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됨의 기록: 8. '술 파는 여자'

생각하다성노동

창녀됨의 기록: 8. '술 파는 여자'

이로아

까놓고 말해서
술을 따르는 게 뭐가 잘못되었나

나는 대학교 1학년때도, 고등학교 1학년때 선배 손에 이끌려 처음 밖에서 술을 마셨을 때도, 그 전에 집안 어른들이 주는 음복 한잔, 반주 한잔을 받아 마셨을 때도 술에 잘 취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제정신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탓도 있겠지만 나는 일단 겉보기에 술 취한 게 얼굴로 드러나지 않는 체질이었고, 덕택에 언제나 술자리에서 주량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남자들의 유치한 남성성을 마구 짓밟아줄 수 있기도 했다. 좋은 일이었다.

술에 취해 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다른 사람(주로 남자)에게 슬쩍 의지하거나 하는 일은 한 번도 내 역할이 아니었다. 

아마도 그래서겠지만, 나는 남자에게 여자가 술을 따르는 풍경을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물이나 주스를 따라주는 것과 뭐가 다르지? 어릴 때부터 집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밥줘충 물줘충 노릇을 하는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이런저런 귀찮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보아 왔다. 그것은 내가 조금 자라자 딸인 내게 계승되었다. 

“아버지 물 한잔 갖다 드려라.” 

안 하면 야단맞았다. 아들 놔두고 딸에게만 시키는 것이, 어머니 놔두고 아버지에게만 하라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굳이 못할 정도의 힘든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자라 왔으니, 술을 따르는 것도 그것과 완전히 같은 맥락의 일이었을 뿐이다. 

더 나아가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서로 주거니 받거니, 남녀 생각하지 않고 술을 따랐고 또 받았다. 그런 자리에선 식탁에 앉으면 여성인 연소자가 어르신들께 수저를 놓고 물 한잔씩을 따라서 앞에 놓아 드리는 게 마땅한 예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물을 다 따라주었고, 그건 당연하고 가정교육을 잘 받은 행동으로 평가받았다. 이상한 것은 없었다.

대학에 가서도 그렇게 했다. 교수님이 소집한 술자리에서도 교수의 ‘암 젊은 여자가 따라주는 술이 맛있지’ 따위 말을 그냥 드립으로 알아들으며 교수님께 술을 가득 따라드렸다. 그런 게 통념상으로 수치스럽게 여겨지는지, 성희롱이었는지는 나중에 다른 여자들이 그것에서 수치심을 느꼈다는 고백을 잔뜩 들은 다음에야 알 수 있었다. 왜 그녀들이 그걸 수치스러워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직업적으로
남자 손님들에게 술을 따라 드리는 일을 하게 되었단 말이다.

글쎄, 잔에 액체를 따라 갖다준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냥 사소한 돌봄노동일 뿐이다. 여자만이 남자에게만 해주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부당하지만, 딱히 못해줄 정도까지는 아닌 사소한 일. 이 노동이 왜 ‘술을 따르는’ 것만으로 그렇게 멸시당하는지, 수치스러운 일이라 여겨지는지, 나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어차피 술집년들은 몸을 팔게 되어 있다

룸의 아가씨들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그건 무의미한 분류일 수도 있긴 한데, 테이블에서 술만 따르는 아가씨와 2차를 나가는 아가씨가 그것이다. 테이블만 보면 팁을 제외 테이블당 9만원가량을 받고, 2차를 나가면 역시 팁을 제외하고 TC(테이블 차지) 이외에도 성판매 비용으로 20만원가량을 더 받는다. 보도 봉고버스를 타고 더 많은 일을 찾아 돌아다니는 경우에는 수수료 10프로 정도씩을 더 떼고 받는다고 한다. 난 한 군데 죽치고 앉아 있는 걸 좋아해서 보도 일은 안 해봤지만.

아무튼, 흔히 말하는 ‘술집 여자’라는 건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범주화가 가능하다.

  1. 바에서 술을 팔거나
  2. 노래방이나 룸에서 술을 따르거나
  3. 혹은 술도 팔고 2차를 나가거나

종사자 본인은 전자로 갈수록 자기가 ‘순결’같은 것을 지킨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내가 바에서 일하지만 몸을 팔진 않았어! 하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수법이다. 1차만 나가는 아가씨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정당화 할 수 있다. 내가 술은 팔지만 몸을 팔진 않아!

하지만 실제로 1차 아가씨들과 나 같은 2차 아가씨 사이에 느껴지는 사회적 차별 같은 것은 없다. 어차피 술집년이고, 직접적으로 보지를 팔았든 팔지 않았든 누구나 쉽게 돈만 주고 섹스할 수 있을 창녀라고 여겨지는 것을 어디서든 보았고 지금도 계속 보고 있다. 믹키유천 화장실 성폭행 사건에 대한 군중들의 평가를 보라. 그 피해자라는 사람은 2차가 없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는데, 까짓거 창녀 좀 강간했다고 그게 범죄냐고, 그냥 돈 주면 되는 것 아니었냐고 하는 반응을 얼마나 많이 접했던가.

한 번은 1차만 나가기로 하고 내 밑으로 들어온 여자애에게 우리 착한 실장이 매우 친절하게 말했었다:

이 바닥 들어온 이상 2차를 나가든 나가지 않든 네 신분은 똑같다. 술집에서 일한 여자다. 네가 집안사정으로 빚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기껏 화장하고 머리하고 나와서 테이블만 보면 운 없는 날은 본전치기하고 네 생활비 하면 끝이다. 그렇게 해서 언제 돈을 모으냐. 매일 술 먹고 몸 망가지고. 여기서 평생 살 거 아니잖느냐. 2차 나가서 빨리 돈 벌어서 여기 청산하는 게 너 승리하는 길 아니냐.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 아이는 2차를 나갔다.

즉, 직업적으로 술을 따르는 여자는 스스로가 자신을 얼마나 정당화하냐와는 상관 없이, 보지를 파는 년이다. 그렇다고들 하신다. 실제로는 아니더라도, 그 본인은 아니라고 열심히 스스로를 변호하더라도,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에는 경계가 거의 없다.

왜 하필 술 파는 것이 창녀의 상징이자 전유물일까

이상한 일이다. 술을 따르는 사람은 왜 다른 서비스업 종업원들과 달리 특별하게 취급될까?

아니, 딱히 특별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술 따르는 것 말고도 다른 많은 직업이나 역할의 여자들은 창녀 혹은 창녀에 가깝도록 쉬운 여자로 꾸준히 간주되어 왔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없던 시대에는 여자가 집 밖을 나다니는 것도 창녀와 동일한 취급을 받았다. 나는 지금도 도대체 엄마가 젊은 시절에 그 힘든 아르바이트를 다닌 것이 ‘꽃 파는’ 짓으로 불렸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과 동일노동을 하고 있는 지금 길거리의 수많은 친절한 아주머니들이 ‘꽃 파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남자들에게만 허용되는 공간에 ‘감히’ 발을 내딛은 여성들은 항상 ‘창녀’였다. 실제로 몸을 팔지 않았어도 여염집 여자보다 훨씬 쉬운 취급을 받았던 전근대의 기생, 학교에 간다고 조신하지 못하다고 멸시 당했던 근대의 여학생,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커리어에 뛰어들면 몸을 팔아 승진한다거나 유사 연애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지금의 여성 직장인. 그녀들이 실제로 자기 시대에 비해 개방적인 성생활을 즐겼는지는 알 바가 아니다. 단지 표면적으로 알 수 있는 그녀들의 공통점은 남자들에게 많이 보여졌다는 것뿐이다. 여자를 사람이 아닌 먹잇감으로 생각하는 구시대인들에게 본의 아니게 성적 대상화를 많이 당했을 뿐이다.

창녀를 규정하는 기준은 여자 자신의 의지나 행동이 아니라, 그 여자가 ‘얼마나 (평균적으로) 많은 남자들에게 보여지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자를 관음하는 남성 집단의 젠더 감수성에 따라 그 여자가 창녀인지 아닌지가 결정되어 버린다. 그 여자가 정말로 어떤 의도로 그 직업을 선택했고 그 활동을 하는지는 전혀 판단의 기준이 되지 못했다. 아무도 관심도 없었고.

다시 술을 따르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술을 따르는 일은 노동으로 치자면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다. 일하는 여자 쪽에서는 굳이 술에 취할 필요도 없고, 반대로 안 취하려고 기를 쓰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파는 여자는 팔기 전이나 후나 자기 자신을 유지하며 평온하고 기계적이고 변함이 없다.

무엇이 창녀를 결정하는가. 

술을 팔기 전과 팔고 난 다음에 치명적이고 필수적으로 달라지는 한 가지가 무엇인가. 술을 마시는 남자가, 그 정신상태가, 마시기 전과 후에서 달라질 뿐이겠지. 자제력이 내려가고 아무나 예뻐 보이고, 서지도 않는 고추를 어디다가 써먹고 싶어서 안달나게 되겠지.

그리고 그 현장에는, 공교롭게도 술을 판 여자가 있는 것이고.

술을 따라주는 여자의 행동 자체는, 그 여자가 아무 생각이 없다면 그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여자가 남자에게 술을 따라주면 남자는 자제력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그걸 아는(혹은 여자라면 ‘당연히 알아야만 하는’) 여자가 남자에게 술을 따라 준다는 것은, 보시는 남자님들의 입장에서 참으로 창녀의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아, 이년이 나를 유혹하는구나!’하고.

왜? 멋대로 자제력 잃어버리고 허락도 없이 발정난 건 너네들인데, 왜 단순히 돈 받고 서비스노동 열심히 하는 술집 종업원이 너 특별히 섹스시키려고 술 줬다고 생각하는거지? 2차 안 나갈 건데, 혹은 네가 2차 지불 안 할 거라고 했는데, 왜 테이블에서 굳이 꼬셔서 섹스하려 들거나 밖에서 따로 만나자고 하는 거지?

술을 줬으니까 섹스를 허락한 것이다—참으로 ‘유혹했으니까 성폭행당할 만하지’라는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 유혹을 누가 했다고. 돈 내고 술 먹고 돈 내고 남의 몸매 감상하고 있으면서 별 걸 다 망상하네. 허허.

편의점에서 일하느니 고오급 화류계에서 일을 하고 말지

그런데 이제는 시대가 시대라서, 젊은 여성은 조신하게 신부수업이나 받고 결혼하기보다는 감히 제 갈 길을 찾아 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딜 가나 젊은 여자가 서비스직을 하면서 불특정 다수 남자에게 성적대상화를 안 당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한국에서는 어딜 가나 종업원으로 예쁜 여자를 찾는다. 기술이나 자격증이 있다면 안 예쁘다고 안 뽑히거나 잘리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덜 선호된다.

그런 서비스업을 이용하는 손님중에는 질이 나쁜 놈도 있고 물론 좋은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오래 일하다 보면 결국 별별 인간을 다 만나게 될 테고, 질 나쁜 놈을 만나면 당하는 일은 결국 어느 서비스업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여자는 여자 사람이 아니라 성적 대상이고, 심지어 생물학적 성이 여성인 호모사피엔스도 아니라 그냥 걸어다니는 보지나 오나홀쯤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여성의 인격이며 의사 따위는 사뿐히 무시된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고 물으면 손님은 ‘돈을 냈으니까’, ‘돈을 낸 대가로 예쁜 여자가 자기한테 굽실굽실거라고 있으니까’라고 답한다. 창녀가 해야 하는 일과 완전히 동일한 셈이다. 편의점 캐셔 여자가 자기한테 방긋방긋 웃으면서 안녕히 가시고 또 오시라 했으니까 이 여자가 나를 좋아하나보다? 돈 내고 물건 사가면서 별 걸 다 망상하네. 하지만 그 여자가 손님에게 인상을 쓰면 손님이 떨어지고 업주한테 야단을 맞을 뿐이다. 성노동자나, 편의점 알바나. 똑같다. 아니, 오히려 성노동자에게는 업주가 유하게 야단을 치는데, 그 이야기는 조금 나중에.

그러니까 뭐가 됐든 웬만하면 질 나쁜 놈들을 적게 만날 수 있는 업종을 선택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런 덜된 인간은 자기가 많은 돈을 지불한 상대에게 더욱 조심을 한다. 500원짜리 뽑기가 아니라 몇십만원짜리 비싼 피규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돈 받고 팔려나가는 인격이라면, 많은 돈을 받고 팔리는 것이 이후의 상품 인생에 비교적 안전하다.

나는 상품이고, 가장 적은 부분을 가장 비싸게 파는 것이 이성적 판단이었다. 그게 수치스러울 이유는 없지. 생각해 보면 이 노동소외의 자본주의 마당에, 어차피 현대의 모든 경제활동인은 자신을 시장에 내놓고 판다. 상품인 것을 피할 수 있는 직종은 없다. 더욱이나 여자라면, 자기 몸에 대한 부분까지도 말이다.

좀 ‘정당한’ 알바를 해보는 것은 어땠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었다. 

글쎄, 나는 물건을 팔려고 한 적도 있고, 단순 서비스노동을 하려고 한 적도 있고, 나름 학벌을 이용해서 지식을 팔려고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거기서 나는 ‘어린 여자’였고 실제로 팔리는 것은 나의 여성성과 외모를 덤으로 합한 만큼이었다. 그 부분은 내가 팔겠다고 결정한 적도, 상품으로 준비한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심지어 그런 일을 하기 시작한 후 조금 지나자 내가 힘없는 어린 여자라는 이유로 적당히 후려치고 속여넘겨 쫓아내는 게 그 직종의 전문가들이었다. 당시에 난 내가 성격이 틀려먹어서 손님들에게 충분히 친절하지 않은 줄 알았고, 과외학생 가르치는 스킬이 도무지 없어서 번번이 알바를 그토록 자주 잘리는 줄 알았다. 친절이야 뭐 그렇다 쳐도 과외 같은 경우엔 내 실력이 그렇게 없나 싶어 오랫동안 자격지심에 휩싸여 살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과외알선업체들이 첫 달에만 50프로 수수료를 뗀다는 조건을 내세우며 중개를 해준 후 학생과 선생 사이를 이간질해서 다음달에는 또 다른 선생으로, 다른 학생으로 바꾸게 만든다나..

차라리 성노동이, 그 제도적 불법성만 제한다면 정당한 판매고 정당한 노동이었다. 나는 성노동을 준비해서 성노동을 하러 갔고 최선을 다해 성 서비스를 제공했다. 손님들은 내 성을 필요로 했고 서비스에 만족했고 성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다.

다른 노동을 하러 가서 엉뚱한 노력을 기울이다 정제 안 된 여성성의 판매를 강요당해 욕이나 얻어먹는 것보다는 매우 성실하고 정직한 일이었다.

더욱이나 내가 내 다른 어떤 기술이나 지식을 파는 것보다도 성노동을 할 때 나라는 상품에 매겨지는 단가가 가장 높았단 말이다. 설령 그게 성노동 주변산업—헤어, 네일, 의상 렌탈, 야식 등—에 대한 가치까지도 포함한 지불이라서 내게 떨어지는 중간마진이나 순이익은 적다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높은 단가를 달고 전시된 ‘예쁜 피규어’는 부당한 감정노동이나 해고의 위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그래서 젊은 여자가 대학 졸업장을 따내기 전까지, 어떤 명확한 전문성이나 기술도 인정되지 않은 채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솔직한 노동은 성노동이었다. 씁쓸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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