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비를 위해 바텐더를 하고 있다는 명문대생의 고백은 기이한 자기변호로 둘러싸여 있었다. 예전에 나온 고대신문의 기사도 그랬지만, 최근에 서울대 대나무숲에서 본 글은 더더욱 그랬다.
‘학비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실제로 몸을 팔지는 않았다.’
그 변명이 구구할 정도로 길었다. 마음먹고 '창녀됨'을 고백하면서, 그나마 눈 뜨고 '고백' 할 수 있는 부분은 실제로 섹스 서비스를 하지 않은 부분까지라니 아이러니했다. 그러면서도 그 아래 달리는 수많은 악플들을 보니 뭐라도 내세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으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창녀임을 고백한 사례들은 여럿 있다. 얼마전에는 #나는_창녀다 해시태그가 유행한 적 있었다. 여자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이 사회에서 비주체적으로 창녀됨의 압력을 받는다는 의미였다.
‘몸을 팔지는 않은’ 것은 그나마 몸을 팔지 않을 수 있었던 자들이 얼굴을 들고 다니는 최후의 자존심이다. 반면 ‘실제로 몸을 팔고 있는, 판’ 자들은 주로 자신이 처한 열악한 현실—생활고, 직업선택의 부자유, 현재 당하고 있는 비참한 대우 등을 말한다. (전자와 후자가 싸운 것도 훌륭한 분할통치의 결과물인지 모른다.)
나에게 ‘왜 몸을 팔았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일단 생활고나 학비 때문이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위의 틀에 나를 간단히 끼워 맞춘 대답일 뿐이다.
어디부터 말하는 게 좋을까.
세상 물정을 알기도 전부터 이미 창녀라는 개념은 내 곁에 있었다.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새벽부터 아르바이트를 다녔던 젊은 어머니는 얼마 후 아버지로부터 ‘온 동네에 꽃 팔고 다니는 년’이라고 욕을 먹으며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너무 어려서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게 창녀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 자라면서는 그것이 나를 향했다. 방황하는 고등학생, 재수생이었던 나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협박했다. ‘네가 가출하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꼴을 당할 것이다. 네 나이의 여자아이가 가정의 보호 없이 밖에 나가면 무슨 일을 제일 하기 쉬운지 몰라서 그러느냐.’ 차마 직접적으로 말은 못 한 모양이지만, 이것이 창녀가 되리라는 저주인 줄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 훈계가 한 번에 몇 시간씩, 내가 사고를 칠 때마다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아버지라는 가부장은 유능한 군주였고, 부당한 폭군이었다. 그에게서 탈출하는 방법으로 ‘창녀됨’은 청소년기 내 의식 한구석에 암덩어리처럼 도사리게 되었다. 집에서 한 발만 나가면 ‘창녀’가 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직업소개였고, 가정에서 억압된 나를 해방할 빛이었다. 그렇게나 창녀를 타자화하고 욕하면서도 ‘이 멀쩡한 가정’은 내게 창녀가 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교육하지 않았다. 우스운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소위 멀쩡한 집안의 규수로 자라나, 어느 날 생활고에 직면해 창녀되기를 결정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말로 어째서 ‘내 인생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는’ 더 긴 설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물론, 이 땅에서 ‘비주체적으로 창녀되며’ 살아가는 ‘20대 여자의 삶’과 관계가 없지는 않았겠지.
나는 20대 초반까지는 '처녀'였다.
나는 연애를 한 적도, 짝사랑을 한 적도 없었다.
‘남자사람친구’는 많았다. 아니, 오히려 여자들 집단에서보다 남자들 집단에서 나는 더 잘 어울렸고 더 잘 나갔다. 그 안에서 나는 한 번도 무엇으로 져본 일이 없었고, 언제나 최고였고, 강자였고 베풀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여자’라고 인식하고 사는 법을 몰랐다.
나는 그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다녔고, 밤새워 긴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그들을 내 자취방에 불러 재우거나 내가 그들의 자취방에 가서 자기도 했다. 그 중에 나와 섹스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당연했고, 아무도 묻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No든 Yes든 대답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 자취방의 늙은 집주인은 내가 집에 ‘남자들’을 끌어들인다고 부모님께 알렸다. 나는 내가 결백(?)하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까지의 나는 여자로서 져야 하는 사회적 편견에 좀 시달리긴 했지만 그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되지는 않는 ‘온전한 사람’이었다. ‘온전치 못한 여자’가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다.
한편, 그때도 나를 좋아한다고 몇 년 동안 나를 쫓아다닌 동갑내기 남자가 있었다. 나는 그 연애감정이라는 것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와 오랜 친구로 지냈다. 친구가 되기에도 과도한 격차가 난다며 여자사람친구들은 말렸지만 나는 착하고 올곧아야만 했기 때문에 그도 똑같이 친밀하게 대했다. 연애 같은 특별한 인간관계는 순전히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나는 모든 ‘친구’들을 평등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내 자취방에서 잔 날, 나는 강간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