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학만 가면'이 아니라, 대학에 가서 적응을 못 할 수 있다고 왜 말 안 해줬냐.
여고를 다녔기에 갑자기 남자애들이 많은 과는 적응이 안 되었고(처음엔 내가 다가가도 무시하길래, 여자라서 낯설어서 그런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성격이 별로인 애들이었다.) 혼자 서울에 와서, 고시원에서 바보처럼 멍하니 있다가 본격적으로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그 외에도 갑자기 넓어지고 동시에 좁아진 세상에서 오는 현타는 많았다. 왜 아무도 갑자기 바뀐 생활에서 힘들 수 있다고, 위로를 안 해줬을까. 대학만 가면 내 세상이란 걸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고등학생 때보다는 잘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는 대학에 다니면서 힘듦을 여기저기 토로했으나 그 어디서도 위로도 공감도 받지 못했고 동정도 아닌 기이한 사람이라는 시선만 받았다.
4. 성적 최악을 찍을 수도 있다고 왜 말 안 해줬냐.
지방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기에,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려면 나름대로 그 사이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어야 했다. 물론 내가 막 전교 1등 한 건 아니고 내 대학이 명문대도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상위권이었다. 그런데, 내가 복학 후, 교수님께 질문을 하다가 들은 말이 있다.
“이렇게 이렇게 하고 이거 다 외워, 모르면 다 외우고 풀이과정도 다 외우면 씨쁠은 나올 수 있을 거야.”
“공대가 적응이 안 되면 전과도 생각해봐야 해.”
당시 교수님은 나에게 진심 어린 걱정과 함께 충고를 해 주셨고, 당시 나는 무슨 그렇게 열심히 해서 겨우 씨쁠이 나오겠냐며 미친 듯이 공부해서 에이플러스를 받았다. 문제는 그다음 해부터 전공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고 나서였다. 2, 3학년은 우울증이 극격히 심해지면서 독해능력이 떨어져서 성적이 안 좋았다… 고 믿고 싶다.
나는 무려 4학년 때 2학년 전공을 100점 만점에 9점을 받았다.
대학교에 오면 머리가 다 비슷한 애들끼리 경쟁을 한다. 그렇기에 성적이 많이 쪼개진다. 그런 상대평가를 감안하더라도 나의 9점은 충격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 강의를 정말 못 하고 억지로 해서 겨우겨우 에프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열심히 한 과목도 에프를 받아본 적도 있다. 바보같이 애쓴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닌 것을. 왜 아무도 안 알려줬을까. 열심히 해야 했다고. 집중해야 한다고. 왜 다들 독하게 애쓰는 것만 알려줘서는.
5. 왜 그대들은 세상은 대학과 취업이 다라고 말해줬나. 인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데.
정말 그런 줄 알았다. 물론 현재 취준생인 나는 취업만 하면 좋겠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러나 환상은 없다. 지금도 그때도 최선을 다하는 내가 있을뿐. 그때도 내가 나를 가장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