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없는 이승이다. 야천의 성월이 제 아무리 발광한다고 한들 너는 저승인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너의 흐릿한 미소에 내 삶은 온통 혼탁하다. 잎사귀 하나하나 아스라져, 더는 질 것조차 없는 말라빠진 가지가 내 육신을 겨우 지탱한다. 확신으로 가득찬 손아귀에, 쥐고 있는 날이 선 그것은 살점을 베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내 삶은 곧 너였다. 눈을 감는 것에 이보다 더 온당함이 있으랴. 시퍼런 서슬에 그에 질세라 붉게 선혈이 피어난다. 급기에 온 사방으로 치솟는다. 나의 사인은 더운 피에 의한 분신이라 보아도 무방하리라. 펄펄 끓는 피에 온몸이 시뻘겋게 젖으며 마침내 나는 욕조의 새카만 검붉음에 익사한다.
별천지가 눈앞이다. 내 생애 무엇이 이리도 열렬히 빛났었던가. 얼마만의 미소인가. 나의 별천지는 진정 너 하나였음을.
목숨을 내놓음으로써, 비로소 나는 깨닫는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너의 따뜻한 온기로 나를 안아 주기를. 내가 다시 눈을 떴을때, 왜 이제야 왔냐며 버선발로 맞이해 주기를. 내가 다시 눈을 떴을때, 부디 내가 너의 영원에게 닿기를.
내가 다시 눈을 뜨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