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돈을 벌어야 등록금 납입 기한을 맞출 수 있을 무렵에 나는 최소한의 짐만 챙겨 무작정 상경했다.
그때까지는 나는 내 가치에 대해 잘 몰랐고 성노동 환경은 더더욱 몰랐다. 떼돈을 벌지는 않아도 좋으니 일단 보상이 적은 쪽부터 (그래서 덜 예뻐도 될 것 같은 쪽부터) 시작해보면 뭐라도 되겠지 싶었다. 물론 돈을 적게 받는 쪽이 만만할 거라는 예상은 완전히 오산이었다.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싶어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강남권 모집공고는 다 버리고 굳이 외곽지역을 골랐다. 하지만 면접을 학교 근처 동네에서 봤을 뿐 야밤에 차를 타고 두시간이나 더 가야 하는 뒷골목 쪽방촌에서 일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면접을 봐준 후줄그레한 아저씨는 나를 직접 만나자 거의 경외에 가까운 눈길을 던졌다. 아직도 자신이 조금 없는 내가 ‘충분히 예쁘지 않아서 이런 일 못 하는 거 아니냐’라고 물었을 때 그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나를 더 알아야겠다며 그는 자기와 예행연습(?)을 해볼 것을 요청했고(값은 치르겠다고 했다) 나는 당장 한푼이 급한데다 정말로 예행연습이라면 꺼릴 것도 없었기 때문에 거기에 응했다.
“섹스 좋아하는구나”라고, 끝나고 나서 그사람이 말했다.
글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성적 자극이 좋으냐 싫으냐를 따지자면 나는 좋아하는 편이다. 아니, 굉장히 좋아한다. 실제 인간을 성적으로 좋아해본 적은 없지만 언제나 소설이나 만화에 나오는 상상 속의 잘생긴 남자를 상상하며 중학생 때부터 자위를 했고, 소위 ‘자박꼼’('자지 박으면 꼼짝도 못해'의 준말)이 실제 되는 감도인 몸뚱어리는 전부 내 손으로 만든 것이지 이때까지 잔 남자들이 만들어놓은 게 아니었다.
그때까지 평생 나와 섹스한 남자들 중에 내가 그를 성적으로 조금이라도 ‘남자’라고 생각할 정도의 매력을 가진 인간은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사람이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음식물 쓰레기를 자진해서 먹지는 않는다. 혹시 누가 강요를 한다거나, 그거라도 먹지 않으면 죽을 정도로 절박하게 배고프다거나, 그걸 먹으면 돈을 준다든가 하는 조건이 있으면 먹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나마 깨끗하고 상하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라면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음식물 쓰레기 먹방을 찍고 있는 사람한테, ‘야 너 먹는 거 진짜 좋아하는구나’라고 말하면 기분이 이상해지겠지. 그것과 마찬가지였다.
무엇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하는 것은 둘째 문제였다. 기본적으로 그건 비위의 문제였어야 하는데, 혹은 어떤 ‘조건’이 걸려있는지에 대한 문제였어야 하는데, 아무도 내 비위나 조건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매우 비위가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절박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무도 내 비위를 상관하지 않는다’라는 사소한 사실쯤은, 그냥 참고 넘어가주기로 했다.
이럴 수가, 세상에 섹스할 만한 남자 따윈 없다
문제는 후줄그레한 아저씨가 날 데리고 갔던 후줄그레한 뒷골목이 전혀 섹스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일단 여자가 나오는 술집의 꼴이기는 했지만(순전히 성매매만 하는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은 술집이다.) 말 그대로 홍등을 달고 여자를 고기처럼 전시하는 곳이었다. 건물은 가건물이었고, 구석에는 벌레가 기어다녔고, 소파 시트는 언제 갈았는지 알 수 없었으며 난방이 불량한데 여자들은 홀복을 입어야 했다.
내가 들어간 가게에는 나 말고 여자가 두 명 더 있었다. 옆집 앞집 뒷집들도 비슷한 가게고 포주들이 모두 형 동생 하는 사이인 듯해서 그곳의 여자들과 같이 초이스를 보기도 했다.
평생 이렇다하게 놀아본 적이 없는 나는 아무리 봐도 노는 계통인 그녀들을 좀 두려워했다. 그러나 곧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 여자들은 모두 (표면적으로는) ‘착했다.’ 내가 낫니 네가 낫니 쥐어뜯고 싸우고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누가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는데, 이건 그녀들이 전부 성인군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어차피 우리를 평가하고 가치를 매기는 것은 손님이지 서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판매주체들(창녀들)간의 경쟁마저 무산시킬 정도로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는 남자손님들이란 어떤 사람인가. 역시 후줄근하고 제멋대로인 속칭 개저씨들이었다. 게다가 섹스에 대한 전문성 측면에서 본다면 아마 포주보다도 나빴을 테다. 돈도 없고, 어떤 기본적인 양식이나 지식도 없어 보이는 남자들이 술에 취한 채 그 뒷골목을 찾고 있었다.
나는 신기하게도 그들 중 단 한 사람에게도 선택받지 못했다. 나중에 돌이켜 생각하자면 그것은 매우 다행이었다. 단순히 내 육체적 건강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뭐랄까, 국민 보건을 위해 섹스도 운전면허처럼 시험을 쳐서 라이센스를 발행한다면 우리나라에 섹스를 해도 되는 남자는 극히 드물 것이라고 감히 말하겠다. 성격이나 매너를 떠나서 근본적으로 남자들이 극도로 무식하기 때문이다. 모르면 공부라도 해야 하는데, 공부를 시켜줄 사람도 없고 공부를 해야한다는 압력도 어디에도 없어 왔다. 무슨 공부? 아, 얘기만 꺼내도 남학생들이 낄낄거린다는 성교육 말이다.
양치질이나 손씻기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성인이 많지 않은 것과 비슷하겠지. 그나마 양치질이나 손씻기는 제대로 배울 기회는 한 번 정도 있고, 못하더라도 대개 저 혼자 문제다. 하지만 섹스에 대한 위생 의식이 없다는 것은 안 씻은 손을 아무렇게나 남의 입에 처넣고 다닌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심각한 문제다.
고고체리의 <여군지옥>이라는 만화를 보면, 남군의 위안부로 사용되는 여군은 ‘공공재이니 살살 사용해야 한다’라는 주의사항이 붙어있다. 그런데 그 '살살'이 실질적으로 어떤 것인지, 그 포르노를 판타지로 소비하고 여자를 ‘사용’하고 싶어 하는 남자들 중 제대로 아는 자가 아무도 없다. 심지어 그 주의사항을 전달하는 조교는 자기가 데리고 온 여군의 팬티 속에 손을 집어넣고 있는데, 손은 똑바로 씻고 그러고 있는 게 아니라면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셈이다. 물론 그것은 창작이고, 판타지고, 씻는 과정 같은 건 구질구질하니까 작중에 생략할 수 있겠지만, 과연 보는 독자들도 다 그렇게 생각할까?
‘더럽히고 싶’고, ‘능욕하고 싶’은가? 여자를 화장실처럼 쓰고 싶은가? 화장실은 누가 좀 더럽게 써도 자주 청소해주면 되지만, 여자 몸은 한 번 ‘더럽히’고 나면 청소할 수도 없어서 병원에 가야한다. 세상 여자들을 다 너덜너덜하게 만들어서 죽이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시든지.
'섹스! 섹스!' 말만 해댔지 그게 실제로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아는 남자가 얼마나 될까. 내 책상에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화학 생물 원서가 굴러다녔고, 나는 내 미래 안전과 생존을 위해 성생활에 관한 백과사전적 지식은 이미 스무 살 때쯤에 최대한으로 장착한 다음이었다. 그런 기준으로 지금까지 보건대 섹스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한국 남자는 한 명도 없었다. 단 한 명도.
어디 야동이나 찌라시 등에서 본 허접한 지식들이 머릿속에 헛바람만 잔뜩 채우고 있다. 생명을 어떻게 돌보는지 모르는 어린애에게 병아리나 햄스터를 사주면 그 운명이 어떻게 되나? 글쎄, 산부인과 등의 계열에서 일하는 남자라면 혹시 모르겠는데, 그런 직종이랑 자 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고. 그래서 그나마 고분고분 내 말이나 잘 들으면 최상의 상대인데, 안타깝게도 나는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남자한테는 성적 매력을 많이 못 느낀다. 굉장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그 작은 뒷골목의 절대권력자들에게 내가 잘 팔렸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무시무시하다. 내가 그들을 어떻게 힘으로 설득하겠는가?
목숨을 걸고 일할 것 같으면, 확실히 나는 돈을 더 받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