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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으로 탐폰을 써 봤다

해일

‘뭐야? 나 지금 이거 넣은 거야?’ 성경험이 없었던 내가 탐폰을 처음 써 본 소감이었다. 탐폰은 신세계이니 어서 빨리 갈아타라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도 섣불리 탐폰을 쓸 생각을 하지 못한 이유는 복잡했다. 질에 뭘 넣는다는 것 자체가 그냥 두렵기도 했고, 아주 드물다지만 혹시라도 독성쇼크증후군이 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아직까지 ‘처녀막은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 것도 거부감에 한 몫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거부감을 극복하고 탐폰을 써보려고 마음을 먹을 때면 생리가 끝났다. 그래서 ‘이번 생리에는 기필코 패드 생리대를 벗어나겠다’ 고 마음을 먹고 동네 드럭스토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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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먹으면 되지

문여일

처음 사후 피임약을 복용한 것은 스물 한살 때의 일이다. "콘돔 빼고 몇 번 왔다갔다 하기만 하면 안 돼?"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말을 했던 당시의 남자친구는 나의 첫 성관계 상대였고, 나는 그가 요구하는 것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콘돔 없이 삽입했고 얼마 안 있어 덜컥 겁이 난 나는 얼른 빼라고 말했다. 어디선가 쿠퍼액으로도 임신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남자친구는 정말 몇 번 왔다갔다 하기만 했기 때문에 임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설득했지만 나의 불안함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결국 다음 날 아침, 산부인과로 향했다. 마치 벌을 주듯이 남자친구도 끌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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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연대기 (中) : '뚱뚱함'에 덕지덕지 붙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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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부터 만화를 무척 좋아했다. 10대 때부터는 케이팝과 아이돌 산업에 관심이 많았고 영화도 물론 좋아해서 시간이 날 때는 채널을 가리지 않고 보며 하루를 다 보내기도 했다. 내가 어릴 때 뚱뚱한 여성은 만화나 영화에서 조연으로나 잠깐 나왔다. 연예인 중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그 마저도 '요요 현상' '다이어트 비법' 과 함께 헤드라인에 실리거나 아침 프로그램에 초대 받았다. 날씬한 사람이 뚱뚱해지면 추락 운운하며 전후 사진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해 비교했고, 그가 감량에 성공하면 이전의 커리어를 회복하는 게 아니라 건강식품 및 운동기구 광고로 소진되는 것을 보아야 했다. 온전히 뚱뚱한 사람이 뚱뚱한 채로 자신의 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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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연대기 (上) : '뚱뚱함'으로 내게 남겨진 상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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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OO 언니도 이렇게 살 빼면 예쁜데.. 안 뚱뚱해요ㅠㅠ” 라는 내용과 함께 포토샵으로 뚱뚱한 여성 연예인의 턱을 갸름하게 수정한 사진을 보았다. ‘지금 이대로도 당당해서 멋지다’ 라는 말과 ‘살 빼면 예쁜 얼굴’ 이라는 말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몇 번에 걸쳐 삭제되는 뚱뚱한 사람의 ‘지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날 밤, 샤워를 하기 전, 거울에 내 몸을 비춰보았다. 문득 어떤 완성된 형태의 신체를 향해 가는 길목, 과정으로서만 존재하는 뚱뚱한 내가 아닌 매 분 매 초 존재하는 내 몸의 인생에 대해 어떤 것이든 써서 남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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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두는 죄가 없다

이가온

초등학교 때 처음 브래지어를 살 때는, 솔직히 설렜다. 왠지 모르게 그것을 착용하는 게 어른이 되었다는 징표인 것만 같았고, 나는 스스로의 조숙함에 만족스러워하며 주니어 브래지어를 입고 다녔다. 물론 그렇게 브래지어를 입기 시작한 지 십 수 년이 훌쩍 넘은 지금, 나는 과거의 나를 보며 묻는다. 그 때의 넌, 왜 그렇게 브래지어를 좋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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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헬스장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

Holly

스콰트에 열중하다가도 요가 바지에 꽂히는 시선. 꽝꽝 울리는 힙합 음악에 맞춰 신나게 크런치를 하다가도 먼 발치서 느껴지는 음습한 눈길들. 내 몸을 사랑하기 때문에 온 헬스장에서, 나는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내 가슴과, 엉덩이와, 허벅지와 숨소리를 관음당한다. 그래서 묻는다: 운동할 때 당신은 진정 자유로운가? 나는 항상 “운동을 통해서 신체의 자유를 얻었다”는 논리로 주위에 운동을 권유한다. 학창시절 내내 마음에 안 들던 내 몸이 운동을 통해 실제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고, 설령 일이나 회식 때문에 특정 시점에 둥그런 맥주 배가 생기더라도 언제든지 노력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유동적(fluid)인 몸 이미지를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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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별당하지 않을 권리

오혜진

20여 년 만에 다시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다. 내 체력은 늘 성과 없이 바닥을 치는데 MB는 오랜 시간 테니스로 단련된 건강을 자랑하며 천수를 누린다니 왠지 억울해져 시작한 운동이다. 오전 9시 동네 체육관에 들어서면 기묘한 활기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수십여 명의 중년・노년 여성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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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연대기(下) : 천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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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른 사람의 삶이 궁금할 때가 있다. 나와 비교당하는 수 많은 날씬한 여성들의 삶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새로 바뀐 놀이터 그네에 엉덩이가 끼어 아프진 않을까. 손잡이가 달린 버스 좌석에 앉을 때 불편하지는 않을까. 여름에 얇은 카디건을 걸쳐도 덥지 않을까. 이렇게 더운데 땀이 나지 않을까. 처음 보는 낯선 남자와 한 엘리베이터에 타도 아무렇지 않을까. 뷔페에서 밥 먹을 때, 동료들과 식사를 할 때 눈치가 보이진 않을까.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 직장에서 별 난관 없이 옷을 걸칠 수 있었을까. 만원버스를 타고 어떻게 서서 장거리를 갈 수 있을까. 허벅지 사이에 흉터가 있지는 않을까. 여름엔 워터파크에, 겨울엔 슬로프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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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여자가 되면 13. 살로 된 갑옷

김현진

그리고 나는 살인자가 될 뻔 했다. 내 소중한 친구를 죽이고, 부부강간까지 일삼은 남편이라는 작자가 이 세상에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피는 피로 갚아야 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날카로운 칼을 하나 쥐었고, 친구 만나러 나가는 일도 없이 집돌이로 집에 있는 남편을 해하기 위해 오래 전에 뛰쳐나온 신혼집으로 돌아갔다. 합의 이혼을 위해 법원에 출석할 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칼자루를 꽉 쥐고 현관문을 열었다. 치가 떨리도록 죽이고 싶었다. 이 인간의 생명 같은 것은 이 세상에서 소멸되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이 인간이 쓰는 산소도 아까웠다. 그런데 일 년에 한번 친구를...

트레이너와 나: 아니요, 저는 다이어트 안 하는데요

신한슬

헬스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좁은 복도를 따라 가면 여러 장의 사진들이 줄지어 붙어 있다. 머리가 없는 여자들의 몸이다. 모두 스포츠 브라와 트레이닝복을 입고 배를 드러냈다. 두 장이 한 세트다. 같은 사람인데 왼쪽보다 오른쪽이 더 마르고 탄탄하다. 나는 헬스장에 갈 때마다 이 사진들이 무섭다. 전부 머리가 없고 목에서 뚝 잘려 있기 때문이다. 라커룸으로 향하는 5분, 복도 자체가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 ‘눈, 코, 입은 필요 없어. 뇌도 필요 없어. 너는 몸이야. 여기는 몸만 존재하는 곳이야.’ 이 복도는 사실 ‘명예의 전당’이다. 사진이 붙은 사람들은 원래는 ‘왼쪽 몸’이었다. 그러나 가혹한 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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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너와 나: 무거운 여자

신한슬

트레이너가 종종 양말을 벗고 올라가게 하는 기계, 인바디의 측정 결과에는 BMI라는 것이 나온다. 다이어트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거나 자신이 비만일까봐 두려워하는 여성이라면 한 번쯤 봤을 단어다. 체질량지수(Body Mass Index)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숫자 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에 따르면 높은 BMI는 높은 체지방량을 의미할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 개인의 건강이나 체지방량을 진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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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을 때 턱을 당기기 싫은 자의 변

염문경

얼마 전에 사진을 찍었다. 배우가 아닌 작가로서의 프로필 촬영은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순식간에 끝나서 어리둥절했다. 찍은 사진들을 대강 모니터로 체크하며 나는 머쓱해서 선수 치듯 말했다. “제가 원래 턱 당기란 말을 자주 들어요.” 그도 그럴 것이, 그 짧은 촬영 중에도 나는 사진 작가님께 ‘예, 턱 쫌만 더 당기시고’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에디터의 반응은 의외였다. “아뇨, 전 턱 든 것들이 더 좋은데요. 더 강해 보이고. 멋있네요. 잘 나왔다.” 그 한 마디가 내게 준 충격의 파장이 의외로 컸다는 것을, 그 분은 모를 것이다. 뭐 그냥 해준 말일 수도 있지만... 사진작가님께, 감독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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