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됨의 기록: 7. 대체 뭐가 힘들단 말인가?

생각하다성노동

창녀됨의 기록: 7. 대체 뭐가 힘들단 말인가?

이로아

 ‘몸을 파는’ 게 힘들지는 않아?

여성은 상품으로서의 가치밖에 없다는것. 남자들의 찬양은 오직 내가 그들 앞에 아름다운 여성으로 존재할 때만 주어지지, 그들에게 보여지지 않는 부분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그런 기만을 느끼는 것은 바깥의 젊은 여자들도 마찬가지임을 알고 있었다. 단지 성노동시장이라는 인위적인 공간에서 함축적으로 그것이 보였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창녀를 다른 여자들로부터 타자화하는 시선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 내가 가장 ‘좆같게’ 느꼈던 것은 어떤 창녀로서만 할 수 있는 노동이 아니라 여자라면 당연히 느끼고 사는 존엄 문제였으니까.

그렇다면 정말로 이 일은 힘든 일일까.

혹자는 성판매를 편히 앉아서/누워서 돈 버는 일이라 하고, 혹자는 굉장히 힘든 일이라 동정의 시선을 보낸다. 글쎄, 둘 다일 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었다.

어딜 가나 나는 손쉽게 에이스가 되었다.

일하면서 주변 사람들은 누구나 나를 긍정적으로 평했다. 눈치 빠르고 손님 잘 다루고 돈도 잘 벌어왔으니까.

놀랍게도 이제껏 사회의 구구한 ‘착하고’ ‘현명하고’ ’강하고’ ‘그러면서 예쁘기까지 해야 하는’ 기준들을 내면화하고 살았던 것에 비해 그냥 좋은 창녀가 되는 일은 식은 죽 먹기 였던 것이다. 여태 강박처럼 추구해왔던 목표를 살짝 비틀기만 하면, 이곳의 논리 안에서 ‘가장 착하고’ ‘가장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은 단순한 과정이었다.

대체 뭐가 힘들단 말인가?

예쁘게 꾸미는 것은 남들이 다 해주니 나는 비위만 조금 내려놓으면 되었다. 남자들 세계에서 되도않은 음담패설을 참고 들어주는 것과 비슷한 비위였다. 술은 원래부터 말술이었다. 취하지 않은 채 손님들을 잘도 상대하고 돌봄노동을 했다. 대중가요 취향이 약간 이상한 것도, 잘 못 노는 것도 예쁘면 다 용서가 되고 붙어앉아서 허벅지 잘 만지게 해주면 만사 오케이였다. ‘여자 중의 여자’가 되자 나는 쉽게 칭찬받았고 쉽게 돈을 벌었다.

오히려 이곳은 여성성에 대해 사회에 만연한 모순이 없는 곳이었다. 이 곳은 여자에게 ‘생활력 있거나’ ‘현명하거나’ ‘남자를 잘 이끌어주거나’ 하는 약한 남자의 요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 순전히 ‘아름답고’ ‘애교를 잘 떨고’ ‘고분고분한’ 것만 요구했다. 아무도 성을 억압하지 않고, 성적인(업무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불필요하게 얼굴을 붉히거나 추근덕댐을 걱정하며 몸을 사릴 필요도 없었다. 그 안에서 아가씨들은 연극으로나마 공주의 역할을 했고, 심지어 시중을 들어줄 사람들도 잔뜩 있었단 말이다!

덕택에 노동환경은, 그놈의 자존심과 비위만 포기하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성노동 환경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말했지만 이 바닥은 무법지대니까, 개인이 강하고 잘나갈수록 좋은 환경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간혹 진상을 부리는 손님들도 있었지만, 정말로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논리적으로 말하면 실장들도, 다른 마담들이나 웨이터나 누구라도, 다 들어주었다.

기묘한 편안함이 나를 둘러쌌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한 가지 일만 잘하면 충분했던 것이다. 밖에서 다른 일을 하면 ‘그 일을 하는 사람’인 동시에 ‘힘없고 만만한 젊은 여자’라는 역할도 수행해야 했는데, 여기서는 한 가지만 하면 되니 얼마나 편했겠는가. 심지어 돈도 잘 벌리고.

노동의 영역과 일상생활의 영역이 철저히 구분되기만 한다면 전혀 힘들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조금이라도 섞이는 순간 내가 어떤 위험이 닥칠지 사실은 언제나 알고 있었다. 아웃팅? 그것도 중요했지만, 내가 의식적으로 성노동과 일상의 가면을 구분하고 있지 않는 한 내 인격에 무슨 붕괴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했다.

그리고 그 ‘구분’을 다른 사람이 해주는 게 아니라, 항상 내가 혼자 몸으로 힘써 유지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 바로 그 점이 힘들었다.

누가 이 단단한 천국의 껍질을 깨뜨리는가.

손님들은 순진하게도 내 ‘진짜 신분’을 알기 원했다. 예명 말고 진짜 이름을 가르쳐달라고, 성을 가르쳐달라고. 그게 그냥 호기심과 사랑의 발로였을까. 내가 진짜 ㅇㅇ대생인지, 그런 년을 자기가 지금 돈주고 앉혀놓고 이야기하고 침대로 데려갈 것인지 확인해서 자랑이라도 하고싶었는지 모른다.

글쎄, 조금은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모두의 일상과 완전히 분리된 이 공간에서는 누구도 실제 신분을 묻지 않았다. 내가 ㅇㅇ대생인 것은 진짜였고 학교도 다니고 있었지만, 우리 팀에 있던 다른 아이들도, 우리 실장도, 출근하는 가게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럴싸한 학벌 하나쯤은 내세우고 있었으니까. 그 중 어느 게 진짜고 어느 게 가짜인지는 거의 알 수 없었다. (나를 후배라고 예뻐하던 모씨는 아마 거짓말이었으리라는 것을 나중에 짐작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종사자들에게는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규명할 수도 없고, 규명해봤자 서로 좋을 것도 없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그게 구매하는 손님들 입장에서야 뭐 식재료 원산지 밝히는 것처럼 중요했는지 모른다. 그게 문제였다.

지명을 받기 위해 핸드폰 번호를 가르쳐주면 일상에 위협이 왔다. (친한 웨이터가 말하기를 웬만하면 핸드폰을 두 대 파라고 했다. 낭비인 것 같아서 실행하지는 않았지만.) 삼촌 따라 왔다는 젊은 손님은 나하고 섹스프렌드가 되기를 원했다. 나이도 비슷하고, 배운 것도 비슷하고. 그럭저럭 재미있는 친구였기 때문에 자취방에 한 번 불러서 섹스하고 연락을 차단했다. 그 얼굴이나 아랫도리가 그리 나쁘진 않았지만, 내가 돈 받고 파는 서비스를 그에게 공짜로 나눠줄 정도로 친밀한 사이가 될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친구로 만났다면 뭐, 그가 원하는대로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

어떤 신파스러운 아저씨는 지명손님이 되었다가 진상손님이 되었다가, 거의 스토커가 되기 직전 단계에서나 떨궈낼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있는 잠자리에서 태연히 마누라 전화를 받고 응 사랑해 곧갈게 쪽—같은 멘트를 치는 주제에 나에 대해서는 뭘 그리 속속들이 알고 싶어했는지 모른다. 일을 해야 하는 시간에 억지로 불러내서 돈 한푼도 주지 않으면서 (밥은 사줬다. 후식도.) 내가 가진 사상, 내가 쓰는 글, 내가 공부하는 것을 묻고 토론하면서 무슨 뿌듯함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날 출근했다면 벌었을 수입을 생각하니 그 자리가 불편해졌고, 새벽까지 있었지만 그가 실질적으로 내게 도움될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를 내며 떠났다. 길바닥에서 징징거리며 나를 붙잡는 그를 후려치고 집으로 갔는데, 그는 며칠 후에 또 손님으로 와서 나를 지명했다. 

기가 막히게도 나를 거쳐간 손님의 거의 전부가 나하고 섹스가(속궁합이) 잘 맞는다고 말했다. 그럴 리가 없지. 내가 잘 맞춰드린 거지. 

게다가 나는 아직도 남사친들이랑 놀던 가락이 양념처럼 남아있어서, 나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누구나 편안한 동성친구처럼 속을 터놓았다. 누구는 울고 누구는 두시간씩 혼술을 하며 기다리기도 했다. 

그들은 나하고 연애를 하고 싶어했다. 아마 ‘여성성’을 달성한 나는 좋은 연애 상대였나 보다. 하지만 그것은 내 노력의 산물이었고, 성노동 주변산업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였고, 실제 내가 아니었다. 

‘실제의 나’는 그 연애공간에 없었다. 있어서도 안 되었다. 그래서 그것을 추구하는 그들을 빨리 내 ‘삶’으로부터 처리해야 했고, 언제나 그게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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