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포리아와 반려 가전 이야기 5. 방구석 유포리아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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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리아와 반려 가전 이야기 5. 방구석 유포리아 성장기

유포리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유포리아는 새티스파이어가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본금도 없이 월세 30만원 자취방 서랍장에서 시작한 보따리상(?)이, 2년만에 해외 25개 브랜드의 국내 총판이 되기까지. 새티스파이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Before 자취방 쇼핑몰 (2016년)

After 유포리아 가산 물류창고 (2018년)

번듯한 매장도, 홈페이지 하나도 제대로 없었던 방구석 쇼핑몰 유포리아가 어떻게 새티스파이어의 한국 유통 파트너사가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일러스트 이민

계란으로 바위치는 이야기,
유포리아 새티스파이어 수입기

2016년 가을, 내가 섹스토이 사업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페이스북 친구들만 알음알음 알고 있던 때였다. 거래 중이던 외국의 도매 회사에 혜성같이 신상품이 등장했다. 이름하야 새티스파이어 프로 2.

첫 출시 당시 투박한 새티스파이어 프로 2의 모습

번쩍번쩍한 구리색 몸체와 검정 패키지, 예쁘다고 하기는 어려운 모습이었지만 에어 석션 테크놀로지라는 신기술은 소장욕구를 일으킬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던 우머나이저의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비슷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니. 지갑을 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마침 페이스북 지인 중 한 명이 새티스파이어의 구매 의사를 밝혔다. 내 꺼 하나, 고객님 꺼 하나. 부랴부랴 새티스파이어를 발주했다.

새티스파이어를 받아본 지인 고객님은 새티스파이어를 사용해보시고는, 그 특허 받은 신기술에 감동의 유레카를 외치고야 말았다. 어디에? 그 분의 네이버 블로그에. 네이버에 새티스파이어를 검색하면, 1페이지 가장 윗줄에 떡하니 지인 고객님의 블로그가 노출되었다.

때는 마침 우머나이저의 유명세에 힘 입어 새티스파이어라는 외국 문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국내에 새티스파이어를 수입하는 회사는 전혀 없었고, 섹스토이 해외 직구에 대한 두려움과 온갖 실패사례들이 인터넷에 난무하고 있었다. 글을 올린지 며칠 되지 않아 고객님의 블로그에 구매처를 묻는 수십통의 쪽지가 쏟아졌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도 있는 법. 나는 노를 젓는 뱃사공의 심정으로 열심히 물건을 사다 날랐다. 열정적인 고객님들은 해외 구매 대행 방식이므로 선입금 후 약 2-3주 정도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내 안내에도 전혀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판매를 몇 번 반복하니 입소문을 타고 더 많은 고객님들이 모여들었다. 자금도 어느 정도 모여, 선입금을 받지 않아도 미리 제품을 구매해서 판매할 여유도 생겼다. 돈이 모이는 대로 계속 제품을 사들였다. 그래도 늘 재고가 부족했다. 입고 1초만에 품절이 되는 일이 예삿일이었다. 새티 피켓팅(피 튀는 티켓팅)이라는 말도 돌았다.

‘이 정도 수요면 유럽에 있는 도매회사에서 제품을 들여오지 않고 공장에서 바로 들여오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가 경쟁력도 확보하고 유럽에서 한국으로의 항공 특송 배송비도 아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용기 내서 제조사에 공식 홈페이지에 적힌 이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냈다.

똑똑… 계세요?

일러스트 이민

이메일을 보냈다. 기다렸다. 세일즈 팀으로 포워딩 하겠다더니, 나의 이메일은 곧 공중으로 증발했다. 다시 한 번 이메일을 보냈다. 또 기다렸다. 드디어 세일즈 팀에 연결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열심히 자기소개를 했다.

이메일은 오가는데, 이상하게 알맹이는 없이 겉돌기만 했다. 제대로 된 결론은 나지 않고 시간만 흐르는 것 같았다. 몇 달간 이메일을 주고받았지만 단가표나 구매 조건에 대한 논의는 시작되지도 않았다. 만나자는 이야기도 없었다.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는 동안 우리처럼 병행수입으로 국내에 새티스파이어를 취급하는 다른 회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불안해졌다. 분명 그 회사들도 새티스파이어를 공급받으려고 제조사에 연락을 했거나, 하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오가는 이메일 속에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 회사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을. 사실은 나조차 확신이 없었다. 유포리아는 직원 한 명 없는 1인 회사였다. 발주도 통관도 나 혼자, CS도 나 혼자, 포장도 자취방 한 구석에서 나 혼자 하고 있었다. 자료 조사, 내용 정리, PPT 발표 모두 내 이름만 적힌 끔찍한 조별과제를 하는 기분이었다. 제대로 된 회사 소개서도, 회사 쇼핑몰도 없었다. 그럴싸한 매장은커녕 사무실도 없었다. 개업한지 반년도 되지 않아 증명할 수 있는 매출도, 제대로 된 자본도 없었다.

이런 처지에 무작정 제품을 공급해달라고 이메일을 보내는 나도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새티스파이어는 이미 대기업이었다. 돈만 준다고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는 회사에 이메일 하나만 읽고 소중한 브랜드와 제품의 유통을 맡길 리가.

그러던 중, 이메일이 왔다. 

4월에 상하이 산업박람회에서 만날래?

그럼요! 당연하죠! 네네치킨!! 곧장 달려가고 말고요!

그 자리에서 중국 비행기 티켓을 발권했다. 비자도 신청했다. 돈이 부족해서 만나기로 한 호텔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저렴한 지역 호텔을 예약했다. 그래도 설레었다.

출장 일정이 하루하루 다가왔다. 중국에 도착하면 만난 자리에서 무조건 담당자를 설득해야 했다. 준비 없이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왜 유포리아와 거래해야 하는지 정리해서 구매 제안 PPT 파일에 하나씩 적었다. 피, 땀, 눈물 그리고 영혼을 갈아 넣어 PPT를 만들었다. 어느새 출국일이 되었다.

첫번째 여정 – 중국 상하이

일러스트 이민

상해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방문한 산업박람회는 정말 처참했다. 토막 시체처럼 여기저기 신체가 잘린 모양의 오나홀이 즐비했다. 미취학 아동 정도의 어린 아이를 묘사한 전신 섹스돌, 잘린 발과 손 모양 오나홀, 교복 입은 섹스돌…. 도저히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괜찮은 제품들도 많이 있었지만, 비윤리적인 섹스돌로 인해 비위가 상해서 도저히 더 둘러볼 정신이 들지 않았다. (산업박람회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추후 에피소드에서 소개하겠다!)

산업 박람회 일정을 마치고 메일을 주고 받던 담당자를 만났다. 그 담당자는 알고보니 새티스파이어의 부사장이었다. 그는 중성적인 내 이름 때문에 남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20대 여성이 나와서 놀란 눈치였다. 나는 노트북을 꺼내 준비해 온 PPT를 띄워 놓고 부사장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1. 국내에 처음으로 새티스파이어를 소개한 유포리아의 순발력과 안목
  2. 광고 하나 없이 입소문만으로 올린 엄청난 판매량
  3. 당시 국내에 새티스파이어를 판매하고 있는 업체들 중 KC인증을 받은 업체는 유포리아가 유일하다는 적법성과 신뢰성
  4. 높은 유통 마진으로 인해 국내의 기성 도매 업체들과 거래하면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새티스파이어의 큰 장점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전망
  5. 우리나라의 성생활용품 산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성장세
  6. 섹스토이 시장의 소비 주체가 여성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경향
  7. 그래서 높은 유통 마진으로 소비자가를 높이고, 여성을 대상화 하는 제품과 이미지를 사용하는, 미인증 불법 제품을 판매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기성 업체가 아니라, 유포리아와 거래해야 한다는 결론.


기성 업체와의 차별점을 정면으로 언급하며 유포리아와 거래하라는 제안은 당돌한 도전이었다. 그리고 남성 중심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제안은 도박이었다. 그 동안 시장이 그렇게 돌아간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 그 방식이 편하게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정적으로 좋은 판매량이 나오기 때문에…. 이유야 많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누구에게나 정답일 수는 없다. 새티스파이어가 기존의 방식대로 운영하는 것을 선호한다면 내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과연 유포리아의 진정성은 새티스파이어를 설득했을까?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상하이 출장의 결말, 그리고 새티스파이어 사장과 부사장을 만나기 위한 수많은 여정 – 홍콩, 하노버, 베를린, LA, 뉴욕을 소개합니다. 집념과 끈기의 유포리아와 다음 편도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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