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나는 ‘한국의 OOO’, ‘미국의 OOO’ 와 같은 관광나이트 전단 형식의 비유에 중독돼 있다. 한국의 마돈나 엄정화의 신곡을 듣는 지금 유아인의 글을 쓰려고 하니 과연 그는 누구에 비유 될 수 있을지 새삼 심각해졌다. 제일 잘나가는 30대 배우니까 한국의 라이언 고슬링? 아니다. 유아인은 그런 심심한 느낌은 아니다. 늘 그를 규정하는 소년 같은 얼굴이라면... 라이언 필립? 에단 호크? 아니 너무 옛날 사람들이다. 새로 런칭한 옷이 칸예 브랜드의 지난 컬렉션과 비슷하기에 한국의 칸예 웨스트라고 할까 싶다가 칸예보단 킴 카다시안에 더 어울리겠단 생각도 했다. 원래는 직관적으로 얼추 갖다 붙이면 들어맞는데 유아인은 힘들다. 기존의 이미지들로 규정하기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예외적인 성질을 너무 많이 갖고 있는 인물이라서.
선배
‘유아인을 언제 처음 보셨나요?’ 이 질문엔 제 각기 다른 대답들이 나온다. 우리 엄마는 친구랑 극장에서 보고 그저 그랬다는 [완득이], 동방신기 팬클럽이었던 대학교 친구는 [성균관 스캔들], 말이 별로 없는 옆자리 회사동료는 [앤티크] (굉장히... 의외의 대답이라 빵 터졌다), 한국영화를 잘 보지 않으시는 시네필 친구는 (위키백과에 기술된 것에 따르면) 유아인이 가진 소년성의 기원이라 평가받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꼽았다. 이런 대답 후에 나는 그들이 별로 궁금해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특유의 고향 후배적 웃음을 지으며 ‘나는 초등학교 때 처음 봤지’ 라고 말하곤 했다.
유아인이 처음 등장했을 무렵의 나는 정말로 신기했다. 연예인 불모지나 다름없는 지방 도시에서 ‘우리 동네 출신 연예인’은 대단한 것이었다.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과 하두리 얼짱들이 청소년 서브컬쳐를 지배하고 있을 때, 우리의 텔레비전 스타는 옥림이(고아라), 욱이(서현석), 순신이(김시후), 서정민(이은성, 서정민은 정민이가 아니라 '서정민'으로 불러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선배이자 옥림이의 선배인 '아인오빠'였다. 옥림이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뎃생해 선물하며 '우리 사귀자' 하던 귀여운 선배는 쉽게 아이돌이 되었다. [반올림]을 같이 시청하던 나와 내 친구들은 잘 생각도 나지 않으면서 '내가 기억하는 엄홍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하루를 몽땅 보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동네 애들이 만들어 낸 그의 학창시절 에피소드들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선배는 전국구 아이돌로서의 임기를 완전히 채우지 못하고 언젠가부터 TV에 잘 나오지 않았고, 우리 동네의 바깥에는 신도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우리는 어른이 되기도 했다. 나를 포함한 몇몇은 동네를 떠났고, 몇몇은 그 때를 일부러 잊기도 했다. 아인선배도 그렇게 잊혀진 것들 중 하나였다.
재회
그러다 선배를 오랜만에 다시 본 것은 동네에 새로 생긴 멀티플렉스를 거의 매일 다닐 때였다. [좋지 아니한가]는 사전에 어떤 정보를 알고 본 영화가 아니었다. 그래서 우주에서 수직으로 떨어져 유아인의 얼굴까지 클로즈업 되는 첫 장면을 보고 나는 눈물이 날 뻔했다. 그 영화 속 유아인은 도저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였다. 아버지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죽기로 결심했지만 유서에 ‘뵈요’와 ‘봬요’ 중 어떤 것이 옳은 맞춤법인지 몰라 결국 자살을 포기하고, 학급 친구들의 음담패설에 의자를 집어던지며 싸우다가 선생님께 두들겨 맞는 고등학생. 이어폰 끈은 왜 만날 풀어도 다시 꼬이는 건지 고민하던 유아인의 모습을 보는건 즐거운 오락이었다.
어떤 관객들(대부분의 관객들)은 정형성이 없는 마이너 코드를 좋아하고, 심지어 그것에서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유아인은 함께 출연한 황보라 정유미와 함께 무질서하고 대책 없는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연기하며 그들을 성공적으로 유인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앤티크], 드라마 [최강칠우], [결혼 못하는 남자]까지 유아인이 맡는 연기와 작품들을 보는 것은 말 그대로 ‘재밌는’ 일이었다. 어딘가 대안의 이미지를 가진 배우처럼 보였다.
밀회
주연배우의 이미지만으로 독특한 색깔을 갖게 되는 건 굉장한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밀회]는 극본과 연출, 김희애와 조연배우들의 연기까지 모든 것이 훌륭한 드라마였지만, 유아인이 주인공을 맡지 않았다면 내가 볼 일 없는 종류의 드라마였다. [밀회] 출연하기 전까지, 그가 했던 (내가 의도적으로 적지 않은) 작품들에선 찾기 힘든 힘이었다. 본인의 배역명이 타이틀이었던 [완득이], [깡철이]와 본격적으로 유아인을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성균관 스캔들], 이제훈, 김태희 등과 공연한 [패션왕], [장옥정, 사랑에 살다]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그 극 속에서 유아인이 보여준 연기의 훌륭함을 찾아내어 기계적으로 상찬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 작품들은 모두 [밀회]에 출연하기 위해 본인의 가치를 증명한 수단으로 여겨도 무방하다.
나는 [밀회]를 서울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했다. 그리고 많은 욕망과 분노들이 얽혀있는 세계에 아무 계산도 없이 발을 들인 이선재는 유아인 본인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으로부터 배제당한 삶을 살다가,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를 다시 계산하지 못한 사랑 때문에 불안으로 바꾼 남자. 그가 부암동 언덕을 배달용 오토바이로 오르내릴 때, 커튼 사이로 연주회를 준비하는 김희애의 모습을 바라봤을 때, 처음으로 저택에 발을 들였을 때, 김희애를 본인의 단칸방에 초대했을 때. 유아인이 표현한 그 찰나들로 인해 이 드라마 속 ‘서울세계’는 더 완벽히 묘사되었고, 그의 존재감은 더 이상 대안적인 것이 아니었다.
훌륭한 소년
꽤 많은 비평에서 그의 ‘소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훌륭한 소년이 될 거에요?’ 라는 물음은 그가 출연하는 작품의 배역과 성질에 관계없이 늘 따라붙는다. [베테랑]과 [사도] 두 작품을 통해 유아인은 업계에서 어떤 파워와 포지션을 갖게 됐다. 두 편의 영화에서 황정민, 송강호와 결투하듯 보여준 그의 열연은 매우 오락적이었고, 열광을 살 만 했다. 그 평가들은 공통점이 있다면 황정민, 송강호와의 비교평가에서 대등한 위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경력차이로 인한 상대적 비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추측하자면, 마치 성인배우와 아역배우의 연기를 비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느 남자배우들처럼 변신을 하기위해 지독한 악역을 맡고(베테랑), 무모한 폭력에 휩쓸리고(깡철이), 서른 살을 넘어, 데뷔 14년차가 되어도 그에게서 ‘소년’의 이미지는 지워지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소년’이란 얼마나 오염된 의미였나. 자기 마음대로 행동해놓고 책임지기 싫을 때 남성들은 자기 안의 소년을 드러내곤 했다. 철없고, 나쁘지만, 이해받고 싶은 존재. [베테랑]의 조태오, [사도]의 사도세자,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원. 역사에 길이 남을 세 가지 ‘한국적 소년’을 모두 거친 후 그가 선택한 영화는 [좋아해줘]였다. 영화의 GV에서 그가 말했다.
여자 감독에겐 여자 감독이라 부른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여자 배우들에겐 여배우라고 한다. 이건 여자들이 특별한 존재여서가 아니다. 여자들이 사회생활에서 아직도 동등한 위치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여자 감독과 작업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어쩌면 기존 남성사회가 그에게 소년성을 탈피하라 종용하듯 물어대는 것은, 유아인이 표현하는 소년이 본인들의 질서 밖에 있어서는 아닌지 생각했다. 내가 어릴 적 소설이나 동화책에서 읽어낸 훌륭한 소년들은 순수하고, 불안하지만 용기를 내어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비겁하게 침묵하지 않는다.
Yes Sir, I'm One of a Kind
지난 해 [무한도전]을 정말로 오랜만에 용기내서 시청한 이유는 순전히 지드래곤이 드라마 특집에 나온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역할로 어떤 연기를 할까 기다렸다가 그가 [베테랑]의 조태오를 패러디한 인물로 등장했을 때 나는 지뢰찾기 중급을 성공했을 때와 비슷한 종류의 아주 쓸모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나는 언제나 그 두 사람이 닮았다고 생각해 왔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재미있어한다. 일정한 성취를 한 뒤, 그들이 보여주는 연예인으로서의 제스처와 아티스트로서의 자각은 굉장히 유사하다.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를 충분히 던져주고, 문제가 되는 부분을 해명하거나 책임지려하기보단 그대로 놔두는 방식을 선택한다. 그래서 그들을 좋아하는 한 편의 사람들은 그 속에서 신화를 찾아내기도 한다.
당장 위키백과 사전에 두 사람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또래의 다른 연예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전기적 서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분기마다 그들에 대한 칼럼과 소고들이 쏟아진다. 그들이 내놓은 작업에 대한 평가 또한 전문가들에게 의미 있게 다뤄지고 이는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다. 본업인 연기나 음악 외에도 매체에 글을 쓰고, 옷을 만들고, 그것을 본인이 직접 PR한다. 은유 불가능한 것들은 대부분 각각 자신의 트위터 계정들 (@seeksik, @xxxibgdrgn)을 통해 직접 드러내기도 한다. 과연 진정한 의미의 ‘아이돌’이다.
18대 대선을 앞두고 있던, 2012년 말 [패션왕]의 출연을 마친 유아인이 본인 트위터에서 쓴 글의 일부분. “연예인은 트위터에 셀카만 올려대야 하나.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고 내가 느끼는 것을 느낀다. 나는 내게 주어진 한 표의 크기만큼 생각했고 그만큼 고민했고 주어진 크기만큼 발언했다” 이 글의 반향은 상당했다. 사람들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 ‘배우 나부랭이’, ‘고교중퇴자’, ‘대구출신’이 뭘 안다고 이런 중요한 시기에 정치 훈수를 두냐며 비아냥댔다. 그러나 그게 그에게 별다른 데미지를 주지는 못했다. 여전히 그는 글을 쓰고 있으니까. 연예인에게 발언의 범위를 제한하는 사회에서,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을 때부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 지금까지 늘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유아인의 트위터 바이오는 ‘가장 보통의 존재’였고, 그 맘 때 지드래곤이 발매한 곡의 제목은 ‘원 오브 카인드’였다. 그 곡의 가사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하면 좋을 것 같다.
"네 형 네 누나 왜 그래요 아 잘나가서 죄송해요 / 라랄라 예쁘게 좀 봐주세요 욕하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