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싫어했다. 앞으로의 타래에서 얘기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 이유에 대해 크게 다루고 싶은 생각이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사춘기 시절,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아빠 탓을 했다. 미워할 대상이 필요하기도 했었겠지만 미움받아도 아빠에게 합당하다는 생각이었다. 가정에 불화를 가지고 왔다는 생각에 아빠가 미웠다. 같은 여자로서 울고 있는 엄마를 만드는 아빠가 미웠다. 확신하건데, 결코 나만이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가지각색의 이유들로 딸들은 본인의 아빠들에게 한 번쯤 증오의 감정을 가져 보았으리라.
나는 사춘기 시절, 아빠와 같이 있는 시간을 피했고 공간을 피했다. 결과적으로 엄마가 중재에 나서기까지 했다. 단둘이 무슨 일이 있었냐며 추궁하고 아빠는 제게 손도 대지 않았다며 다가오지도 않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스무 살, 사춘기가 지나갈 무렵 나는 아빠에게 기프티콘으로 그간 몇 년 간의 일방적인 미움에 대한 끝맺음을 시도했다. 11월 11일 상술에 넘어간 척하며 소소한 빼빼로 한 상자를 보낸 나는, 아빠 회사 경리에게 기프티콘 사용 방법을 한참 물어보았다는 아빠의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생각했다, 아빠도 그랬어야 했을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아빠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노력하는 척했다. 여느 날처럼 우울에 잠식되어 있던 날. 나는 쓰레기마냥 살았고 반성조차 아까운, 그야말로 시간을 우울에 바쳐 버리고 있을 시절. 나는 소주 한 병 마실 돈이 없어 아빠에게 손을 벌렸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빠 때문에 힘들었던 만큼 아빠도 나 때문에 힘들어 봐.
[나 오늘 생일인데.]
답장을 확인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어쩌라는 거야, 라는 마음과 죄송스럽다, 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진 가볍디 가벼운 그 아니꼬운 마음가짐으로 카카오톡 미리 보기를 한참 읽었다. 내 손에 들고 있는 담배는 젖어가고 내 입술은 말라간다. 각자의 마음이 서로에게 드러날수록 관계에 대한 불편함은 짙어진다. 지난날의 기억들은 눈앞의 칼날처럼 시퍼렇게 날카롭고, 이 낮은 천장이 무너진다.캄캄하고 습하고 좁은 나의 방에서 나는 발끝까지 처량함에 잠겨서 나는 그렇게 죽어 버렸다.
나의 목을 졸라 피와 내장을 뱉어 버리고
바싹 마른 장작처럼 물기 없는 버석함임에도
애석하리만치 당시의 그는 나의 오아시스였음을 그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을 것이라, 지금의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