다. 토렌트 커뮤니티라는 것을 알고 나니 월 5억원의 매출이 어디에서 왔는지 명확해졌다. 성범죄 동영상을 공유하고 저작권자에게 정당히 지불되었어야 할 몫을 빼앗아서 만든 검고 어두운 돈일 것이다.

월 매출 5억원이라는 까마득한 단위를 듣다 보니 문득 그런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된다. 잠시만 눈을 감으면, 조금만 타협하면, 남들과 비슷하게 흘러가면 살기 편하다는 이야기들 말이다. 제안에 응한다면 분명 유입율도 늘어날 것이고 평소의 필드보다 확장된 고객층이 새로 생겨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소중한 기존 고객분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가 될 수도 있다.

최소한 우리만은
그렇게 하기 싫다

일러스트 이민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도 모를 이야기. 이 바닥의 생리가 그렇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거라고 회사 운영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는 충고(?)를 받을 수도 있을 일이다. 자극적인 이미지와 제품 사용 영상을 만들어 배포하거나 선정적인 문구로 마케팅을 하면 제품이 잘 팔리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트위터의 19금 관련 계정들이 수많은 제품 협찬을 받는 것도 같은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투자로 글로벌 포르노 사이트에 광고 배너를 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인스타그램보다도 트래픽이 높은 글로벌 포르노 사이트에 광고를 냈었다면 분명 치열한 고민 없이도 지금보다 훨씬 높은 매출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 하나만큼은 소신을 가지고,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서비스에 돈을 보태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다. 영리 기업인 만큼 이익을 추구하지만 우리의 신념을 지키며, 합당한 가격과 품질로 고객과 웃으며 상생할 수 있는 기업으로 남고 싶다.

남 탓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은 그것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일이다. 시장 구조나 환경만을 탓하기보다 우리 자신을 제어하고 가다듬는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적인 내 안의 빻음과 싸우는 일, 우리가 하는 일은 매 순간 그런 일이었다.

개개인의 성이 안전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며, 더욱 많은 하이테크놀로지로 무장한 기발하고 즐거운 제품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싶다. 타협하지 않아도 작지만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다.

더 많이 만나고 이야기 나누길 바라며, 잊고 살던 내 몸의 즐거움들을 함께 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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