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홀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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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23구 표류기 1. 한국, 대구공항

몰래

“아따~ 불황은 무슨! 이게 뭔 불황이고! 해외여행 잘들 가는구만!” “아, 아빠.. 누구 들을까봐 쪽팔리니까 제발 그런 홍준표 같은 소리 좀 하지 마...” 그것이 2017년 아빠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불황이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대구공항은 사람으로 미어터졌다.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것보다 도쿄로 가는 게 더 가깝다는 걸 느낄 새도 없이, 깨달았다. 2017년 7월. 나는 ‘워킹홀리데이’(이하 워홀) 비자 소유자의 신분으로 일본에 ‘떨어졌다’. 일본에서 살려면 우선 비자를 취득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비자에는 배우자 비자(일본인과 결혼하는 경우), 취로비자(就労ビザ, 주재원으로 파견을 가거나 현지 취업을 하는...

도쿄 23구 표류기 5. 토시마 구, 이케부쿠로

몰래

2017년 10월. 아다치구, 미나미센쥬 足立区、南千住 이치란을 화려하게 때려친 후 쉐어하우스를 한 번 바꾸고 잠시 간의 백수생활을 즐기다가(?) 편의점 알바를 시작한 지 한 달 째. 흔히 일본에 온 워홀러들은 높은 생활물가로 인해 카케모치(掛け持ち, 투잡 혹은 겸업)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서 하는 알바를 일주일 내내 하면 진짜로 죽을 것 같아서 앉아서 하는 알바를 돌아돌아 구해봤다. 하지만 결국 일본 회사엔 뽑히지 못하고, 한국인들이 경영하는 한 사무실의 경리 알바와 여행사 사무직 알바를 번갈아서 총 쓰리잡을 뛰었다. 그게 나의 2017년 하반기였다. 이래서 외국인은 안 된다니까! だからこそ外人はダメだよ 심정은 알겠...

언니, 우리 이민갈까? 5.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

유의미

사실 나는 이민이 뭔지 잘 몰랐다. 누군가 이민을 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막연히 온 가족이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비행기를 타는 장면을 상상했을 뿐이다. 알고 보니 단순히 외국에 살기로 결정한다고 해서 정말 외국에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주소지를 변경하듯 간단하게 국적을 변경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나만큼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거라 믿는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알아낸 사실을 바탕으로,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감을 잡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도쿄 23구 표류기 2. 아라카와 구, 니시닛뽀리

몰래

어학원에 들어온지 3일째. 입학식과 함께 바로 반 배정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우선 응시자 본인이 ‘초~중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중~고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서 각자 다른 층에서 시험을 본다. 시험은 어휘와 작문으로 이루어지며, 다 치르고 나면 희망하는 시간대(오전 또는 오후)를 골라서 제출하면 끝이다. 나는 10년도 더 전에 일본어능력시험 2급을 땄던 사람이라 ‘지금쯤이면 다 까먹었겠군’이라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초중급 단계에 응시했다. 그런데 마지막 작문시험 문제에서 턱 걸리고 말았다. ‘본인이 일본에 온 이유는? 향후의 일본어 공부 계획은 어떻게 될 것인가?’ '워킹홀리데이를 하러 왔다'는 말 한 마디 말고 뭘...

언니, 우리 이민갈까? 25. 워킹홀리데이, 절망편

유의미

한국에서 중식당이나 베트남 요리 전문점에 가면 한국어에 서툰 직원을 마주칠 때가 있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쳤다면 요즘은 뉴질랜드에서 일하는 내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에 왠지 유심히 보게 된다. 매년 5월경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비자 신청일이 돌아오고, 한국에서만 3,000명의 청년이 선발된다. 이들은 외국에서 일할 기회라는 이유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고 경험은 값진 것이지만 농업에 뜻이 없는 사람도 키위 농장에서 키위를 따고, 공업에 뜻이 없는 사람도 홍합 공장에서 홍합을 까는 워킹 홀리데이가 과연 ‘꿈과 희망’씩이나 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시...

언니, 우리 이민갈까? 26. 첫 홀리데이, 네이피어

유의미

뉴질랜드에 온 지 삼 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처음 이 땅을 밟고 하늘도 바람도 새로워서 매일 즐거웠지만, 출근하고 퇴근하는 건 금방 지루한 일과가 되었다. 근무시간이 짧긴 하지만 주 6일씩 출근하며 번 돈을 대부분 주거비로 내는 것도 한국과 다를 바 없었다. 휴일에도 역시 한국에서와 다를 바 없이 밀린 빨래와 집안 정리를 하며 보냈다. 신나는 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뉴질랜드의 삶은 그저 무료하고 지루했다. 퇴근하고 도서관도 가봤고 책도 읽어봤고 심지어 영어 공부도 해봤고 요가도 해봤지만 남는 시간은 너무 많았고, 친구도 취미도 없는 채로 그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 한 몸 간신히 누일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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