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포리아와 반려 가전 이야기 6. 이렇게 싸게 팔면 어떡해

알다유포리아반려 가전

유포리아와 반려 가전 이야기 6. 이렇게 싸게 팔면 어떡해

유포리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지난 이야기

기성 업체와의 차별점을 정면으로 언급하며 유포리아와 거래하라는 제안은 당돌한 도전이었다. 그리고 남성 중심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제안은 도박이었다. 그 동안 시장이 그렇게 돌아간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 그 방식이 편하게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정적으로 좋은 판매량이 나오기 때문에…. 이유야 많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누구에게나 정답일 수는 없다. 새티스파이어가 기존의 방식대로 운영하는 것을 선호한다면 내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미팅은 대성공이었다. 상하이로 떠난 첫 출장에서, 유포리아는 새티스파이어와 수입 계약을 체결하게되었다.

알고 보니 새티스파이어의 모회사는 사업 초창기 성생활용품 시장의 기존 질서에 부딪히고 여러 경쟁 업체들의 견제를 받았지만, 합리적 가격과 품질으로 결국 큰 성공을 거뒀던 경험이 있었다. 그런 만큼 새티스파이어의 모 회사와 그 산하의 모든 브랜드들은 합리적인 가격과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는 것에 기업 가치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새티스파이어의 과거를 보는 것 같은 유포리아의 모습에, 부사장은 유포리아가 성공할 것을 확신한다면서 국내 최초로 제품 유통을 약속하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때까지 있는 줄도 모를 정도로 전혀 존재감이 없던 유포리아가 갑자기 대형 브랜드의 유통 파트너가 되어 등장하자 업계에서는 내가 새티스파이어의 간부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이야기도 돌았었다고 한다. 그만큼 뜬금없는 행운이었다.

그렇게 유포리아는 새티스파이어의 첫 한국 유통 파트너사가 되었다.

너무 싸서 문제라고?

첫 상하이 출장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드디어 중국 생산 공장에서 제품을 바로 공급 받게 된 유포리아!

유통 단계가 한 단계 줄어 구매 단가가 낮아진 것은 물론, 유럽이 아닌 중국에서 바로 배송을 받으니 운송비와 운송 시간도 크게 단축되었다. 재고를 넉넉하게 확보하여 소비자들은 더 이상 피켓팅을 하지 않아도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헬조선 표준 가격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글로벌 표준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제조사와의 직매입을 통해 드디어 제조사가 제시한 글로벌 권장 소비자 가격에 맞춰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 새티스파이어 프로2의 판매가는 8만원!

넉넉한 재고와 저렴한 가격 덕분인지 초라한 유포리아의 쇼핑몰에도 방문객이 늘어나며 회사가 차츰 성장해가는 것을 실감하던 때에, 여러 업체에서 같은 내용의 전화가 걸려왔다.

유포리아의 새티스파이어의 판매 가격이 너무 낮다는 것.

새티스파이어 본사에서는 이미 권장 판매가를 정해 두었고, 유포리아는 그 가격에 맞춰서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너무 비싸다는 것도 아닌 너무 저렴하다는 이유로 항의를 받다니.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네? 너무 비싸다고요?” 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말았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유포리아가 글로벌 표준 가격으로 새티스파이어를 판매하는 것 때문에 새티스파이어를 원하는대로 비싸게 팔지 못하게 되자, 기존 제품들처럼 큰 마진을 볼 수 없게 된 일부 업체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었다. (업계에서 아주 오래 영업하신 몇몇 기성 업체의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온·오프라인 점주님들은 친절한 설명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십니다.)

일러스트 이민

대놓고 담합하자고???

어떤 대형 업체는 국내 시장의 실정을 이야기하며 가격 인상을 설득하려 하였고, 모 지역 업계를 꽉잡고 있다는 어떤 업체는 그보다 더 노골적으로, “다 같이 비싸게 팔아서 재미 좀 보겠다는데 그 쪽 때문에 영업을 할 수가 없다”며 언성을 높였다.

성생활용품 업계도 몇 년 사이에 많이 변모하여, 요즘은 도소매 할 것 없이 합리적인 가격과 좋은 제품을 갖춘 수 많은 업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시장을 꽉 장악하고 있던 ‘고인물’ 기성 업체들의 입김이 대단하던 시기였다.

적당한 가격이 얼마라고 생각하시냐는 내 물음에, 새티스파이어 프로2는 18만원에는 팔아야 영업이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미 8만원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같은 제품을 갑자기 18만원에 팔아달라니. 너무나 당당한 가격 담합 요구에 1차 충격, 황당한 가격에 2차 충격을 받았다. 당연히 내 대답은 거절이었다. 이 때부터 몇몇 업체들과 유포리아는 건널 수 없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반목하게 되었다.

시장이 경쟁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결국은 유포리아와 기성 업체의 경쟁과 끝없는 신경전 끝에 우리나라에서도 직구 가격과 비슷한 수준에 새티스파이어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새티스파이어를 저렴하게 구매하실 때면 합리적인 가격을 지키기 위해 기성 업체와 맞선 유포리아를 스쳐 지나가듯이 한번 정도는 떠올려 주시기를 소망해본다.

강렬한 채플의 추억

새티스파이어가 없으면 유포리아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새티스파이어는 유포리아의 영업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홍콩, 하노버, 베를린, 상하이, LA… 전 세계 모든 산업 박람회는 말 할 것도 없고, 나는 새티스파이어 대표와 부사장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쫓아다녔다. 

때는 2017년 여름. 이른 창업 때문에 졸업이 늦어진 나는, 이제서야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방학 겸 휴가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보내고 있었다. 혹시 만나줄까 싶은 마음에 뉴욕에서 일하는 부사장에게 '근처를 여행 중'이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내가 정말 근교에 있다고 생각한 그는 며칠 후에 만나서 점심을 먹자고 제안하였다.

사실 나는 뉴욕에서 사실 비행기로 7시간 거리에, 시차도 3시간이나 날 정도로 먼 곳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졸지에 '근처'에 있다가 뉴욕까지 점심 먹으러 잠깐 놀러 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 나는, 부랴부랴 최저가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해서 뉴욕으로 향했다. 점심 약속 전날 밤에 도착해서 짐을 풀어놓고 좀 쉴까 – 하고 침대에 누운 찰나, 한국에서 로밍 전화가 걸려왔다.

어쩐지 낯이 익은 전화번호.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일러스트 이민
안녕하세요. OOO대 교목실인데요. 채플 대체 과제로 낸 리포트 분량이 부족해서 반려되었습니다. 오늘 안으로 꼭 보강해서 제출해주세요.

네… 네????

내가 나온 모교는 한 학기에 한 번씩 꼭 채플을 이수해야 졸업을 할 수 있었는데, 누구나 그렇듯 나도 아침 일찍 가야 하는 채플에 다 출석하지 못했다. 마지막 학기에 급하게 채플을 다섯개나 들으며 누구보다 영성 넘치는 한 학기를 보냈지만, 그러고도 결국 졸업 학점에 채플 한 학점이 부족해져 버린 것이다.

채플 때문에 한 학기를 더 다닐 수는 없는 법. 결국 채플을 성실하게 이수하지 못한 죄로 감상문을 쓰는 형벌을 받고 말았다. 그런데 미리 제출했던 감상문 과제의 분량이 부족하다며 반려 전화가 온 것이다. 당일 교목실이 퇴근하기 전까지 꼭 분량을 보강해서 제출해야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다는데, 시차로 인해 뉴욕은 이미 한밤중이었고 그 말은… 새벽 5시까지 과제를 제출하지 않으면 졸업을 못 한다는 뜻이었다.

당시 채플 과제는 10개의 감상문을 각각 2페이지씩 총 20페이지 써서 내야 하는 과제였는데, 내가 각 감상문의 마지막 페이지들을 2/3만 채웠다며 과제를 반려한 것이다. 나는 5시까지 10개의 감상문을 마지막 한줄까지 꽉 채워서 과제를 다시 제출해야 했다.

뉴욕의 시간이 갑자기 빠르게 흘렀다.

유포리아는 무사히 과제를 끝내고 졸업을 했을까요? 아니면 모교에서 영성 넘치는 한 학기를 보냈을까요? 다음 회에 계속!

 

유포리아님의 글은 어땠나요?
1점2점3점4점5점
SERIES

유포리아와 반려 가전 이야기

콘텐츠 더 보기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