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됨의 기록: 4. 조건 갖추기

생각하다성노동

창녀됨의 기록: 4. 조건 갖추기

이로아

나는 여자가 아니라 ‘여자’가 되었다

나에게는 우울증은 물론이고 인격장애의 징후도 몇 가지 있었는데, 부모님도 그것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정신과를 찾아가지는 않았다. 우리집은 보수적인 편이다. 내가 아픈 것은 사실이었지만, 제때 졸업을 못 하고 부모님의 자녀 양성 계획에 크나큰 차질을 유발한 것은 모두 내 나약함의 죄였다.

어머니는 내 병세를 조금이라도 낫게 하려고 뭐든 해줄 작정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해결책은 성형수술, 그리고 다이어트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었다.

눈을 좀 했다. 어쩌면 안검하수여서 그 치료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피부에 칼을 대는 것은 무섭지 않았는데, 몸에서 뭘 빼내거나 몸에 뭘 집어넣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에 수술은 거기서 그쳤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폭식증과 거식증이 왔다. 운동이랍시고 하긴 했지만 매일 이어지는 저칼로리식은 빈혈을 악화시키고 몸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근육이 줄어들고 뼈는 치면 부러질 듯 약해졌다. 간혹 너무 먹고 싶어서 1인1닭이라도 한 날에는, 그게 조금이라도 소화가 될까 두려워서 위장을 뒤집을 정도로 맹렬하게 토해내야 했다. 

그렇게 해서 기어이 나는 좀 예뻐졌을 것이다. 적어도 길거리에서 시선강간을 당하는 평균적인 젊은 여자들만큼은.

변화는 <미녀는 괴로워>처럼 극적이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서비스 직종에 있는 남자들이 이렇게 친절하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길거리에서 헌팅을 당했고 번호를 줬지만 연락이 오면 모두 차단했다. 오랜만에 만난 여자사람친구는 내가 하이힐에 미니스커트 차림인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예쁘다고 호들갑이었고, 나는 인터넷에서 아무렇게나 산 옷이 이렇게 잘 맞는다는 것을 꽤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운명이 있다면 이때 비로소 나는 ‘창녀’로서의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셈이었다.

어쩌면 예견된 일인데 그간 내가 혼자 모른 체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휴학한 1학기가 다 지나기도 전에 아버지의 퇴직으로 가세가 기울면서 가정불화가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오 히스테리. 전부 내 탓이란다. 그만큼 지원을 받고 사랑을 받으면서 학교를 다녔으면 재깍재깍 졸업을 해서 부모님의 계획에 맞게 움직여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집안에 우환을 더했단다.

부모형제 중에 나는 집안의 근원적인 문제였다. 아버지가 퇴직 후 창업을 위해 준비하는 자격증시험에 단박에 붙지 못한 것도, 어머니가 종교에 기대면서 외도를 했다느니 하는 의심을 산 것도 죄다 내 잘못인지도 모르는 일이 되었다. 나는 지금 복학을 하지 않으면 1년을 더 쉬어야 하는데, 학비 대줄 돈은 없으니 알아서 하란다. 내가 아직도 아프니까 학교를 보내는 게 최선이 아니라고도 했다. 나이는 먹어갔다. '여자' 인생의 소위 황금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되도록이면 내 문제만 책임지고 싶었다. 탈출을 해야 했다. 탈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

하지만 예행연습이 필요했다. 혹은 내 가치를 한 번 시험해 보아야 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가까운 유흥가의 구인광고를 보고 연락해서 하루 있어 보기로 했다. 간단한 면접이 있었고, 내 서툰 화장솜씨와 학생 같은 옷차림으로도 일단은 해보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나를 면접한 남자는 내게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었는데, 없다고—평생 없었다고 말하니 별종 취급했다. 대기실로 들어가는 곳에 있는 거울을 보니 나는 꽤 예쁘고 날씬했다. 일전에 친구가 그토록 칭찬했던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나는 술을 따랐고, 남자들보다도 술을 잘 마셨지만 과일은 깎을 줄 몰랐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나보다도 나이가 어린 베테랑이 각종 과일안주를 모양새에 맞게 잘 깎아서 올려주었다. 그녀는 눈치를 보며 제 술을 얼음통에 버렸다. 그녀는 머리를 미용실에서 하고 오느라 늦었다고 했고, 머리를 한 미용실에서 메이크업을 받았고, 내 옷차림이 뭐가 문제인지 바로 알 수 있을 만큼 예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여자’라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날 내 손님이었던 자는 멋모르는 나를 꾀어서 개인 연락처를 받아갔다. 하지만 내가 그날 헤르페스 2형에 감염되었기 때문에, 그 연락처는 성병 진료비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그 아저씨가 추후 내게 병원비로 30만원이나 입금하게 되는 용도로나 쓰였을 뿐이다.

복학까지는 두어 달 정도가 남은 시점이었다. 나는 비로소 ‘창녀’로, ‘여자’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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