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포리아와 반려 가전 이야기 2. 파란만장 대리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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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리아와 반려 가전 이야기 2. 파란만장 대리구매

유포리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애초에는 귀국일에 맞춰 첫 발주를 한 후 미국에서 제품을 수령해서 귀국길에 가져가서 보내 드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비행기를 함께 타기에는 제품이 생각보다 많았다. 결국 몸은 비행기를 타고, 제품은 페덱스로 한국에서 받아보는 것으로 결정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 때는 몰랐다… 페덱스로 보낸 화물이 그렇게 많은 문제를 초래할 줄은.

첫 수입 화물,
네덜란드에서 서울까지
두달여 간의 대장정

일러스트 이민

결론부터 말하자면, 8월 11일 네덜란드를 출발한 화물은 10월 14일에서야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네덜란드에서 인천공항까지는 단 나흘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인천공항에서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데 두 달이나 걸린 셈이다. 화물의 전체 경로는 아래와 같다.

“도대체 뭐 하느라 통관에 두 달이나 걸렸어요?”

지금 설명해보려고 한다.

반려가전 직구 시 주의할 점,
유포리아의 실패 사례로 알아보자!

첫번째, 3개 이상의 섹스 토이 수입은 무조건 사업자만 가능하다.

화물이 나보다 빨리 입국하는 바람에 미국에서 열심히 새로고침을 누르며 배송 조회를 하던 그 때, 한국에서 한 통의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지역번호는 032.

“안녕하세요, 페덱스 통관과입니다. 혹시 수입하시는 제품이 성인용품인가요?”

순간 ‘엥? 무슨 물건을 사는지 운송업체에 보고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통관과에서 물어보는 것이니 일단은 답변해야 했다. 나는 친구들을 대신해서 대리 구매를 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고 말았다.

“성인용품은 개인 자격으로는 2개까지만 수입이 가능합니다. 2개를 초과할 경우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으면 모든 제품을 폐기하거나 반송시켜야 합니다.”

폐기라니! 반송이라니!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제품을 반송시키게 되면 첫 고객을 실망시키는 것은 물론, 네덜란드부터 한국까지의 왕복 운송료의 상처만 남긴 채 사업을 접어야 한다. 폐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사업자 등록 신고를 했다. 15일에 인천 공항에 도착한 화물이 이미 일주일이나 공항에 갇혀 있던 시점이었다.

사업자등록을 마치고 페덱스에 사업자등록증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곧 제품을 받아볼 수 있겠지?

오산이었다.

두번째, 최초로 수입되는 성인용품은 미풍양속을 해치지 않는다는 관세청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사업자 등록은 마쳤지만 두 번째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성인용품 심의위원회.

성인용품 심의위원회란, 관세심사위원회가 수입되는 성생활용품들이 미풍양속을 해치지 않는지 심사하는 제도이다. 국내에 최초로 수입되는 성생활용품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진행되는 심의위원회를 거쳐 심사를 받아야 추후 수입이 가능하게 된다.

들여오는 제품 중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할 만큼 저속한 제품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고 심의위원회 접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들려온 충격적인 소식.

“8월 심의위원회는 이미 마감됐고요. 9월에 접수해야 됩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심의위원회는 매달 20일 경에 접수를 마감해서 그 다음달 10일 경에 심의를 마치는데, 8월의 심의위원회 접수는 사업자등록을 마친 22일에 이미 끝난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9월 20일까지 다시 기다려서 심의위원회 접수를 한 후 10월 10일은 되어야 통관이 완료되어 제품을 받아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청천벽력,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다.

이미 입금을 받은 시점으로부터 20일이나 지났는데 한달 반을 더 기다려야 한다니. 도대체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장문의 지연 안내 문자를 보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환장의 한달 반이 지나고, 10월 13일 드디어 통관이 완료되었다. 오매불망 화물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던 나는, 도착한 택배 상자를 받아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세번째, 택배 상자에 제품명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당시 상자가 없어 최근 직수입 상자를 찍어보았다. 이 정도로 적나라하다.

사실 섹스 토이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입장에서 상자에 섹스 토이 이름이 쓰여 있다고 문제가 될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섹스 토이 = 비밀배송’은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니던가? 택배 상자에 섹스 토이 이름이 고스란히 적혀 있는 것은 꽤 충격적이었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관세법상 수입 신고를 위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화물에는 품목과 수량이 정확하게 기재되어야 했던 것이다. 판매 국가 내부에서는 완벽한 비밀 배송을 약속하는 업체라고 해도, 적법한 수출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절차였던 것.

나는 깊은 사죄와 함께 제품을 비밀스럽고 정성스레 재포장하여 보내드리며 유포리아의 첫 주문을 마감했다. 8월 11일에 시작한 유포리아의 첫 수입 대장정이 두 달 만에 드디어 마무리된 것이다.

가격이 저렴하니까, 국내에는 없는 제품들이 있으니까. 섹스 토이를 해외에서 직구할 이유는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국내 구매를 하고 계신 것은, 위에 설명한 문제점들을 포함한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려운 점들을 무릅쓰고 섹스 토이 직구를 시도하고자 하시는 용감한 분들을 위해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남겨본다.

일러스트 이민

1. 직접적인 성도구가 아닌 경우 성인용품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BDSM 제품들은 성인용품으로 분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직접적으로 성기 혹은 항문에 사용하는 제품이 아닌 구속구 (안대, 로프, 본디지 기어, 본디지 테이프 등)와 스팽킹 툴의 경우 성인용품으로 분류되지 않고, 제품의 소재와 목적에 따른 별도의 HS코드로 분류되어 관세법상 성인용품에 포함되지 않는다.

2. 미풍양속을 해치는 제품이 아니라면 통관은 된다! (...어떻게든.)

불운하게도 심의위원회를 거치게 되더라도 너무 우울해 할 것은 없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그래도 한국사회에 심각하게 미풍양속을 해치는 정도의 제품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통관이 된다. 통관이 되지 않는 품목의 예시를 들자면 전신 섹스돌 정도.

성인용품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예전보다 합법적인 업체들도 많아지고 그에 따른 정품 토이를 구매할 수 있는 폭도 넓어졌다. 이미 정식 수입이 된 제품들은 이제 전처럼 조마조마하며 직구를 하지 않아도 안전하고 빠르게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해외에는 여전히 국내에는 수입이 되지 않은 다양한 제품들이 소비자의 소장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직구 시 주의사항을 꼼꼼히 체크하고 준비했다면 겁내지 말고 해외 직구를 시도하길 바란다. 때론 바다를 건너 온 다양한 취향의 토이들과 함께 늘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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