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포리아와 반려 가전 이야기 7. 반려 가전 엑스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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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리아와 반려 가전 이야기 7. 반려 가전 엑스포 (1)

유포리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 [전송] !

아침녘이 밝아올 때 쯤, 나는 간신히 채플 과제를 마지막 한 줄까지 꽉꽉 채워서 제출할 수 있었다. 예배를 듣기 위해 등록금을 내고 한 학기를 더 다닐 위기에서 벗어난 것이다. 어렸을 때에도 공짜 점심과 달란트에 혹하지 않고 종교 생활을 멀리했던 내가 돈을 내고 예배를 들을 생각을 하니 막막했던 마음이, 과제를 마치자 노곤노곤 풀어졌다. 드디어 진짜 졸업이라고 생각하자 모 소화제 광고처럼 속이 후련해졌다. 긴장이 풀려 솔솔 잠이 왔다. 가벼운 마음으로 몇시간 쪽잠을 잔 후 드디어 점심을 먹으러 떠났다.

근처에 있다가 점심 먹으러 온 줄 알았던 내가 7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것을 알자, 예상대로 새티스파이어 부사장은 깜짝 놀랐다. 나의 열정(?)에 감명을 받은 것인지, 점심 미팅은 캐쥬얼하고 매끄럽게 흘러갔다. 맛있는 식사를 얻어먹고 나는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갔다.

세계 속의 유포리아

이렇게 나는 점심 한 끼를 먹기 위해 뉴욕까지 날아갈 정도로 새티스파이어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필사적이었다. 당연히 새티스파이어가 참석한다는 전 세계의 유명 산업 박람회와 업계 이벤트도 빠짐없이 따라다녔다. 

전 세계를 다니다보니 해외의 트렌드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새티스파이어가 아닌 전세계의 여러 제조사들과 친분이 생겼다. 그 사이 유포리아는 무럭무럭 성장했고, 엑스포를 따라다니며 얻은 명함들과 친분을 이용하여 새티스파이어 외에도 많은 해외 유명 제조사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유포리아를 믿고, 국내 독점 총판권을 주는 회사도 생겼다. 감동적인 성과였다.

유포리아가 해외 엑스포들을 다니면서 좋은 성과를 냈다는 소식을 들어서일까? 예전에는 대형 도매 총판 업체들만 해외 엑스포를 다녔지만, 요새는 일반 소매업체들도 해외 엑스포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업계인이 아닌 일반 소비자들도 성생활용품 엑스포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 일반 산업박람회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하곤 한다. 성생활용품 엑스포는 업계인들에게는 성장의 기회이자 배움의 장으로, 소비자들에게는 비밀스러운 던전(?) 같은 공간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그래서 풀어본다. 국제 성생활용품 박람회 이야기.

일러스트 이민

성적 대상화

* 이하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화하는 성인용품의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성인용품을 비판하기 위해 유포리아가 가진 자료를 실었으나, 불쾌하실 수 있어 미리 경고합니다.

 

엑스포에 다녀왔다고 하면 듣는 질문 1위.

빻았지?

빻았다. 완전 빻았다. 하지만 처음에는 주류를 차지하던 제품들이, 점점 구석으로, 위층으로 밀려나고 신체를 대상화하지 않는 산뜻한 디자인의 제품들의 비중이 커지는 것을 매년 실감하고 있다.

2017년 상하이 성산업 엑스포에서 직접 촬영

2017년 처음으로 참석했던 엑스포에는 미취학 아동 나이대의 여자 아이를 본뜬 섹스돌과, 여성의 신체를 조각조각 파편 내어 성기를 덧댄 오나홀이 한층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았다. 너무나 참담한 광경에 여성의 존엄성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페티쉬는 개인의 취향이고, 페티쉬를 실리콘 제품에 해소하는 것뿐이지 실제 여성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성기 모양의 딜도와 다를 것이 뭐냐는 의견도 많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자위는 상상을 대입하는 행위이므로 성기 모양의 제품이 존재하고 사랑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티나지 않는 디자인을 선호하는 고객들도 있지만 성기와 최대한 유사한 제품을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보지, 자지 모형의 제품들은 다양한 취향에 맞춰 경도와 사이즈가 다양할 수도 있다. 유포리아는 성기 모양의 제품을 취급하지 않고 있지만, 그 존재 자체에 반대할 수는 없다. 다만 성기 모양이 아닌 제품들을 최대한 많이 공급하여 다양한 선택권을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성기 모형이 맥락을 입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자위 기구를 만드는 회사가 제품에 특정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은, 그 자체로 ‘로리콘’을, 옆집 대학생을, 헬스 트레이너를 같은 사람이 아닌, ‘딸감’으로 보라는 강력한 설득의 메시지가 된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딜레마처럼, 수요가 공급을 만들며 공급이 수요를 부추기는 과정이 반복되며 여성이 물화된다.

발 페티쉬가 있다고 해서 존재하지도 않는 ‘발보지’와 섹스를 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손과 발, 귀에 존재하지도 않는 성기를 우겨 넣는 것은 페티쉬가 아니다. 여성의 파편화된 신체를 오나홀화 하는 것은, 여성의 온 몸은 남성이 ‘따먹을’ 수 있는 보지나 다름없다는 일종의 영토 선언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전신 섹스돌의 국내 수입이 전면 허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는 미성년자를 성적 대상화 한 제품을 규제할 수 있는 법이 없다. 그 동안은 다소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이지만 ‘국민 정서’와 ‘미풍양속’이라는 기준에라도 기대어 전신 섹스돌의 수입을 막아 왔었는데, 전신 섹스돌의 수입이 허용된 지금, 어린 아이의 신체와 성기를 본뜬 전신 섹스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미 “로리콘” 그림이 새겨진 오나홀이 판매되고 있고, 이제는 전신 섹스돌마저 허용되었는데 무슨 수로 로리콘 전신 섹스돌의 수입을 막을 수 있을까?

좋은 소식은 우리나라가 후퇴하는 사이, 점점 이러한 제품들이 국제 성산업의 메인 스트림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섹스돌, 노골적이고 불쾌한 모양의 제품들이 2/3이상이었다면, 요새는 그 규모도 비중도 많이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해외에서 여성을 대상화하는 제품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2018년, 독일 Erofame에서 직접 촬영

다음 화에는 성산업 엑스포의 요모조모! 볼 거리와 먹거리, 그리고 유포리아 사장이 겪은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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