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마음이 춥습니다. <핀치>에 ‘무정의 우대’ 시리즈를 마지막으로 기고한 지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이 시리즈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박보검’ 편을 1년 동안 썼습니다. 변명을 대자면 끝이 없지만, 미뤄지게 된 가장 큰 이유를 두 가지 설명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제가 올해 초 <프로듀스 101 시즌2>를 보면서 ‘본격적인 남자 아이돌 팬덤’을 실시간으로 경험해버린 것이 이유입니다. 온갖 리얼리티를 미친 듯이 보는 시청자가 저의 또 다른 직업이지만, 그렇게까지 광기 어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시청하는 모두가 ‘방송국도, 시장도, 산업도, 사회도, 국가도, 그리고 이거 보는 나도 망해라!’ 라고 자학하는 경험은 다시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여간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그러고 앉았을 때 저의 개인 SNS 익명 폼에 ‘조인성은 이제 파양 하셨나요?’ 라는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약간 ‘띠로리’ 였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81년생 남자배우의 ‘애미’였던 것임을 그제야 자각한 것입니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습니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수록 슬퍼진다는 것을 알고 나니 몸이 아팠습니다.
두 번째 변명도 비슷합니다. 저는 유아인을 좋아했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말 아니, 하면 안 되는 말을 하는 사람이(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원래 안 그랬던 거 같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게 문제였던 겁니다. 함부로 어떤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말이나 글로 옮겨놓는 행위가. 전 진짜 아직도 정말 왜 그랬던 건지 궁금합니다. 그 뒤론 숨쉴 때 마다 걸을 때마다 생각하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제발 쉽게 넘어가지 말자고. 제발 호들갑 좀 그만 떨자고. 정말 반성합니다.
닮은 사람
제가 박보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소위 ‘남친짤’을 통해서였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한국의 젊은 남자배우들을 참 좋아해서 소위 ‘알탕’과 ‘브로맨스’ 영업이 쏟는 대로 먹히는 사람이었는데, 어떤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 인터넷에 뿌려진 사적인 사진만으로 인물을 좋아하게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사진 몇 장을 휴대폰에 저장하면서 ‘이 사람 조인성 닮았어’ 하는 마음이 저를 진정시켰습니다. 저는 이 시리즈를 통해서 조인성에 대한 저의 넘치다 못해 좀 안쓰럽게 보이는 마음을 횡설수설체로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절대 다시 읽지 말아주세요)
조인성은 제가 거의 20년째 ‘파양’하지 못한 저의 아이돌입니다. 그 사람을 닮은 93년생 남자배우가 나타나다니 왜인지 좋아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까지 생겨났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냥 제가 좋아하는 얼굴이라서 좋아했단 것이고 언제나 그것이 제 내적 번민의 시작인 것입니다. 무안해서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단서를 달면 달수록 저 사실만 더 확실해질 뿐입니다. 반성합니다.
목동
어떤 사람을 떠올릴 때 그 사람의 출신 혹은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재미있으면서도 허무한 일입니다. 이렇게 좁은 땅에 살며 지형과 개인 사이를 메워보는 일은 억지에 가까우니까요. 그럼에도 지역정보는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 놓칠 수 없는 단서입니다. 저는 천호동에 가면 조인성을 생각하고, 목동에 가면 박보검을 생각합니다.
목동은 20대 중반, 몇 개월간 잠시 머문 동네였습니다. 처음 봤을 땐, 정말 귀여운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파트 단지의 숫자가 동명의 기능을 하고, 운전 면허 실기 시험 코스처럼 예쁘게 꺾인 도로는 모두 일방통행이고, 공공기관들과 은행, 주민복지시설, 상업지구들은 녹지공간과 환상적인 비율로 조성된. 심시티나 레고시티의 튜토리얼 같은 동네였습니다. 그렇게 마음 속으로 소름 돋는 감탄을 연발하다가 내가 정착하기에 부적합한 동네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정확히 한 달이 걸렸습니다. 대부분의 아파트 도시들이 그렇듯이 한강 서쪽 지역에서 목동은 여의도보다 훨씬 더 섬 같은 곳입니다. 폐쇄적인 조성 환경 탓에 주변 동네들과의 연계는 부드럽지 않았지만, 인천과 서울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이음새였기에 도로는 늘 압력을 받고 있었고, 직선거리의 몇 배가 되는 출퇴근 길 일방통행 코스에서 정체를 겪을 때마다 저는 미쳤습니다.
저를 더 미치게 한 데에는 지독하게 단순한 생활 반경도 한 몫 했습니다.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반듯한 지름 안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파트 도시가 주는 편의와 혜택이 원래 이런 거 아니겠나 촌스럽게 굴지 말자.’ 생각하고 일정 기간 누릴 대로 누렸지만, 뭔가 한 치의 일탈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공기의 밀도는, 강남3구에 버금가는 목동 학군의 비범한 학원가를 걸으면서 더 높아지기만 했습니다. 그곳의 토박이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저에게 목동은 크고 아름다운 어항이었습니다. 박보검을 처음 보고, 박보검의 고향이 목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저는, 목동에 대해 내가 가진 강력한 편견을 이용해서 그의 이미지를 완성했습니다. 목동의 귀엽지만 쓸쓸한 형상을 잘 구현해놓은 외모라 생각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12살 차이가 나면서도, 사는 동네가 완전히 반대편인 새로운 조인성 같았습니다. 이름도 ‘보검’ 이라니. 목동이란 글자를 뒤집어서 보면 보검이라고 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도 해보고. 하여간 반성합니다.
얼빠의 슬픔
다른 배우들처럼 극중에서 보여지는 캐릭터의 매력이나 빼어난 연기력 같은 걸 보고 좋아한 게 아닌, 그저 ‘얼빠’ 였으므로 박보검의 초기작들은 그다지 관심 없었습니다. <블라인드> (2011)는 극장에서 봤었는데 박보검이 거기에 나왔는지도 몰랐습니다. 같이 본 친구한테 ‘이현우는 유승호랑 같이 나오는 영화가 왜 이렇게 많아?’ 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박보검의 연기를 제대로 본 작품은 <너를 기억해> (2014) 였습니다. ‘피가 차가운’ 종류로 브로맨스에 투신한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 남자 캐릭터 중 하나 였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 드라마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지만 굳이 의미를 부여해가며 평하기엔 애매합니다.
저에게는 한국 남자배우들이 현재 남성영화계의 궤도에 진입하려면 ‘3사’를 거쳐야 된다는 허접한 이론이 있습니다. ‘사나이’, ‘사이코’, ‘사기꾼’ 역할을 해내는 것이 바로 그건데, <너를 기억해>를 보며 얻은 수확이 있다면 박보검이 그런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확신이었습니다. 저에게 그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조인성 같은 배우들이 <비열한 거리>나 <더 킹>에서 보여준 연기가 관객들에게 어떤 기능을 했는지 떠올려보시면 알 것 입니다. ‘
아. 사나이 영화를 하더라도 박보검은 박보검이겠구나. 이상한 남자 흉내 내느라 망가질 일은 없겠어!’ 이게 얼마나 우스운 마음 입니까? 애당초 저런 시나리오들 근처에 가지 않는 배우를 좋아하면 될 일인데요. 어쩌다 내 맘의 아이돌이 돼서 ‘제발 갑자기 사나이, 사이코패스, 사기꾼으로 변신하는 인간만 되지 않았으면’ 하는 기도까지 하는 것인지. 이러니 제가 ‘애미’ 소리 듣는 것에도 반박하지 못하는 겁니다. 반성합니다.
케이팝
<끝까지 간다> (2014) 와 <명량> (2014) 에 적은 비중으로 출연하지만 이 영화들이 개봉될 쯤에 박보검은 꽤 인지도를 갖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잠깐 추천을 해봅니다. <끝까지 간다> (2014) 에서 교통경찰로 정말 짧게 나오는데 관심 있으시다면 봐주세요. 경찰복 입은 박보검 너무 귀여운 것 같습니다) <뮤직뱅크>는 그의 필모그래피 대표작을 꼽을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고 그의 높아진 인지도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과거의 케이팝 뮤직비디오는 아무런 상징이나 해석의 여지가 없는 원초적인 단막극으로 기획, 촬영되었기에 꽤 많은 배우들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했고 저는 그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요즘 케이팝은 일루미나티 같은 것이 가미된 세계관을 영상에 녹여내야 하기에 본인들이 직접 출연하느라 배우들이 뮤직비디오에서 연기하는 것을 잘 볼 수 없어 아쉽습니다. 저는 <뮤직뱅크>를 진행하는 박보검을 보면서 그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시종일관 그저 해맑게 짜여진 각본을 소화하며, 마치 사회적 인격이라곤 조금도 형성되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음악방송 MC를 보는 것은, 대사 한 마디 없이 웃고, 울고, 화내는 뮤직비디오 속 배우들의 무언극을 보는 느낌과 비슷하니까요. 거기에 시즌별로 특별무대 같은 것도 시켜줬으니 저에게는 최고의 특집 프로그램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또 반성합니다.
파스타 왕
어쨌든 저는 계속 대충 의미를 만들어가며 박보검을 좋아했습니다. 멈출 수 없었어요. 그러다 <차이나타운> (2015)을 극장에서 봤는데 ‘이것은 정말로 내가 박보검을 좋아하는 이유의 모든 것이 될 수도 있겠다.’, ‘이 작품을 끝으로 이 배우는 더 뭔가를 찍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차이나타운>은 ‘성별 반전’ 이라는 뜻밖의 해석을 당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그게 연출자의 원래 의도인지에 대해선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약 40년째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남성들의 세계 충무로에 이런 해석이 가능한 영화가 나왔단 사실에 대해 슬픈 열광을 3년째 하고 있을 뿐입니다. <차이나타운> 속 박보검의 역할은 아버지의 채무를 대신 지고 사는 한 레스토랑의 견습생입니다. 그는 사채업을 하는 김고은에게 빚 독촉을 당하는데 이 모습이 한국영화에 숱하게 나오는 불쌍하며 아름다운 캔디 여자 캐릭터들과 흡사합니다. 어쩐지 조금 처연한 얼굴로 요리를 하고, 빚에 시달리며 살지만 늘 밝고 씩씩하며 사채업자에게 직접 파스타를 만들어 주고, 사채업자의 얼굴에 난 상처를 치료해주려다 밥상을 뒤엎은 사채업자에게 칼로 협박을 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채업자와 영화를 보고, 포장마차에서 마신 술 몇 잔에 취해 사채업자에게 업혀 집에 들어와서는 동정심을 자극하는 술주정을 해 극악하고 독하기 그지없는 사채업자 김고은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렇게 대충 예쁜 모습만 보여주다가 결국 한 방에 죽어 아름답게 피를 흘리는 것까지... 이 거울 같은 패러디 속의 박보검이 어떻게 좋지 않을 수 있나요? 좋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받아들이겠습니다.
저는 당시 이 부분을 찬양하는 것이 조금 두려웠습니다. 이 또한 ‘대세는 캔디남’ 이라는 도식 속에 남성배우들의 성공을 예찬하는 매뉴얼이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후로 이런 배역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요원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좋은 캐릭터였다고 거듭 말을 해야겠습니다. 이것은 미래의 제가 언젠가 반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스코트
‘한류스타’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 온 남자배우들을 오랜 시간 지켜본 바, <응답하라 1988>과 <구르미 그린 달빛>의 연이은 성공 이후 박보검의 행보가 그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상황과 조건이 많이 달라져 있고, 그가 정말 어떤 전략과 가치관으로 본인의 커리어를 그리는지 모르니 조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대신 지난 여름, 영화 <V.I.P>의 여성혐오를 둘러싼 지적들과, <아이 캔 스피크>에 출연한 배우 이제훈의 작품 선정 기준 등을 떠올리며 지금 우리 시대의 남성 배우들에 대한 기대를 쓰고 싶습니다.
이제 아무도 ‘연기변신을 위해 고심하며 고른 캐릭터’ 란 말 따위에 속아주지 않습니다. 작품이 받는 정치적, 사회적, 예술적 비판에서 당신들은 연출자 다음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인터뷰든, 후속 작품의 선택으로든 그 대답을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더는 본인의 선택에 개입된 많은 이해관계를 변명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제는 누구 한 명이라도 이렇게까지 성비가 불균형한 시장의 구조에 대해서 혹은 한국 영화가 주구장창 그려내고 있는 지루하고 괴로운 ‘남자영화’의 비정상적인 독식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남자배우가 마스코트가 될 때, 우리는 흔히 ‘황태자’, ‘황제’ 같은 수식어를 씁니다. 손바닥을 카메라에 내보이면서 공항에서 환히 웃는 모습으로 박제 된 배우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본인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인데 뭐가 문제냐, 니가 안 좋아하면 될 거 아니냐고 한다면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 십 여 년간 좋아했던 남자배우들이 그런 식으로 우스워지는 경험을 반복해 지켜보며, 우리나라에는 정말 좋은 모델이 되는 남자배우가 단 한 명도 없구나 하는 생각을 또 한번 했습니다. 언제까지 그저 사생활 문제만 없으면 ‘국민배우’ 칭호를 달아줘야 하는 건지도 정말 모르겠고요. 저는 (유아인을 제외한) 새 시대의 남자배우들이 달라진 움직임을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니면 말고 입니다. 님들이 변하지 않아도 이제는 예전 같진 않을 것입니다. 계속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면 이젠 관객이 거부하면 되니까요. 이것은 반성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전 여전히 박보검을 좋아합니다. 떠날 이유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제발. 제발. 제발.
새로운 시리즈는 한국 예능인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곧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