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각의 할머니 (1)

핀치 타래가족관계

내 시각의 할머니 (1)

우리 할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냐면요

순간의 유일

난 할머니의 생애를 알지 못한다. 내게 할머니는 언제까지고 할머니라는 존재였으며 그 우매한 당연함에 의문을 가지지 않고 나는 평생을 살아왔다.  일본에서 한국인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도미꼬라는 이름으로 살아오셨다. 할아버지와 중매로 얼굴 한번 보지 않고 결혼하고 난 후 한국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정도만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할머니는 한글을 잘 알지 못했다.  어릴 적 시골에 내려가서 자고 올 때면 할머니는 밤에 내게 신나게 자랑하셨다. 요즘 내가 이런 걸 배우는데 재미있더라, 노인들한테 한글 가르쳐 주는 건데 유익하더라. 나는 그제서야 할머니가 한글을 쓰고 읽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나한테 항상 편지를 읽어 달라고 했었구나 알게 되었다. 만학도인 할머니를 응원하였고 내 이름으로 가득한 초등학생용 칸 공책을 보며 나는 웃었다. 우와, 할머니. 이제 내 이름도 쓸 줄 알아? 


할머니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할머니네 시골은 화장실이 집 밖에  따로 있는, 그야말로 옛날 집이었는데 , 나는 그 불 하나 없는 화장실을 무서워했다. 최근이야 수세식 변기로 바뀌고 집안의 욕실에도 변기가 생겼지만 어릴 땐 귀신이, 괴물이 나를 잡아갈 것 같아서 꼭 할머니를 깨워 화장실에 같이 갔다. 같이 가서도 절대 문 닫지 말고 노래 불러 달라고 졸랐던 어릴 적의 나를 기억한다. 할머니, 거기 있지? 그래, 있다. 할머니 거기 있지? 할머니는 당시 내가 알 수 없던 진달래 가사가 들어가는 노래를 불렀고, 나는 쏜살같이 화장실에서 튀어나왔다. 당시의 화장실은 손으로 천장에 있는 고리 레버를 당겨 물을 내리는 형식이었는데 그것조차 할머니한테 해 달라고 졸랐으니 오죽 우스우셨을까. 

시골에 가면 할머니는 나 때문에 항상 얕은 잠을 주무셨다. 아무리 작은 목소리로 할머니를 불러도 할머니는 꼭 깨어나셨고 화장실 가고 싶나? 하며 몸을 일으켰다.  혹여 우리 강아지, 목마를까 머리맡에 버섯 끓인 물을 두셨으면서도 새벽에는 직접 따라 주었다. 어떤 날에는, 뒤돌아서 주무시고 계시는 할머니를 보고 화장실에 가자고 막 깨우려던 참이었다.  얼마나 작게 불러야 할머니가 안 깰까.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작은 목소리로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는 어김없이 일어났고 나는 웃었다. 현재까지도 물론 자고 있는 할머니 옆에 가서 할머니, 부르면 돌아오는 말. “와 부르노, 우리 아가 화장실 가고 싶나. 같이 가까. ”


할머니는 음식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사실 좋아하셨는지는 모르겠다. 할머니는 음식을 먹이는 것을 좋아하셨다. 꼭 손녀딸인 나만을 위해서가 아닌 그 어떤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좋아하셨고 그 분들은 항상 우리 할머니 음식 솜씨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시고는 하셨다.  한 번은, 할머니 집 옆에 있는 작은 도랑 위에 콘크리트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작업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셨더란다. 식사 때가 되어 식사를 제공해 주었는데  다른 반찬도 많은데 김치를 가지고, 살다가 이렇게 맛있는 김치는 먹어 본 적이 없었다며 엄지를 치켜 세우시더란다. 조잘조잘 작은 입으로 자랑하시며 우습다고 웃으시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할머니는 당신의 솜씨를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셨었나 보다. 


자취를 시작하고 난 이후로, 엄마와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따로 살게 된 만큼 머리가 큰 만큼 나는 엄마와 갈등이 잦아졌다.  엄마와의 통화 이후 울고 불고. 이 답답함을,  이 속상함을 누구에게 말할까.  할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엄마의 엄마도 아니고, 아빠의 엄마니까 괜찮겠지. 허허 웃으며 내 말을 듣고는 “애미가 그러드나. 애미가 뭐라고 혼내드나.” 내 편 들어 줄까 싶어 맞다고 맞다고, 너무하지 않냐고. “느그 엄마도 생각이 있으니까 그리 말 안 했겠나. 느그 엄마도 어찌나 힘들었겄노.” 할머니 너무해. 왜 내 편은 안 들어? 하면 허허실실 웃으시며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될 거라고 하시던 말씀을 못 잊는다. 훗날 알게 되었지만,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한 이후에 내가 엄마 얘기를 했던 거였더라. 우리 엄마는 아직도 나한테 이런 시부모 없다고  내가 시부모님 복을 너무 크게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엄마한테 위 얘기를 한 적은 없지만  나도 할머니를 통해 보고 겪은 게 많아 나로서도 동의하는 바이다.

SERIES

사랑한다 할머니가

순간의 유일의 최신 글

더 많은 타래 만나기

세 사람

세 사람

이운

#치매 #여성서사
1 요즘 들어 건망증이 심해졌습니다. 안경을 쓰고서 안경을 찾고 지갑은 어느 가방에 둔 건지 매번 모든 가방을 뒤져봐야 합니다. 친구들은 우리 나이 대라면 보통 일어나는 일이라며 걱정 말라하지만 언젠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생겼을 때 그들까지도 잊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루는 수영을 다녀오는데 그날따라 비도 오고 몸도 따라주질 않아서 바지가 젖을 것은 생각도 안하고 무작정 길가에 털썩 주저앉..

[제목없음] 일곱 번째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제목없음

#여성서사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참으로 어렵다. 나같은 경우에는 끊임없이 되물어봤다. 그리고 의심했다. '저 사람은 만나도 괜찮은걸까?' '내가 착각하고 있는건 아닐까?' 처음에는 설레기도 하고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연 내가 누군가를 만나도 괜찮은걸까? 순간의 감정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에는 좋으니까로 결론이 난다. 좋은걸 어떡하나? 만나야..

병원이 다녀왔다

..

낙타

정신병원과 한의원에 다녀왔다 이번엔 둘다 끝까지 치료하고 싶다.....

주접

플레잉 카드

헤테트

#플레잉카드 #트럼프카드
버드 트럼프Bird Trump 원고를 하고 있는데 택배가 왔다. 까마득한 언젠가 텀블벅에서 후원한 플레잉 카드 (=트럼프 카드) ! 원래 쟉고 소듕한 조류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맹금류를 제외한 새를 무서워하는 편) 이건 보자마자 이성을 잃고 냅다 후원해버렸다. 그 뒤로 잊고 살았는데 오늘 도착. 실물로 보니 과거의 나를 매우 칭찬해주고 싶다. 아름답지 않은 구석이 없어, 세상에. 하다못해 쓸데없이 많이 들어있는 조..

말 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4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장례
상속인 조회 서비스 조회 완료 후 한 달 정도는 은행과 보험 정리에만 매달렸다. 사실 지점이 많이 없는 곳은 5개월 여 뒤에 정리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는 자동차 등을 정리했고 건강보험공단, 연금공단, 주민센터 등을 방문했다. 상속인 조회 서비스에 나온 내역들을 한꺼번에 출력해 철 해 두고 정리될 때마다 표시해두고 어떻게 처리했는지(현금수령인지 계좌이체인지 등)를 간략하게 메모해두면 나중에 정리하기 편하다. 주민..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2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장례
끝났다. 사흘 간의 지옥같고 전쟁같고 실눈조차 뜰 수 없는 컴컴한 폭풍우 속에서 혼자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던 시간이 끝났다. 끝났다는 것이 식이 끝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절망스럽다. 불과 사흘 전만 해도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연히 존재했던, 60여년을 살았던 한 '사람'을 인생을 제대로 정리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후루룩 종이 한 장으로 사망을 확인받고, 고인이 된 고인을 만 이틀만에 정리해 사람..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