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머니의 생애를 알지 못한다. 내게 할머니는 언제까지고 할머니라는 존재였으며 그 우매한 당연함에 의문을 가지지 않고 나는 평생을 살아왔다. 일본에서 한국인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도미꼬라는 이름으로 살아오셨다. 할아버지와 중매로 얼굴 한번 보지 않고 결혼하고 난 후 한국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정도만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할머니는 한글을 잘 알지 못했다. 어릴 적 시골에 내려가서 자고 올 때면 할머니는 밤에 내게 신나게 자랑하셨다. 요즘 내가 이런 걸 배우는데 재미있더라, 노인들한테 한글 가르쳐 주는 건데 유익하더라. 나는 그제서야 할머니가 한글을 쓰고 읽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나한테 항상 편지를 읽어 달라고 했었구나 알게 되었다. 만학도인 할머니를 응원하였고 내 이름으로 가득한 초등학생용 칸 공책을 보며 나는 웃었다. 우와, 할머니. 이제 내 이름도 쓸 줄 알아?
할머니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할머니네 시골은 화장실이 집 밖에 따로 있는, 그야말로 옛날 집이었는데 , 나는 그 불 하나 없는 화장실을 무서워했다. 최근이야 수세식 변기로 바뀌고 집안의 욕실에도 변기가 생겼지만 어릴 땐 귀신이, 괴물이 나를 잡아갈 것 같아서 꼭 할머니를 깨워 화장실에 같이 갔다. 같이 가서도 절대 문 닫지 말고 노래 불러 달라고 졸랐던 어릴 적의 나를 기억한다. 할머니, 거기 있지? 그래, 있다. 할머니 거기 있지? 할머니는 당시 내가 알 수 없던 진달래 가사가 들어가는 노래를 불렀고, 나는 쏜살같이 화장실에서 튀어나왔다. 당시의 화장실은 손으로 천장에 있는 고리 레버를 당겨 물을 내리는 형식이었는데 그것조차 할머니한테 해 달라고 졸랐으니 오죽 우스우셨을까.
시골에 가면 할머니는 나 때문에 항상 얕은 잠을 주무셨다. 아무리 작은 목소리로 할머니를 불러도 할머니는 꼭 깨어나셨고 화장실 가고 싶나? 하며 몸을 일으켰다. 혹여 우리 강아지, 목마를까 머리맡에 버섯 끓인 물을 두셨으면서도 새벽에는 직접 따라 주었다. 어떤 날에는, 뒤돌아서 주무시고 계시는 할머니를 보고 화장실에 가자고 막 깨우려던 참이었다. 얼마나 작게 불러야 할머니가 안 깰까.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작은 목소리로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는 어김없이 일어났고 나는 웃었다. 현재까지도 물론 자고 있는 할머니 옆에 가서 할머니, 부르면 돌아오는 말. “와 부르노, 우리 아가 화장실 가고 싶나. 같이 가까. ”
할머니는 음식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사실 좋아하셨는지는 모르겠다. 할머니는 음식을 먹이는 것을 좋아하셨다. 꼭 손녀딸인 나만을 위해서가 아닌 그 어떤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좋아하셨고 그 분들은 항상 우리 할머니 음식 솜씨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시고는 하셨다. 한 번은, 할머니 집 옆에 있는 작은 도랑 위에 콘크리트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작업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셨더란다. 식사 때가 되어 식사를 제공해 주었는데 다른 반찬도 많은데 김치를 가지고, 살다가 이렇게 맛있는 김치는 먹어 본 적이 없었다며 엄지를 치켜 세우시더란다. 조잘조잘 작은 입으로 자랑하시며 우습다고 웃으시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할머니는 당신의 솜씨를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셨었나 보다.
자취를 시작하고 난 이후로, 엄마와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따로 살게 된 만큼 머리가 큰 만큼 나는 엄마와 갈등이 잦아졌다. 엄마와의 통화 이후 울고 불고. 이 답답함을, 이 속상함을 누구에게 말할까. 할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엄마의 엄마도 아니고, 아빠의 엄마니까 괜찮겠지. 허허 웃으며 내 말을 듣고는 “애미가 그러드나. 애미가 뭐라고 혼내드나.” 내 편 들어 줄까 싶어 맞다고 맞다고, 너무하지 않냐고. “느그 엄마도 생각이 있으니까 그리 말 안 했겠나. 느그 엄마도 어찌나 힘들었겄노.” 할머니 너무해. 왜 내 편은 안 들어? 하면 허허실실 웃으시며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될 거라고 하시던 말씀을 못 잊는다. 훗날 알게 되었지만,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한 이후에 내가 엄마 얘기를 했던 거였더라. 우리 엄마는 아직도 나한테 이런 시부모 없다고 내가 시부모님 복을 너무 크게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엄마한테 위 얘기를 한 적은 없지만 나도 할머니를 통해 보고 겪은 게 많아 나로서도 동의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