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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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괜찮지 않습니다

나의 병명

순간의 유일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하루를  보낸다. 그야말로 평범한, 어쩌면 지루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를 일상들의 연속. 나는 매 해 겨울이 되면 시답잖은 이유로 울음을 터뜨린다, 그야말로 가지각색의 핑계로.  또 새해가 밝아올 때면, 지하 19층에서 혼자 불 꺼진 어두운 방에서 새해를 맞이한다. 남들은 나아간다는데 나는 왜 요지부동일까. 아니, 요지부동이면 차라리 나을지도. 내 기어는 언제나 R에 위치해 있거든.  대책 없는 자기 혐오에 혐오를 이으며 하루를 살아낸다.  

그리고는 5월 즈음부터 에너지를 발산하다 못해 잠조차 자지 않는 중립기어 없는 삶을 살아간다.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는 소리를 듣고 어쩜 그리 긍정적이냐는 소리를 듣기 일쑤. 누군가는 날 더러  내 성격의 반만 닮았으면 좋겠단다. 어쩜 그리 밝고 당차냐며 나더러 좋겠단다. 사람은 입체적이라는데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내 모습은 참으로 밝음과 활기 그 자체였나 보다. 나는 겨울에만 우울함을 겪었다. 적어도 여지껏 나는 나를  그렇게 알고 있었다.


2018년 12월 31일. 나는 우울감에 못 이겨 대상 없는 통화에 울부짖었다. 몇 시간 후면 나는 또 한 살을 먹는데, 나는 작년에 무얼 했나. 무얼 이루었고 무얼 해냈었던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나에게는 뭐 이렇게까지 큰 의미로 다가오는지.  나를 '어른'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계속 늘어나겠지. 현실의 나는 어른이기는 한 건지.  몇 살이더라. 어릴 때였는데, 그러니까 초등학생 때쯤. 지금의 내 나이에는 무엇이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현실적으로 생각한 것은 하나도 없고 그저 몽상에 취해,  프로페셔널한 커리어우먼 따위가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현실과의 괴리감에 못 이겨 울고 또 울었다. 애석하게도 위로에 무색한 아빠와의 통화는,  바쁘다는 대답으로 끊겼다. 어쩌면 그 또한 혼자 견뎌내야 하지 않겠냐는 현실이 주는 메시지의 한 부분이었으리라.

  

2019년 5월, 여태 살아왔던 것과는 다르게 우울감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혼자 있을 때는 물론이거와, 남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우울에 친숙해져 버린 건지 나중에는 내 기분도 모르겠더라. 괜찮아지겠지. 좀 나아지겠지. 내일은 다르겠지. 의미없는 기대를 되새기며 울며 자고 일어나서 맞이하는 우울의 기시감이란 정말 아침부터 딱 어디 목 매달고 죽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서서히 나는 핀트가 엇나갔다. 

어떤 날에는 옷걸이에 옷을 못 걸어서 바닥에 놓인 내 코트를 보고 울었다. 또 어떤 날에는 신발장이 더러워서 정리하려는데 정리가 쉽지 않아 오열을 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에게 괜찮다며 토닥였고 , 그러면서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런데 도저히 일상 생활이 되질 않으니까. 팔과 다리에 시퍼런 칼날을 대고 웃고 있는 나를 보니 돌아 버릴 것만 같아서,  내 마음이 다 죽은 것 같더라. 상담이고 뭐고 약물 치료를 원했다. 내가 왜 힘든지 중요하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당장 약이 급했고 당장 손쓸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병원에 발을 내딛었다.  몇 개월에 걸쳐 상담이 끝나고 최종적으로 진단받은 것은

 양극성 정동 장애 2형. 


스스로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만 3개월이 걸렸다.  사람들은 나한테 성격이 좋니 배우고 싶니 등등 좋은 말만 해 줬던 것 같은데, 이 세상을 살아 숨쉬는 사람들 중 나처럼 힘든 사람이 없지는 않을 텐데, 남들도 힘들다고 했는데, 사람들 전부 한번쯤은 죽고 싶다며 장난으로라도 내뱉는데. 왜 나는 못 견디는 건지. 왜 나는 약이 필요하고 상담이 필요하지. 왜 나는 정신이 온전치 못하지. 그렇게 3개월을 흘려 보냈다. ㅡ앞서 말했던, 긍정적인 성격, 잠도 참아가며 어쩜 그리 부지런하냐던 성격, 높은 자존감 때문이라고 생각했기에 감당하지 못할 일들을 벌리기 급급하던 성격, 웃음이 많고 울음이 많고 감정이 풍부하고 예민한 성격ㅡ 이 모든 게 병증이란다. 이쯤 되니, 나도 내가 어디까지가 진짜 내 모습인지 진짜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글을 써 보려고 한다. 왜 하필 글이냐 묻는다면,  내가 글을 좋아하니까. 물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 있을 테지만 나는 내 타래가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를. 내가 만약 내일 당장 죽음을 택한다 하더라도 남들에게,  나 이렇게까지 나를 찾기 위해 노력했노라 떳떳하게 보여질 수라도 있기를. 훗날, 아주 먼 훗날. 나를 사랑하고 있을 나에게 내  타래들을 바치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 유일아, 과거의 너는 양극성 정동 장애인. 

 즉, 조울증 환자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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