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가장 심했을 때,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것이 있다.
과거의 반성과 미래의 계획으로부터 도망치는 것.
다들 한심하다고 말했고, 앞으로 어쩔 거냐고 말했다. 그러나 숨을 쉬기도 힘든 그때, 과거와 미래까지 짊어지기엔 너무 힘들었다. 과거가 생각나고 미래가 생각날수록 지금 이 시간에만 집중했다. 대충 다음과 같다.
눈 앞의 아메리카노는 산미가 어떤가, 이 친구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이 강의의 이 부분은 힘들다.
이 생각은 연속적으로 다른 생각으로 이어졌다. 아주 자연스럽게.
산미가 강하지 않은 아메리카노 집을 찾아볼까, 이 친구와 다음에도 만날까, 이 강의는 포기할까 말까.
아메리카노를 만들어볼까-> 취미 생김. 친구에게 먼저 연락해볼까 -> 대화할 사람 생김.
이 강의는 교수님에게 도움을 구해볼까 -> 지식이 생김.
이 모든 연속적인 생각은 생활로, 그리고 나의 힘든 현재를 과거로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아메리카노의 '산미'라는 단어를 알고 나서 모카포트로 커피를 만들 때까지, 4년이 흘렀다. 4년이 지나서야 답은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있음을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물을 마신다. 모카포트에 원두를 넣고 물을 올리고 동시에 함께 먹을 토스트를 만든다. 언제 이렇게 자연스러워졌지? 예전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우는 게 일상이었는데. 아침이 오는 사실이 그렇게나 낯설었는데. 이제 대학생이란 신분으로 맞을 아침이 끝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