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비가 끝났다. 생애 몇 번째 겨울의 막이 내렸다. 창밖은 푸르른 하늘이 하얀 뭉게구름을 껴안아 눈길을 두는 곳마다 응달을 만든다. 지난 겨울은 춥고 추웠다. 언제는 안 추웠겠냐마는, 우울이 좀먹어 울 것 같은 날조차 너무 추워서 우울한 것도 못 해 먹겠다고 혼잣말을 해대곤 했다.
우습게도 이번 추위에는 눈물도 마르더라. 공허함이 커지고 멍해지는데도 눈물은 마르더라. 하루의 온도가 몇 도인지가 그렇게나 중요하더라. 아무 상관도 없을 것만 같은 온도가 내 눈물샘을 쥐락펴락하더라. 그래, 어쩌면 여전히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그냥 우울의 꼭대기에서 그저 수평선을 걷고 있는 걸지도.
내 방 문을 열었다. 비칠듯한 옅은 하늘색의 아늑한 나의 공간. 발을 들인다. 지친 몸을 뉘인다. 우울은 나를 죽어라 쫓아다닌다. 안개같이 자욱한, 손쓸 새 없이 커다란 물감이 퍼지듯 내 방에 들어와 먹물이 내 주변을 휘감는다. 끝내 미쳐 버린건지 시야에 보이기까지 하는 먹물은 나를 꾸역꾸역 삼켜낸다. 그렇게 나는 몸뚱아리 하나 건사하지 못한 채 힘없이 먹혀 버린다. 크지 않은 내 방은 금세 먹물로 가득찬다. 창문도 방문도 심지어는 옷장 문조차 열려있음이 분명한데 숨을 못 쉴 것 같다. 숨을 쉴 때마다 내 허파는 먹물에 잠긴다. 심장이 뛸 때마다 울컥 뱉어지는 혈액이 아닌 시커먼 먹물은, 이윽고 내장 곳곳에 침투한다. 내가 문제일까. 우울이 문제일까. 이제는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그러더라. 먹는 게 곧 본인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런가 보다. 나는 우울을 삼키고 울음을 삼킨다. 결국 내 감정이 이루어져 내가 되는게 아닌가. 제 감정이 제 자신 아닌가. 그렇다면 결국 우울은 곧 내가 아닌가. 나아졌다지만, 나는 여전히 터지는 울음을 목 끝에서 붙잡고 있다. 너무 많은 울음을 삼킨 탓에 기도와 식도가 해이해져 도로 뱉어짐에 몇 번을 쏟아낸다. 더는 모르겠다. 더 이상 우울의 원인을 찾는 게 신물나 버렸거든. 원인이랍시고 찾은 내 핑계. 해결해 보고자 에너지를 쏟아 봤다. 근데 왜 여직 우울하냐고. 타의든 자의든 노력의 산물은 아무 해결도 해 주지 않는다. 결국 나를 구렁텅이에 또 빠지게나 만들 뿐이다.
나는 깨달았다. 나는 아무런 힘이 없다. 겨울이 끝났다. 날은 따뜻해지고 남들은 이제 살 것 같다고들 하더라. 날은 따뜻해지고 나는 이제 우울에 먹힐 일만 남은 거다. 진정 먹힐 일만 남은 거다. 그래, 잠깐 동안 꿈꿨던 거지.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공허하지 않았던 날 하루도 없었잖아. 행복하다고 말하는 네 입술은 몇 시간 후에 울지 않으려 짓이겨졌잖아. 괜찮아졌다고 말하는 네 우울은 항상 여전했잖아. 너 당장 어제도 울었잖아. 짜증 나.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쇼팽의 녹턴 15번 F minor. 산드럽게 불어오는 바깥 공기. 이끼 가득한 어항에서 쏟아지는 여과기 물줄기 소리.
내일은 병원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