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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커리어> 카테고리의 최신 기사

언니, 우리 이민갈까? 19. 가장 구체적인 두려움

유의미

한국에만 살아봤을 때는 외국에 나가면 시야가 넓어진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책을 읽고 신문을 보며 관심 분야라면 어떻게든 찾아보니까, 외국이라고 해도 대단히 새로울 것도 특별히 더 배울 것도 없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와보니 읽거나 들어서 이미 다 알던 이야기라도 와서 직접 온몸으로 경험하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한국보다 땅이 엄청 넓다더라.’ 하는 말은 아무리 걸어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던 날의 얼얼한 발바닥과 상점 하나 보이지 않는 텅 빈 거리의 막막한 기분으로 생생해졌고, ‘겨울이 엄청 습해서 춥대요.’하는 말은 삼 일째 마르지 않던 면생리대와 겨우내 콧속에 머금던 차고 축축한 곰팡이 냄새로 기억이 되었다....

언니, 우리 이민갈까? 18. 뭐 해 먹고 살 거냐면

유의미

커튼 틈새로 비집고 들어온 뜨거운 볕이 얼굴에 내리쬔다. 그 눈부신 열기에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조금 열고 커튼을 확 젖히면, 태양 빛이 방안으로 한꺼번에 쏟아진다. 함께 침대에 누워있던 고양이들은 신이 나서 한달음에 뛰어올라 창가에 앉는다. 저 뜨거운 태양 덕분에 뉴질랜드는 겨울에도 때때로 덥다. 물론 흐리고 비가 오는 종일 으슬으슬 몸이 떨려오는 날도 있지만 말이다. 밤에는 차가워서 맨발로는 밟을 수도 없었던 거실도, 날이 밝으면 따뜻하게 데워진다. 시리얼, 요거트, 과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고양이의 밥그릇과 물그릇을 채워준다. 틈틈이 던져 넣어둔 빨래가 꽤 쌓인 게 보이는 날에는 세제를 넣고 세탁기를 돌린다. 인간의 머리카락...

스코틀랜드로 유학을 갔습니다 10. 졸업

한슈

2018년 6월, 나의 졸업식 날엔 언제나처럼 비가 왔다. 어떤 졸업식이든 졸업을 맞는 기분은 싱숭생숭하다. 특히나 다른 나라에서 하는 졸업식은 함께했던 친구들을 서로 약속하지 않는 이상 만날 수가 없게 된다는 면에서 그렇다. 우리는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시간이 없었다 졸업이 다가오자, 가장 큰 고민거리는 바로 비자(Visa)였다. 학생 비자 (trier 4 Visa)의 기한이 졸업식으로부터 4개월 후까지만 유효했고, 그 안에 일자리를 구해서 새로운 비자를 갱신하거나 이 나라를 떠나야 했다. 비자가 필요 없는 EU 학생들은 졸업하고 휴가를 가거나 집에 가서 몇 개월 쉬다가 돌아와서 일을 구하겠다고 다들...

언니, 우리 이민갈까? 12. 유토피아를 기대했다면

유의미

유토피아라는 국가의 궁극적 이념은 공익이 허용하는 한에서 시민들을 되도록 많은 시간 동안 육체적 노동에서 자유롭게 하며, 시민들이 자유를 만끽하고 정신적인 고양에 힘쓸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것에 인생의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뉴질랜드에 살면서 외국 생활의 환상이 하나씩 부서졌다. 해외에 나가보지 않은 채 상상만으로 그렸던 모습은 실제와 달랐고, 예측하지 못했으니 준비도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었다. 다른 삶을 꿈꾸며 희망을 갖는 것도 좋지만, 이민은 중대한 결정이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의 신중한 판단을 돕기 위해, 내가 가졌던 환상과 직접 경험한 현실을...

언니, 우리 이민갈까? 8. 내향인의 워킹 홀리데이

유의미

애인과 함께 뉴질랜드에 살기로 했다. 결정은 했지만 둘 다 외국에 살아본 적이 없어 그게 가능할지 짐작이 잘 안 됐다. 거처를 옮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었다. 우리가 하면 할 수 있을지, 거기서 과연 살 수 있을지 탐색해볼 단계가 필요했다. 그 첫 단계가 바로 나의 워킹 홀리데이였다....

스코틀랜드로 유학을 갔습니다 2-2. 집을 찾는 대장정 (하)

한슈

네 번째 숙소로 짐을 옮기면서 늘 그랬듯 우버를 불렀는데, 우연히 두번째 숙소로 옮길 때 만났던 우버 기사님과 또 만났다. 캐리어가 많아서 기억하고 있었다는 웃지 못할 이유였지만 아직도 집을 못 구한 거냐고 걱정과 함께 자신이 알고 있는 기숙사를 소개해 줄 수 있다고 정말 못 찾으면 전화해보라고 기숙사 번호를 주셨다. 고마운 마음과 함께 마지막 숙소에서는 정말 어디든 집을 찾아서 계약하겠다는 마음으로 또다시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글래스고 시내. 네 번째 숙소는 중동에서 오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아저씨의 에어비앤비, 학교 뒤쪽에 있는 주택가였다. 이 숙소에 체크인해서 늘 그렇듯 짐을 풀자마자 나...

TV 언박싱 5. 슈퍼맘이라는 신화

이자연

어렸을 적 나는 맞벌이 가정에서 자랐다. 엄마는 학습지 선생님으로 일했는데, 당시 여성 대부분이 부엌과 주방을 지키고 있었기에 아마 직업을 가진 것에 대해 지금보다 더 합리적인 혹은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을 것이다. 엄마가 없는 낮 동안 나를 봐준 건 4층에 사는 아주머니였다. 얼굴은 어렴풋하지만 20대 아들 셋이 있었고, 그 집에 키우던 잉어나 모형 컴퓨터 같은 장난감 따위가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면 결코 짧은 시간을 보낸 건 아닌 모양이다. 그러니 4층 아줌마 댁은 엄마에게 그런 곳이었다.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자 매일의 고금리 빚이 차곡차곡 쌓이는 곳. 그러던 어느 날, 엄마랑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결혼고발 6. 내 직업은 임시직? (하)

사월날씨

대학에서 재무관리 수업을 듣던 중이었다. “여학생들은 회계사 준비 많이 하세요.” 교수가 인자하게 우리를 독려했다. 업무시간이 여유롭고, 일정 기간 쉬었다가 다시 일하기도 용이해서 여자가 하기에 좋은 직업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 학기에 나는 여성학개론을 수강하며 성평등에 관해 배우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위 발언의 문제점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너희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를 전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한계에 가둘 거라곤 그 자리의 나는 상상조차 못했다. 그런데 그다음 주 여성학개론 수업에서 일상 속 성차별을 주제로 토론하던 중, 한 학생이 나와 같은 재무관리 과목을 듣는지 위 발언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게 아닌가. 그러자 교수와 학...

결혼고발 5. 내 직업은 임시직? (상)

사월날씨

시부모는 나의 커리어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가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계실지도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나라는 사람보다 내가 행하는 역할이 그분들의 주 관심사라는 걸 알지만, 커리어는 나의 개인적 영역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못 받는 축에 속한다.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만나는 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는 남편의 일과 직장에 관한 주제가 주를 이룬다. 무슨 업무를 하고, 동료들은 어떤지, 수입은 얼마나 되고, 회사의 발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장단기적인 진로 계획까지 시부모는 남편의 일에 관한 많은 것들을 궁금해한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면, 돌아오는 질문은 단 하나다.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만남이 반복되어도 변함없...

사라져야 사는 여자들 3. 백래시의 한복판에서

탱알

여성 일반의 역량미달과 부적격성이라는 핑계는 여성의 생애 주기마다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을 세운다. 직장 내 성폭력은 그 수없는 허들 가운데 하나였다. ‘미투’ 운동에 용기를 얻은 여성들이 저마다 성폭력 경험을 고백하고 나섰을 때, "그런 '더러운 꼴'을 보고도 왜 일터에 남아있었냐"고 묻는 사람들을 보았다. 성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가 그렇게 크다면, 다음날 또다시 일터에 나가 가해자와 얼굴을 맞대고 일할 생각이 들었겠냐는 것이다. "왜 사라지지 않았냐"는 질문은 이상하다. 위계에 의한 각종 학대와 수모를 버텨낸 역사를 훈장으로 여기며 공감을 요구하는 남자들이 여성에게는 자리를 지킨 이유를 추궁한다. 경제적으로, 사...

사라져야 사는 여자들 2.여자라서 그래

탱알

퇴사한 여성 동료의 험담을 늘어놓던 어떤 남자가 있었다. 그는 퇴사자가 "여자치고는 잘하시네요"라는 본인의 발언에 항의했던 일화를 좌중에 털어놓으며,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여자에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날의 나는 그 발언이 성차별임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여자를 업무적으로 평가할 때 "여자치고는"이라는 사족을 붙여야만 속이 시원한 사람들의 아집에 질려 버렸다. 그들은 자신이 여성의 비교대상을 여성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한다. 나는 여성 개개인이 여성이라는 무리를 규정하는 표본으로 존재하며, 여성과 얽힌 부정적 경험이 또다른 여성을 추방할 근거로 활용되는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다....

창업하는 여자 6. 육아를 놓으라고요?

효규

둘 다 잘 할 순 없어요. 일이든 육아든 하나만 선택하세요. 창업을 하면서 들었던 조언들 중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특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조언은 ‘주 양육자의 자리를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육아 대신 일을 선택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창업 교육을 들으러 갈 때마다 선배들은 이렇게 말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함께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잔인하다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기에 나도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과연 육아를 ‘진짜로’ 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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