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과는 남자가 별로 없어서 남자가 좀 유리해.
지인(남자)과 대화를 하다가 나온 말이다. 처음에는 그렇군, 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불쑥불쑥 생각이 난다. 난 남자가 많은 과에서 여자이기 때문에 유리했던 적은 없다. 불리하다면 불리했다. 여자는 소수여도 불리하고 다수여도 불리했다.
공대를 다니면서 들었던 말은 다음과 같다.
"공학계열이 여자를 많이 안 뽑기는 하지..." "그 회사들은 전부 보수적이라서... 여자 지원자에게 단아함을 볼 거야. 팔 같은 거 걷지 말고...."
친구 중 한 명은 대기업 면접에서 "남자들이 많은 과에서, 여자이기에 불편했던 점은 없었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의도는 뻔하다.다루기 '편한' 여자 직원이 될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질문했을 것이다. 나와 친구는 공학 계열 중 공대라고 불리는 "기계/전기/컴퓨터"쪽이었다. 여학생도 드문데 면접관들 중에는 당연히 교수님 또래의 중념 남성이 많았다. 그들이 정말 '소수의 불편함'을 위해서 질문했겠는가. 그랬다면 모든 지원 절차가 끝나고 합격자에게 물어보아도 되는 일이다.
그리고 뒤늦게 졸업과 동시에 취업 준비를 시작한 나도,면접 장소에서 '중년 여성'을 본 적은 없었다. 안내를 해 주는 젊은 여성만 보았다. 그렇기에 난 꼭 이 전공으로, 이 바닥에서 중년 여성이 되리라고 결심했다. (물론 아직 취직도 못한 내가 중년의 내가 무슨 일에 종사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오기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There's a world at you feet When you're standing next to me. Did you get what you came for?
세상이 네 발 아래에 있지.
네가 내 곁에 있다면 말이지.
필요한 건 얻고 가니?
그렇다고 내가 취업 준비를 하면서, 졸업을 하는 나이가 되어서야 공대에서 여자로 살아가기가 불리하다는 것을 눈치챘냐, 그건 아니다.
입학부터, 복학 첫 학기부터, 알 수 있었다. 공대에서 꾸미지 않는 여학생으로 살아가는 게 어떤지. 어떤 시선으로 보이는지. 우리 과는 과 특성상 개인플레이를 하는 아웃사이더가 많았는데, 그중 여학생은 본 적이 없었다. 꼭 친구가 있었고 그 수업에는 없어도 수업이 끝나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래야만 살아남는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여학생이 적은데, 여학생이 아웃사이더로 꾸미지 않고 다니면 얼마나 무시당하고 기피되는 존재가 되어버리는지, 잘 알았다.
그렇다고 없는 친구를 갑자기 사귈 수도 없고, 그러면 무시당하지 않는 방법은 '꾸미기'밖에 없었다. 그건 싫었다. 내가 거지꼴로 다닌 건 아니지만(아니 적다 보니 좀 화난다 거지꼴로 다니면 어때서 자기들도 거지꼴이면서...) 안경을 쓰고 다녔고, 후드나 셔츠, 편한 바지와 백팩을 메고 다녔다. 수업 중 백팩을 가진 여학생 자체가 적었다. 뿔테 안경도 나만 썼다. 오죽하면 인싸라고 불리는, 고등학생 친구는 나더러 '그러고' 대학을 다니지 마라고 했다. 이 친구와는 후에 비슷한 이유로 쌓인 것이 폭발하여서 연락을 끊었다.
여학생이 앞도적으로 많은 과에 다니는 친구는,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가다가 같은 과 남자 선배가 자신을 못 알아보자 '화장을 안 해서 그렇다'며 밥 먹는 내내 화장을 했다. 내 생각엔 그냥 멀리 있어서 못 알아본 것 같은데.
이제 졸업을 했으나, 몇 년 동안 쌓여온 '투덜투덜'을 이 시리즈에서 해 보고자 한다. 타래가 있어서 다행이고 고맙다.
다른 얘기인데, 난 저번에 직무를 잘 못 지원해서 '영업직' 면접을 본 적이 있다. 다대다 면접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의 답변도 실시간을 보게 되었는데, 영업직인만큼 다들 말도 잘하고, 에너지도 넘치고, 학생회, 학교 홍보부 등의 스펙을 쌓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저렇게 될 수 없다. 인싸이더들 사이에 잘 못 들어온 너드(nerd)였다. 그리고 면접관마저 나더러 "개발이 적성이신 것 같아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래! 나는 공대 아싸다! 이렇게 살아왔고 살고 있는 사람이다.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