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창조경제: 4. 호구가 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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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창조경제: 4. 호구가 된 기분

유라희

<편집자주>

창조경제는 현 정부 정책의 아이덴티티다. 하지만 정권이 1년 정도 남은 이 시점까지도 창조경제를 한 문장으로 간추려 정의하기란 어렵다. 일단 언어학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사전만 봐선 해석이 힘들다.

나는 2013년 2월부터 시작된 창조경제 바람을 줄곧 취재해왔다. 많은 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창조경제의 대표적인 산물, 정부3.0은 “없느니만 못 하다”는 비판에 줄곧 시달렸다. 창조경제 시대 종료를 일 년 앞둔 상황에서 민첩하게 움직여 보기로 했다.

‘창조경제’라는 말에서 주로 떠올리게 되는 ‘스타트업’에 도전한 것.

한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창업 공모전에 선발돼 세 달 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만뒀다. 내가 직접 겪은 창조경제 서포트 현실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그만 두는 진짜 이유

손 안 대고 코 풀 수는 없다. 나도 직장 생활을 8년 가까이 하며 ‘남의 돈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미 알만큼 안다. 창업은 집중과 투자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앞선 두 편을 통해 “본인의 투자 없이 눈 먼 돈 빼 먹으려다 안 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 수도 있다. 너무 널널하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올 수 있다.

이번 화에서는 그만 두는 진짜 속내를 이야기해 본다.

과연 나를 위한 사업인가

시간이 갈수록 지원자들은 “이게 과연 내게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 맞나”에 대해 수 차례 자문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을 들여 서류를 내고, 멘토를 만나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과연 얼마만큼 본인에게 도움이 있는지 세세하게 살폈다. 결론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수 많은 교육 프로그램과 ‘관리자’의 잦은 연락은 오히려 의욕을 꺾었다.

혹 주최 측의 첫 번째 사업이라 시행착오가 있던 것은 아닐까? 수소문한 결과, 정부에서 진행하는 다른 사업들도 마찬가지로 단기 실적 요구와 숱한 행정 서류 요구를 해 와 진행자 본인이 기가 다 꺾인다고들 한다.

정부의 창업지원사업이 모델로 하는 해외 인큐베이팅 사업으로 눈을 돌려보자. 인큐베이팅만 놓고 보면 창업에 필요한 강의를 열고, 3천 만원 안팎의 시드머니(투자금)를 주고, 스타트업을 관리하는 것은 우리나라와 일견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이를 정부가 앞다퉈 직접 진행하지는 않는다. 민간이 진행하는 것을 도울 뿐이다.

뉴욕의 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Digital NYC (http://www.digital.nyc/)’는 말그대로 ‘스타트업을 돕기 위한 허브'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 시스템 또한 굉장히 체계적이다. 먼저 창업자들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디자인 수업과 실무에 필요한 프로그래밍,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과 관련해 보다 세부적으로 강의를 소개하고 지원한다. 이후 이들이 본격적으로 창업준비를 할 수 있는 인큐베이팅 업체 리스트를 제공한다. 창업자들의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고, 어느 정도 진전이 생기면 이들의 리스트를 공개한다.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투자유치를 돕기 위해서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는 ‘꿀사업' 찾기가 한창이다. ‘최대한 쪼지 않고, 많이 퍼 주는’ 정부사업을 찾는 움직임이 많다. 한 멘토링 업체 관계자는 “그런 것(덜 쪼고 돈은 많이 주는)을 찾아 주는 것도 우리의 일”이라고 귀띔했다.

지원 프로그램은 일찌감치 고려 대상에서 제외됐다. 딱히 차별점을 찾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또 다른 멘토링 기관 관계자는 “전에 한 지자체에서 지원을 받아 수천 만 원 규모의 멘토링 사업을 진행했는데, 터무니없는 요구가 많아 중도에 그만 뒀다”고 했다. 이미 업계에서는 정부 창업지원 사업에 대한 회의가 널리 퍼져 있는 셈이다.

결국 스펙용 사업

현행 프로그램으로는 장기적인 벤처 육성이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내가 직접 체험해보고 내린 결론이다. 물론 창조경제 시대에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만 있는 건 아니다. 규제도 완화하고, 창업지원자들에 대해 상당히 편의를 봐 주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같은 지원 프로그램만 놓고 볼 때, 한철 세금 퍼주기에만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정부 입장에선 상징적인 몇 개 기업만 나와도 본전을 찾는 것 이상의 성과를 누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벤처 생태계의 활기를 지속시킬 수 있을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혹시 정부의 이같은 지원 사업을 엔젤투자의 개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을까? 사실 (받지 못할지라도) ’공으로 주는 돈’의 개념에서 예산을 짰을 리 없다. 정부가 투자를 하고, 그로 인해 어떤 성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다만 그들의 방식대로 성과를 마련해 줘야 하는 것이다.

범위를 다시 좁혀서 개인 단위로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지원자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사업에 참여하나. 지원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대학생이다. 물론 벤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이 사업 참여는 ‘괜찮은 스펙 한 줄’이 될 수 있다. 차후 대기업에 취직할 때 꽤 괜찮은 ‘열정 증명서’인 셈이다.

윈윈(win-win) 차원에서 접근해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원자 개인으로부터 여러 수치들을 들고 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원자 개인 입장에서는 그리 ‘섹시한 지표’는 아니다. 억지로 지원금을 쓰느라 이에 붙는 10%의 부가세를 개인 돈을 들이고, 사업자등록을 하느라 장학금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개인 입장에서 냉정하게 따져봐도, 얻는 건 없고 주기만 한다. 시쳇말로 ‘호구가 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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