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나는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긴 시간 노동해야 하는 근무지에서 일한다. 일하다 잠깐 짬이 나서 핸드폰을 봤는데 할머니께 안부 인사 드리라는 동생의 연락이 와 있었다. 더러 나눴던 이야기지만 어쩐지 쎄한 기운에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보자 동생은 한참을 망설인다. 내가 바로 전화하면 좋겠지만 당시 통화가 힘들었기에, 답답한 마음에 친구에게 부탁했다. 할머니가 편찮으신 것 같은데 내가 언제 통화가 가능할지 모르니 전화 한 통 부탁한다고. 알겠다는 고마운 친구의 연락과 동시에 나는 동생을 채근했다. 무슨 일인데 망설이냐고, 재작년에 수술하셨던 허리가 또 안 좋아지신 거냐고, 요즘 난리라는 코로나에 라도 걸리신 거냐고.
>담도암 말기 판정 <을 받으셨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어? 하는 소리와 함께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한참을 읽고 읽었다.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으셨다고 한다. 동생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언니가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말해 준 것이라 한다. 언니만 알고 있으라는데 왜 내가 모르는 척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할머니께서 염려하시는 마음에 그렇게 말씀하셨겠지만, 가족들끼리는 이 사실을 공유했어야 했던 것 아닌가. 6개월이면 앞으로 다가올 여름인데, 이 얼마 남지 않은 실황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멍한 상태가 되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가족이 암이라고 선고받으면 울고 불고 난리가 나던데 나는 침착하더라. 정작 눈물은 나지 않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본가로 내려가야 하는데 그럼 내 생활비는 어떡하지.’
우스웠다. 가족의 생사가 왔다 갔다 한다는데 내 생각의 굴레는 결국 돈이라니. 구역질이 나올 지경이었다. 일에 집중이 전혀 되지 않았다.프로페셔널하지 못한 내 상태를 우선 상사에게 알려야 했다. 막상 입을 떼려고 하니 말이 잘 나오지 않더라. “할머니께서 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는데 방금 소식을 들었습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데 내일 스케줄 변동 가능할까요, 주임님….” 내일 당장 쉰다고 하더라도 우려하는 마음만으로 본가에 내려가지도 못한다. 면회도 가능한지 모르고, 왕복으로 열 시간이 걸리는 곳인데 모레 근무도 빠질 수 없다. 십여 분 간 이야기를 나눈 끝에 결국 나는 스케줄에 차질 없이 내 일을 진행하기로 결론내렸다. 생각 정리하지 못하고 불쑥 말씀부터 드려 죄송하다는 인사와 함께 회의실을 나왔다. 핸드폰에는 친구의 연락이 와 있었다.
[기운 없으셔서 병원에 잠깐 입원하신 거래.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그저 와르르 무너지는 심정으로 내 자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