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여자
목욕탕 로비는 텔레비전 극장이다. 목욕탕 직원부터 손님까지 모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순간적인 감상을 바로바로 뱉어내는 곳. 목욕탕 직원들은 늘 바쁘다. 바닥을 닦고, 목욕용품과 음료수를 판매하고, 수건을 세탁하고, 손님을 맞이하고 또 적절히 외면하고. 그러는 동안 텔레비전 소리는 노동요의 역할을 하며 계속 흘러간다. 그곳에서 김옥빈을 처음 봤다.
어떤 배우의 첫 인상을 떠올릴 때, 그 감각에 영향을 준 특정한 장소나 시간 같은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데, 김옥빈은 항상 예외였다. 엄마를 비롯한 관객들은 그 날 로비극장에서 궁금한 게 많았다. 촬영지가 진짜 베트남인지, 김옥빈은 정말 베트남 여성인지, 도대체 내용이 무엇인지. 드라마 [하노이의 신부]는 베트남 관광 홍보영상에 가까워보였다. 아오자이를 입고 어눌한 한국어를 연기하는 신인배우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다’라는 심판을 받았다. 일하시는 분 중에 조선족 여성분이 계셨다. 생경한 말투로 ‘제주도는 저렇지 않다’하고 확신했다. 내가 나갈 채비를 마치자 엄마도 일어났다. 목욕탕 극장은 자기가 원할 때 자리를 떠도 되니까. 우리가 나가는 순간까지 사람들은 다시 일을 했고, 여전히 텔레비전을 봤다. 또 다른 사람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특별할 거 없지만 나는 왜인지 그날의 조금은 어색함이 감돌던 분위기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김옥빈의 첫 인상은 명확하게 설명이 가능한 형태로 남아있기보다 하노이의 여름처럼 후덥지근한 목욕탕과 여자들, 그들과 그곳의 온도로서 기억된다.
네이버 얼짱
김옥빈의 정체를 알았을 때, 목욕탕에 갇힌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이란 감상적인 첫 인상은 개박살이 났다. 김옥빈을 누군가에게 소개하려면 시간 역순 구성이 가장 적당하다. 어떤 작품이나 계기로 그를 처음 접했건 데뷔담과 과거 일화를 빼놓고 그를 온전히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냥 스스로 밝히거나 누군가 밝혀놓은 정보들만 나열하자면. 순천에서 폭주를 뛰던 그는 어지간한 오토바이는 다 수리할 줄 알며, 합기도와 태권도 각종 격투에 능하고, 초등학생 때 IQ가 141이었으며, 양손잡이, 아르바이트로 몇 천 장의 음반을 소유하고 있다. 컴퓨터 조립, 웹사이트 제작이 취미이며 사이트 설계에 필요한 정보를 찾다가 우연히 네이버 얼짱 콘테스트 배너를 보고 응모한 뒤 1위로 화려한 데뷔를 하였고, 댄스실력까지 엄청나다고 알려졌다. 믿을 수 없이 전기적인 설명은 그녀의 하두리 캠, 디지털 카메라 사진들, 그녀가 직접 남긴 컴퓨터, 오토바이 관련 지식들, 비욘세 댄스영상 등과 함께 삽시간에 퍼졌다. 압도적인 외모만으로도 데뷔 초부터 주목을 받았기에 하나하나 부연설명처럼 밝혀지는 그에 대한 정보들은 익숙한 것이 아니어서 흥미로웠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배우의 의외의 취미나 특기 같은 것에 큰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 그 때의 여론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대강 ‘어디서 좀 놀았나보네’ 같은 반응이 전부였다. 그가 뭘 잘한다고 밝히든 2006년 무렵의 그녀는 ‘뇌섹녀’나 ‘엄친딸’ 같은 게 될 순 없었다. 여상을 졸업한 신인배우 김옥빈의 이국적인 외모와, 육감적인 섹시댄스 영상만이 화제가 될 뿐이었다. 그래도 뭐 괜찮았다. 그는 연예계에 등장할 때부터 얼짱이란 공인된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었다. 난 2005년 당시 ‘얼짱 컨테스트’를 기획했던 네이버 직원들의 반응이 몹시 궁금하다. 결국 일회성으로 끝나고 만, 조악하기 짝이 없는 그 이벤트에 응모한 김옥빈을 보고 느꼈을 당혹감. 함부로 추측하는 거지만 아무래도 네이버는 김옥빈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때 네이버가 만든 자료들을 보면, 뽑긴 뽑았는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고심이 모든 곳에 묻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곧바로 데뷔와 동시에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시리즈인 [여고괴담4]의 주인공이 되었고, 단 한번의 조연도 거치지 않고 드라마와 영화에 주연을 맡았다. 그 많은 재주들을 ‘얼짱’이라는 타이틀 하나에 묻어버린 톱스타는 엘리트 코스를 밟는 듯 했다.
갓 오브 된장
[오버 더 레인보우]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드라마지만 공감해주는 사람이 드문 작품이다. 스타를 꿈꾼다며 제한적인 야망을 키우고, 터무니없는 공간에서 연습을 하고, 단순하게 조작된 갈등에 신음하며, 느닷없는 로맨스가 전개되는 가짜 성장 드라마. 몰입하면 한없이 재밌어지지만 누구도 몰입하려 들지 않았던 이 비운의 드라마가 남긴 것은 홍보 목적으로 출연한 [놀러와] 한 편 뿐이었다. 토크의 주제는 “이성에게 실망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할인카드, 쿠폰을 내밀 때” 라고 답했다. 2016년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저것을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으로 여기고 있다.
이른바 ‘된장설화’의 후폭풍은 대단했다. 그 멍청한 분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에 대해서 쓰려면 지면이 부족하다. 그래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는 과로와 여론공세에 시달려 당시 드라마를 촬영하다 실신하였고, 그 기사엔 잘됐다, 뿌린대로 거둔단 식의 댓글들이 쏟아졌다. 사건이 있은 후 4년이 지난 2010년 방송에서 그녀는 ‘트럭녀(트럭으로 갖다 줘도 싫은 여자)’ 2위를 차지했다. 2011년 방송된 리얼리티 [OK PUNK]에서 김옥빈은 할인카드 발언이 작가가 써준 대본이었으며, 사건 이후 겪은 공포심과 일종의 반성을 털어놓았다. 그 시간 전까지 그가 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말하지 않기’, ‘나를 드러내지 않기’였다고 고백했다. 방송 이후 한 언론사는 이를 보도하며 ‘변명에 급급 아직도 정신 못 차렸나’ 하는 헤드라인을 붙였다. 남자들이 조성한 여론은 그를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보다 더 가혹하고 끈질기게 벌했고 그의 입을 막았다. 2016년, 그녀의 발언이 ‘전설의 격언’이라 칭해지며 고평가 받는 이유는 그 기나긴 박해와 원치 않는 침묵의 과정을 여성 모두가 알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가난을 등에 업고
네이버 평점계의 네임드가 된 [다세포 소녀]에서 그는 가난(인형)을 등에 업은 소녀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원조교제를 나가 크로스드레서 조폭과 원치 않는 상담을 하고, 부잣집 학교 동기의 이랬다저랬다 하는 거지같은 애정공세에 혼란스러워야 했다. 누군가에게 의지할 마음은 없으면서, 근심을 한없이 드러내는 얼굴은 김옥빈이 가장 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숱한 악평 끝에 졸작으로 평가 받았고, 이후 김옥빈은 개봉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질주], 많은 잡음 속에 특별판으로 방영된 [쩐의 전쟁-보너스 라운드], 조선 중기의 기생으로 등장한 [1724 기방난동사건] 등에 출연했다. 데뷔하자마자 주연을 꿰차고, 괜찮은 연기력과 스타성으로 인지도를 올리고 있던 그가 2년의 시간동안 출연한 작품은 저게 전부였다. 그렇게 보지 않아도 상관은 없겠지만, 2년의 시간 속에서 된장녀 김옥빈에 대한 응징의 서사를 지우기는 힘들다.
탈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이후 3년만에 나온 박찬욱의 신작 [박쥐]는 제작단계부터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다. 김옥빈은 ‘박찬욱 사단’이라고 불러도 좋을 송강호, 김해숙, 신하균, 오달수를 제치고 가장 먼저 주연배우로 캐스팅 되었다. 핏기 없는 얼굴을 하고 늘 탈출을 꿈꾸지만 벗어날 수 없는 공간에서 유령이 되어가는 여자 태주는 태어나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서늘하고, 서럽고, 짜증나는 여성 캐릭터였다. [박쥐]라는 영화와, 그의 캐릭터가 가진 상징에 대해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확실히 그 영화는 당시 김옥빈이 처한 국면을 전환시켰다. 이후 김옥빈은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와 함께 [여배우들]에 세대를 대표하는 여배우 중 한 명으로서 출연했고, 비슷한 맥락의 모큐멘터리인 [뒷담화:감독이 미쳤어요]에서 여배우인 자신을 또 한 번 연기했다. 좋아하는 배우가 선택을 ‘받는’ 입장에서 ‘하는’ 입장이 되는 순간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는 태주처럼 자신을 묶어버린 타이틀들에서 서서히 탈출해 본인의 것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SURVIVE
‘된장녀’가 된 신인배우 김옥빈에게 이 곳은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걱정해야 하는 곳이었을 테다. 앞서 말한 대로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긴 시간 동안 도를 닦듯 침묵하며 그는 원래 자신을 찾아나갔다. ‘얼짱’, ‘된장녀’, ‘트럭녀’ 같은 수식어는 잘만 붙여주면서 정작 김옥빈이 진짜 가지고 있는 재능들을 호명하는 것은 철저히 외면해왔던 언론과 대중에게 그는 분홍색 머리를 하고 펑크밴드를 만들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금씩 내보였다. [시체가 돌아왔다]는 그렇게 단단해진 김옥빈의 모습이 담긴 작품이다. [칼과 꽃], [열한시], [소수의견]은 작품의 흥행성공이나 완성도를 떠나, 여배우가 택할 수 있는 역할의 폭이 매우 좁음에도, 그의 취향과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 선호하는 캐릭터와 그것을 연기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가늠하게 해준 작품들이었다. 2014년 방영된 JTBC의 50부작 드라마 [유나의 거리]는 그렇게 살아남은 김옥빈의 성공적인 생존을 기록하는 작품이었다.
김옥빈은 2년째 작품 활동이 없었다. 이 공백은 본인이 선택한 것일 수도, 혹은 어쩔 수 없이 놓아버린 것일 수도 있다. 2016년 10월, 그는 현재 [일급기밀]과 [악녀]라는 두 편의 영화를 촬영 중이다. 한국에서 이름만으로 ‘티켓파워’를 가지는 여성배우는 드물다. 언제나 ‘빅3’, ‘빅4’, ‘빅5’는 남성배우의 몫이었고, 그것은 출연료 또한 마찬가지다. 아니, 여성들이 출연하는 영화가 없다. 그래서 나는 김옥빈이 공백을 감수하면서 영화들을 고르는 일련의 과정들이 안타깝지만 한편으론 고무적으로 느껴진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는 몰라도 주연배우로서 상업영화 한편을 오롯이 이끌고 갈 힘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김옥빈이 설사 그것을 달성하지 못한다 해도 지금 보이는 이 태도들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여성배우가 가진 견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작품을 선택할 수 있고, 더 좋은 것을 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배우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이 못내 미안하지만 살아남았기에 그런 역할에 대한 기대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선택에 작은 신뢰가 생기는 이 때, 그녀를 앞으로도 계속 지지해보겠다는 다짐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