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생존기: 살아내는, 몸(1)

생각하다

온전히 생존기: 살아내는, 몸(1)

[웹진 쪽] 김경진

거울 앞에 서서 천천히 몸을 본다. 몸을 관찰하는 방법도 모르기 때문에 노력해도 세심하게 모든 것을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30분 정도 꼼꼼히 시간을 들여 발가락부터 이마까지, 뒷모습도 관찰한다. 시선이 떨어지는 곳마다 몸의 일부가 잔영으로 맺힌다. 근육선 하나 없이 마른 몸이다. 말랐다, 안쓰럽다, 그것이 내가 최초로 나의 몸에게 느낀 인상이다.

내 몸을 관찰하다

누드모델 일을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가장 처음 한 일은 몸을 관찰하는 일이었다. 몸에 소홀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결점으로 새겨져 있었다. 자해를 처음 한 열아홉 살, 갑자기 체중이 늘었던 열다섯 살, 다친 다리에 대한 기억. 몸을 되찾으려 고군분투한 기간들도 거기에 있었다. 몸을 관찰하는 일은 그간 몸에 새겨진 시간들을 느끼는 일이었다.

내 몸은 내가 10살일 때 외부로부터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은 아주 악하고 강력해서 나의 내부를 완전히 관통한 다음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었다. 그로 인해 이미 망가진 부분들은 돌아오지 않지만 나는 그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의 몸을 자랑스럽게 여겨 사랑으로 대해야 했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을까? 무대에서 몸을 움직이고 공개하는 일은 몸을 단련하고 훈련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당시 나는 몸과는 아주 무관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만성적인 다리 통증 때문에 걷는 것도 꺼려 했으며, 쥐가 났을 때 풀 줄도 몰랐다. 집에서 머리와 손으로 노동하던 사람이었다. 남들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한다는 사실은 별 걱정거리가 되지 않았다. 그게 걱정되고 수치스러웠으면 애초에 누드모델이 되어 보는 것을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내가 나로서 몸을 드러낼 권리를 스스로 선택하고 집행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일러스트 킨지

웹에서 읽은 누드모델 경험담에는 누드모델 업계에 전형적으로 예쁜 체형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 체형이 필요하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몸은 공평하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어느 정도 믿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스스로의 몸을 관찰한 날 나는 그대로 거울 앞에 서서 관련 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협회의 사람과 미팅 약속을 잡는 동안 계속 거울 안의 나를 봤다. 눈꺼풀은 크게 벌어져 있었고, 거울 앞에 편안히 앉은 몸은 여유로워 보였다. 거울 속에는 이미 권리를 획득한 한 명의 여성이 있었다.

누드모델 되기

면접은 간단했다. 테스트 차원에서 몸을 보여달라는 당연할 법한 요구도 없었다. 협회장(나에게 누드모델 일에 관한 이것저것을 가르쳐 주셨으므로 나는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님은 몸의 생김 보다 속에 ‘표현할 수 있는 무엇’이 들었는가, 그것을 얼마만큼 해내려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하셨다. 때마다 공연을 한다고 생각해도 좋다고 하셨다. 잘은 모르겠지만, 저 잘할 수 있어요. 잘하려는 일은 지금껏 다 잘했거든요. 선생님은 웃으셨다. 그렇게 누드모델이 됐고 몇 차례의 교육을 받았다.

누드모델의 기본 포즈는 입상이다. 입상 중에서도, 한쪽 발에 무게중심을 두고 다른 쪽 발의 무릎은 자연스럽게 약간 구부린 콘트라포스토가 기본이다. 무게가 다르게 실리기 때문에 얼굴-가슴-골반-무릎이 미묘하게 s자로 곡선이 되어야 하는데, 이 자세를 하며 나는 자꾸만 다른 모델들처럼 양 허벅지를 모으지 못했다. 대신, 힘을 싣지 않은 쪽의 허벅지가 바깥으로 벌어졌다. 때문에 하체의 커브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골반이 남들보다 오른쪽으로 비틀려 있었기 때문이다. 다친 왼쪽 몸 대신 오른쪽 몸으로 많은 무게를 감당하느라 나의 몸은 오른쪽으로 쏠려 있었다. 몸이 침묵하며 고군분투했구나. 

나는 그간 ‘나’를 구성하는 재료에서 몸을 제외해 놓고 살았다. 몸을 많이 등한시하고 하찮게 여겼다. 스스로 상처를 내고 아무렇게나 먹고 아무렇게나 대했다. 어디가 아픈지도 잘 몰랐다. 몸이 나 모르게 버텨내는 부분을 몰랐다. 몸이 외로웠겠다, 그런 생각이 들자 괜스레 마음이 찡했다. 그간 홀로 고생했다고 다독이며 몸을 안아주고 싶었다.

몸이 움직인다

무릎을 세우고 다리를 가슴 쪽으로 끌어당겨 앉았다. 그렇게 앉아서 연습 공간의 벽 한 면을 채운 거울을 통해 나 외의 다른 모델들이 음악에 맞추어 몸을 풀고, 몸의 기울기를 만들고, 몸을 들고, 몸을 눕히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는 모델도 있었고 반대로 팔을 높게 들며 고개를 드는 모델도 있었다. 각자의 하나, 각자의 표현, 각자의 몸. 생각은 문장으로 나열되지 않았지만 감동적이었다. 그런 마음 때문에 몰래 울었다. 그 주, 어느 겨울의 토요일 나는 처음으로 무대에 섰다. 누드모델은 탈의 후 대기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는 가운을 입고 쉰다. 나는 아직 가운을 마련하지 못해서 사전에 양해를 구한대로 협회의 모델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가운을 빌려 입었다. 선명한 분홍색의 두툼한 가운에서는 전날 세탁해 놓은 듯 섬유 유연제 냄새가 났다. 어딘가 안심이 되는 냄새였다. 누군가가 뒤에서 나의 휴식을 대신 준비해 놓았다. 그것이 안심의 이유였다.

시간에 임박하여 미리 준비해 놓은 음악을 틀면 소란하던 장내의 소음이 잦아든다. 음악이 가진 정서가 곧 포즈의 정서가 되기 때문에 음악은 아주 중요하다. 나는 누드모델로 일하며 여러 가지 음악을 준비해 사람들과 함께 듣는다. 탱고, 뉴에이지, 재즈, 국악, 한국 인디 밴드들의 음악,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보컬이 들어간 음악, 컨템퍼러리, 왈츠곡, 뮤지컬 음악을 틀 때도 있다. 그렇게 음악을 듣다 보면 따로 포즈를 어떻게 할까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팔을 들고 발을 앞으로 뻗는다. 음악에 따라 유혹하고, 전진하고, 기도하고, 엎드린다. 한껏 웅크려졌다가 넓게 편다. 정지하는 움직임, 점진하는 춤을 춘다. 몰입한다.

가운을 벗고 한 번 천천히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그에 따라 천천히 부풀었다가 다시 내려앉는 흉곽이, 턱 바로 아래에 있는데도 남의 것인 듯 낯설고 멀게 보였다.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진 몸은 일상의 몸과 다르게 느껴졌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아주 예민했다. 공기 입자가 피부로 느껴질 것 같았다. 그 생경함이 좋았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레퍼토리

처음 진행한 레퍼토리는 3분 포즈 7개 레퍼토리였다. 역동적인 포즈를 하기에도, 일상적인 포즈를 하기에도 적당한 레퍼토리다. 첫 번째 포즈, 두 번째 포즈, 세 번째 포즈... 미리 맞추어 놓은 타이머가 울릴 때마다 포즈를 바꾼다. 음악이 조심스러워서 내 몸도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3분, 다음 3분, 또 그다음 3분... 하며 시간을 세었다. 3분씩 분절된 시간은 평소보다 빠르게 가서 첫 레퍼토리는 금방 끝이 났다.

통상적으로 20분을 일하고 나면 10분의 쉬는 시간이 있다. 누드모델 또한 몸을 쓰는 직업인이기 때문에 규칙적으로 몸을 이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리에 앉아 쉬는데 이번 모델님은 느낌이 묘하다, 되게 조심스럽다, 그런 소근거림들이 들려왔다. 외모 품평을 들을 때처럼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순수한 감상을 듣는 것 같아서 그리 말해주는 이들이 고마웠다.

일러스트 킨지

20분 몸쓰고 10분 쉬기 규칙을 지키며 2시간을 보내니 첫 일을 마쳤다. 마지막 포즈를 마치고 일어나는데 그림 그리는 분들께서 박수를 쳐주셨다. 웹에서 읽은 글에는 이런 얘기 없었는데! 하며 조금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박수를 받아보는 경험이 처음이라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숙여 보이고 가운을 입었다. 그러고 나자 평상복으로 탈의할 수 있도록 선생님께서 탈의실까지 안내해 주셨다.

옷을 입고 사무실 소파에 앉아 선생님께서 주신 커피를 마시며 쉬었다. 처음 일해보니까 어때요? 별 거리낌도, 불쾌함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았어요, 오히려 별 느낌 없었던 것 같아요. 하고 대답했다. 선생님께서는 일하다 보면 달라질 거라고 하셨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무엇이 달라질 거라 이야기 하셨는지 안다. 몰입이 달라졌고, 마음가짐이 달라졌고, 몸이 달라졌다. 처음 모델로 선 후 벌써 4년이 넘게 지났다.

더 자유로워지는 방법

첫 일을 지켜보신 선생님께서 꼼꼼하게 피드백을 주셨다. 레퍼토리 자체는 전형적이지 않고 좋았지만 몸을 쓰는데 좀 더 신중해야 한다고 하셨다. 오래 몸을 쓰다 보면 분명히 몸이 상처 입게 되므로, 너무 무리해서 틀거나 너무 자주 손목으로 받쳐선 안된다고 하셨다. 경진 씨, 몸을 늘 관찰하는 습관을 길러요. 그럼 더 자유로워져요. 이 말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제 관찰하려 하지 않아도 어디가 아프고, 어디가 곧 아플 거라고 신호를 보내는지 안다. 직업적으로 몸을 쓰는 일은 통증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몸을 관찰하고 적절히 쓰는 방법을 몰랐던 나는 처음 일을 마친 뒤에 지독한 근육통으로 몸살이 나 며칠을 앓았다. 일할 때마다 이만큼 아플 거면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더 해보고 싶었다. 소득이 생계를 잇고 조금 저금할 수 있을 만큼만 보장된다면 이 삶을 지속해보고 싶을 만큼, 매력이 있는 일이었다. 무대에선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며 가짜 삶을 연기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이 글은 <온전히 생존기: 살아내는, 몸(2)>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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