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잠시 지내던 어느 날, 한 행사 뒤풀이에서 누가 내게 물었다. “XX씨는 외국인들이랑 데이트 많이 하겠네요?” “음, 해외에 있다 보면 아무래도... 그렇죠?" 그 사람은 가부장적인 한국 남성이 싫다며, 나는 항상 ‘갓양남’들만 만날 테니 참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첫째로, 난 내 일과 생활방식의 특성 상 다양한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의 수가 많지 ‘양남’을 만난다고 한 적이 없다(페이스북에 올라온 내 친구의 사진을 가리키며 ‘미국인이다!’ 하던 친구의 어린 아들에게 왜 이 세상의 모든 백인이 미국인이 아닌건지, 경우의 수가 얼마나 수도 없이 많은지를 알려줄 때와 흡사한 기분이...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는 별개의 복수 사례를 하나의 사례로 통합하고, 등장인물의 국적 같은 상세 정보를 바꾸는 등의 수정을 가했음을 미리 밝힌다. 아래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각각 다르지만 모두 선진국 출신 백인 남성이며, 나의 이야기인 것도 있고, 내 지인이 겪은 이야기도 있다. 손을 잡을 수가 없네 한국에서는 연인인 A와 거리를 걸을 때 손을 잡지 않거나 포옹을 피할 때가 있다. 지금껏 자신이 남의 시선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온·오프라인에서 목격한 외국인 남성과 교제하는 한국 여성들에 대한 각종 참신하고 저열하기 짝이 없는 비아냥과 욕설, 편견이 섞인 시선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반전이라면 반전이랄지, 이건 연인인 A도 그랬다.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A는 거리에서 손을 잡기를 피할 때가 있었는데 후에 A는 자신이 해당 국가를 찾은 하늘의 별처럼 많은 백인 섹스 관광객 중 하나로 보이기가 싫었다고 고백했다. 어쩌다 성매매 업소나 유흥업소가 밀집해 있는 곳 근처의 지하철 역만 가도 그랬다고. 그러면서도 거기서 오는 자괴감 때문에 힘이 들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인종 간 연애에서 아시안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지속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여기에 관련된 좀 더 내밀한 예시들을 살펴보자....
앞서 등장한 연인 A의 형 D와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일을 통해 나와 친분이 생긴 친구 F가 알고 보니 D와도 아는 사이였다. 세 명이서 커피나 한잔 하자며 만난 자리. 어쩌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야기가 나오고, 한국 내에서 여성혐오 및 성평등이라는 의제가 각종 미디어의 조명을 받고 대중적으로도 다양한 차원에서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갑자기 D가 한마디 한다. “내가 아직 한국에 가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네. 물론 아시아 국가에서 그렇게 성평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 좋지. 대부분 상황이 많이 안 좋았고 지금도 여전히 안 좋을 테니까. 그런데 그게 너무 극단으로 치닫지 않게 조심해야 할 거...
지난 3월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총격 테러가 발생했다. 이민에 반대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의 테러였다. 50명이 사망했고 또 50명이 다쳤다. 테러범은 이슬람 사원을 공격했고, 많은 무슬림 교도들이 희생됐다. 같은 날, 내가 지내던 오클랜드에서도 폭발물로 의심되는 가방이 발견됐다.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는 기사를 봤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다음 날 시내에 나가니 평소와 달리 이상할 만큼 백인들밖에 안 보였다. 주차장에서 깨진 유리창을 보고 덜컥 겁이 났고, 길에서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던 백인 남성이 무서웠다. 그날 외출을 하기 전에 수없이 고민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의연하게 일상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나오자...
한국에서도 차별과 편견, 그리고 위협은 실재한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온 곳은 문화도 언어도 인종도 다른 이방인이 되었다. 눈에 띄게 다른 인종으로 산다는 건 외로운 일이며, 너무나 쉽게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다.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던 글래스고도 예외는 아니었다. 길을 지나가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니하오’라는 인사는 떠나올 때까지 익숙해질 수 없었고, 어디서 왔냐는 물음은 마주치는 모든 사람과의 첫인사와도 같았다. 특히 내가 유학을 갔던 시기는 한창 북한의 핵 문제가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을 때라서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는 당연하게 북한, 김정은, 핵무기 이 세 단어가따라붙었다. 반복되는 질문에 남한과 북한...
그래, 방금 A가 중요한 지적을 했지. 백인여자교수 S가 말했다. 마치 고요한 핵폭탄이 터진 것처럼, 아주 잠시 교실의 시간이 멈추었다. 방금 중요한 지적을 한 것은 A가 아니라 나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숨을 죽인 사이, 구식 창문형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 교실을 채웠다. 누가 얘기 할래? 서로 눈치만 살피는 사이, 호명된 A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그건 내가 아니라 숙희가 얘기한 거야....
“너는 너무 조용해.” 박사과정을 시작한 첫 해에 내가 가장 자주 받은 피드백이다. 내게 이런 피드백을 가장 많이 준 것은, 별로 놀랍지 않게도 문학이론 수업을 담당한 남자 교수 J였다. 이쯤 되면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J는 백인이다. 분명히 하자면, 박사과정에 진학하기 전의 나는 수업시간 동안 말이 많은 학생은 아니었다. 나는 쓸데없이 나서거나 주의를 내게로 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토론에 기여할 법한 건설적인 의견이나 타당한 의문이 없다면 굳이 진행 중인 논의에 끼어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시간을 들여 생각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것을 선호할 뿐이지, 하고싶은 말이 있거나 해야 할 발언이 있다면 가만히...
너는 너무 조용하고, “진짜” 영문학을 하는게 아니고, 학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백인들의 인종차별과 가스라이팅에도 불구하고, 나는 박사과정 첫 해를 살아남았다. 학교 바깥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조차 편안히 쉬지 못하고 최악의 집주인과 하우스메이트로부터 살아남아야 했다. 보스턴으로 이사 간 첫 해, 한국에 체류 중인 채로 집을 구하느라 지역 평균보다 높은 렌트를 감수하고도 계약한 집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생겼다. 알고 보니 지역에서 악명이 높았던 집주인은 젊은 여자 셋인 나와 룸메이트들을 끊임없이 무시했다. 이사 당일까지 바로 윗집에서 진행 중이던 공사가 끝나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이사한 후에도 끊임없이 시설 문제가 생겼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