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죽었다. 그녀의 장례는 조촐하게 이루어졌다. 그녀의 입에서 말로만 듣던 그녀의 친구 별은 눈이 시뻘겋게 변해 사흘을 가만히 영정 사진만 보고 있더란다. 그러다가 하루는 커피 전문점에서 케이크를 사 오더라. 제삿상에 꼭 올려 달라던 음식이라나, 뭐라나. 궁금하지 않았다.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정신이 없었다. 생각만큼 사람들은 슬퍼하지 않았고, 생각만큼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울지 않았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친구와 간단히 안부를 전했다. 그녀의 영정사진을 보며 울음은 커녕 어이없이 쓴웃음이 나온다. 좀 버티지. 그렇게 가 버리냐. “네가 사고사로 죽는 게 아니라면 난 네 장례식장 안 갈 거야.” 난 분명히 얘기했다. 그럼에도 내가 네 장례식장에 온 이유는, 그 이유는.
몇 번의 계절이 지났다. 바쁜 일의 연속으로 몸은 지쳤지만 텅 비어 있는 내 마음을 충족시켜야 했다. 약속을 잡았다.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에 있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네 얘기. 너와 나는 언제 어디서든 늘 함께였으니까. 서로에게 있어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서로를 그렇게 설명했었으니까.
“아, 그때 걔가 그랬었잖아. 야, 진짜 웃겼는데. 하늘에서는 잘 지내고 있겠지…? ” 1년 가까이 지난 그녀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점차 잊혀지고 있다. 정확히는 그녀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잊혀지고 있다. 선뜻 아무도 얘기를 꺼내지 않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땐 그랬었다며 웃는 얼굴로 얘기를 한다. 웃는 얼굴 뒤에 어떤 표정이 숨겨져 있는지 따위는 관심 없다. 모순적인 그들의 언행에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안 좋았는지 신나게 말하는 친구를 툭툭 치며 내 눈치를 보는 다른 친구. 됐어. 나 신경 안 써도 돼.
사실 사람들은 내가 그녀를 미워하는 줄로만 안다. 사실 너무 화가 났거든. 나도 안 괜찮은데, 나도 버티고 있는데, 네가 뭔데 나를 두고 죽어. 나도 너 때문에 살았던 날들이 있는데. 나한테는 나 때문에 산다며. 그래서 살고 있다며. 원망스러웠고 또 원망스러웠다. 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사람들에게는 마냥 그녀를 내가 싫어한다고 표현했다. 살 용기 없이 죽은 년이라고 욕했다. 가장 가까웠던 적 없었다고 했다. 사실은 오래 전부터 싫어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럴까, 그녀의 얘기가 나올 때면 눈치를 보는 그들의 시선에 괜찮다고 반복한다. 나 상관없어. 괜찮아.
네가 떠나고 몇 달 뒤 나는 별이라는 친구에게서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안녕, 일삼아. 나 유일이 친구 별인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연락하게 됐네. 다름이 아니라, 유일이가 나한테 부탁한 게 있었거든. 너 때문에 유일이가 살고 있다고 많이 얘기했었다며. 유일이가 너의 믿음을 져 버린 게 아니래. 너를 포기한 게 아니래. 유일이는 유일이가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또 너 때문에 살고 있는데, 본인이 죽더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포기하고 버린 게 아니라고 , 너 포기한 거 아니라고 꼭 좀 전해 달래. 장례식장에는 안 온다고 했었다며. 그래서 네 연락처로 톡 보내 달라더라.
사실 나는 괜찮지 않다. 상관없지 않다. 그 누구보다 힘들고 그 누구보다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그 누구보다 실감할 수 없으며 그 누구보다 아프다. 내 꿈속에 네가 나올 때면 나는 너를 죽도록 미워한다. 왜 그렇게 갔냐. 왜 너는 못 버텼냐. 나도 힘든데 , 나도 죽겠는데 왜 혼자 갔냐. 내가 그랬잖아. 나는 네가 사는 게 당연했으면 좋겠다고. 네가 살아감에 내가 고마워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내가 그랬잖아. 대답 없이 번지는 내 질문에 나는 귀를 막는다. 그녀는 죽었다. 새삼스럽게 유일의 말을 곱씹는다. “너한테 트라우마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 나는 살아, 일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