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걸로 힘들면 안 돼, 힘들어해서는 안돼.
우울증으로 살았던 때보다, 내가 우울증임을 깨닫기까지가 가장 어려웠다. 힘들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음...자신의 아픈 과거사까지 얘기하지는 않는 정도의 친구를 만나러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었는데, 어디 사이트에 우울증 증상이라는 글이 떴다. 우울증의 특징이 많이 나와있었고 대다수가 나의 현재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울증은 중2병이라던가 그냥 한가한 애들이 걸리는 거라던가. 그렇게 가볍게 대우받는 것 치고는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아주 무서운 무언가로 보던 시기였기에,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글을 보고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 친구에게 ‘나 우울증인가 봐’라는 얘기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 친구는 나의 우울증을 가볍게 보거나 그럴 친구는 전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지금까지 별 이야기를 안 했는데 아주 갑자기 깊숙이 파고 들어와서 그 친구가 다른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당황하지 않았을까. 그게 가장 미안했다. 그 친구는 덤덤히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나도 인정하지 못했던 나의 우울증을 그 친구가 인정해줌으로, 나는 나의 우울증, 혹은 더 있을지도 모를 다른 정신질환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후에 우울증, 공황 등 정신적으로 힘들어지면서 삶의 퀄리티가 바닥을 내리쳤지만, 무엇인지 몰랐을 때보다 훨씬 나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문제 있는 사람이 되기 싫었는데 그냥 나는 문제 있는 사람, 뭔가 힘든 사람으로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힘들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힘들만한 일 그 무엇도 그때는 크게 없었기에.
지금에야 나의 가정사, 내 뿌리부터, 지금 살고 있는 집의 환경까지 모든 것이 내 병에 관여했음을, 내 병을 완성했음을 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겨우겨우 부모님이나 친구들께 말해도 상처를 받는 반응만 돌아왔다. 앞에서 처음 내 우울을 들은 친구가 가장 덜 친근했던 관계였음에도, 아니 그렇게 기대했던 관계였기에 더욱 상처를 받았다.
네가 우울할 일이 뭐가 있어?
-> 우울증같다고 부모님께 얘기했을 때 들은 말.
너는 그럴 줄 몰랐네, 적응 잘할 줄 알았는데.
-> 대학이 적응이 안 되어서 힘들자고 하자 들은 말.
하하하, 그게 뭐야.
-> 가장 믿었던 친구에게 우울증의 증상을 얘기하자 들은 말. 그에게 그 증상은 그저 웃긴, 전혀 공감되지 않는, 기이한 행동이었고 그래서 웃을 수 있는 친구가 나는 부러웠다.
그러나 내 일상을 빠르게 굴러갔고 그만큼 빠르게 고장 났으며 고장 난 상태로 계속 구를 수밖에 없었다. 알바에서 잘리고, 공부를 하려고 했으나 성적 경고를 받고, 나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3인칭 시점으로 관찰되는데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자살방지 전화를 걸고 신호가 연결되자 무서워서 끊었고, 그때서야 이상함을 느꼈다.
심장이 상태가 안 좋네요.
감기 때문에 병원을 갔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큰 병원을 가라, 맥박이 이상하다. 그래서 큰 병원에 가서 큰 검사를 받고는 ‘나이는 20대인데 심장의 상태는 70대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갑자기 살고 싶었다. 아이러니했다. 내가 너무 우스웠다. 갑자기 살고 싶다니. 그런데 동시에 삶이 무서웠고, 그래도 살려달라고 빌었으며(속으로) 그럼에도 죽고싶었고, 죽을 수 있었다. 자의로도 다른 원인으로도 나는 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말했다. 힘들다고, 글을 썼다. 심리상담을 받고 싶다고 어머니께 말했다. 우울증이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망가졌다고 인정했다.그렇게 나는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꿈틀거림을 기억나는 대로 기록하려고 한다. 앞으로 나아간다, 완치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나의 꿈틀거림, 삶을 하루씩 연장하는 그런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음 좋겠다. 참고도 되었음 좋겠다. 아무것도 아니어도 그저 가벼운 읽을거리가 되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