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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 Feminist Scientists 9. 우리는 정말 미친 걸까? 여성과 정신병

하미나

지난 3년간 우울증에 거의 집착하듯 매달려 지냈다. 이러한 관심은 우울증을 비롯한 다양한 정신질환으로 확장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여성이 정신의학 지식에서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가 나의 주된 관심사다. 여성과 정신병에 주목하게 된 것은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20대 페미니스트 활동가 단체 ‘페미당당’의 구성원 중 한 명으로 활동하면서부터다. 2016년은 페미니즘 이슈가 연달아 터진 해다. 그중 나와 동료 활동가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힌 것은 미투 운동 이전 앞서 이루어진 #OO계_내_성폭력 운동이다. 그해 10월 트위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성폭력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잇달아 터져 나왔다. 억눌렸던 상처가 폭발하듯 드...

Mad (Feminist) Scientists 2. 여자들이 엄살이라고?

하미나

엄살이란 말이 싫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몸이나 마음이 아플 때마다 이 단어를 떠올리며 나의 고통이 진짜인지 자꾸만 가늠하게 되기 때문이다. 의사 앞에선 자주 주눅 든다. 고통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오로지 나만의 경험인데도, 그것을 판단하는 권한이 내가 아닌 그의 손에 달린 것 같다. 엄마는 힘든 일이 생기면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옆구리와 허벅지 피부를 피가 나도록 긁어도 간지러움이 가시지 않아 잠을 자지 못하셨다. 때로는 가슴이 조여들 듯 아프고 답답하다며 숨을 잘 못 쉬었다. 병원을 여러 군데 다녀도 제대로 된 진단명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 치료법도 매번 달랐다.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은 더욱 괴롭다. 성인이 되고 나...

Mad (Feminist) Scientists 1. 예미산 여신이 노하지 않도록

하미나

과학 기자로 일할 때였다. 첫 지방 취재를 가게 되었는데 강원도 정선에 있는 예미산이었다. 이곳에서 국내의 한 연구소가 ‘우주의 미스터리’로 불리는 암흑물질을 탐지하기 위해 지하 1100m 깊이에 지하실험실을 건설하는 중이었다. 도착해보니 철광이었다. 도착한 날은 하필 예미산 여신에게 고사를 지내는 날이었다. 철광 관계자는 담배를 피우며 “갱도를 뚫을 때면 여신을 괴롭힌다는 생각에 늘 고사를 지낸다”고 말했다. 최첨단 과학실험장치가 설치되는 곳에 여신이라니. 같은 2019년에 살아도 실은 서로 다른 시기가 공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Mad (Feminist) Scientists 3. 여성과 남성은 같을까, 다를까?

하미나

평등을 위해 우리는 여성이 남성과 같다고 주장해야 할까, 아니면 다르다고 주장해야 할까? 월경을 예로 들어보자. 생리 결석 혹은 휴가는 양가적인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 여성은 남성의 몸은 경험하지 않는 월경을 강조함으로써 월경이 있는 날 휴식을 취하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 평등이라 주장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월경을 특별히 대처해야 할 상태라고 규정하면 규정할수록 이것이 여성을 신체적, 사회적 활동에서 배제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같음과 다름 사이의 시소 타기. 이는 비단 여성뿐 아니라 인종, 성소수자, 청소년 등 모든 소수자 문제에서 부딪히는 일종의 딜레마다. 지난 글에서는 남성 중심의 의학에서 여성이 소외되는 현상을...

페미니스트 북클럽 & 살롱: 6. '퀴리 부인' 말고 아는 사람 없어?

주연

얼마 전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만든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영상은 여성 어린이들에게 ’여성 발명가를 얼마나 알고 있니?’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발명가들을 보여주고 아이들의 놀라움과 흥분이 담긴 표정을 담았다. #MAKEWHATSNEXT(다음 무언가를 만들어봐)'라는 해시태그로 끝나는 영상은 성인 여성들에게도 두근거림을 선사한다. 어릴 때 가장 재미없는 책은 위인전 류였다. 모두 먼 서양의 이야기였고, 죄다 남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과학 분야에서는 유독 여성이 없었는데, 마리 퀴리의 이름은 누구나 기억한다. 그마저도 퀴리 ‘부인’이라고 쓰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과학 분야에서 위대한...

FREE

Mad (Feminist) Scientists 시즌 2 4. 여자의 자리를 빼앗는 사람들 – 컴퓨터과학 (2)

하미나

지난 연재에서는 최초의 프로그래머가 여성이고, 이들이 컴퓨터과학 발달의 역사에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글에서 다룰 이야기는, 여성의 영역이었던 ‘코더(coder·컴퓨터 프로그래머의 다른 말)’의 자리가 어떻게 남성의 자리로 대체되고, 긱geek 혹은 너드nerd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지다. 1946년 최초의 대형 전자식 컴퓨터인 에니악(ENIAC·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alculator)은 현대 컴퓨터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에니악 프로젝트에서 전자식 컴퓨터 시스템을 구상하고 디자인하는 일은 ‘설계자(planner)’의 일, 설계자의 아이디어와 문제 해결법을 컴...

Mad Feminist Scientists 8. 무지무지 다채로운 생물들의 섹스 이야기

하미나

10억 년 전, 생물은 하나의 거래를 했다. 그 거래란 개체의 불사성(不死性)을 잃는 대신, 성의 기쁨을 얻은 것이다. 죽음과 성, 우리는 죽음 없이 성을 얻을 수 없다. 자연은 생물에게 무척이나 가혹한 거래를 강요한 셈이다. - 앤 드루얀·칼 세이건,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내 친구 예구리는 무성애자다.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로 어떤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에게도 낭만적으로 또 성적으로 끌림을 느끼지 않는다. 예구리는 유성애에는 늘상 유난이 허락되며, 뭐든 기껍고 당연하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정말 맞았다. 에로스는 인간관계의 가장 소중하고 위대한 것으로 취급되곤 했다. 사람들은 상대에게 연애 중인지 묻기를...

Mad (Feminist) Scientists 시즌 2 2. 여자의 자리를 빼앗는 사람들 - 산파

하미나

첫 직장은 과학 기사를 생산하는 언론사였다.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가지였지만, 회사 내 여성 비율이 높다는 점이 한몫했다. 대표도 여자였고, 팀장도 여자였다. 좋은 신호라고 생각했다. 내 얘기를 들은 한 회사 선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게 과연 좋은 징조일까…… 과연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입사 후 몇 개월이 지난 뒤 알게 됐다. 이 회사 역시 남자 직원을 선호하고 키워주려 한다는 것, 같이 입사한 남자 동기는 군대를 다녀왔다는 이유로 나보다 연봉이 높다는 것. 또한, 이 회사의 여성 비율이 높은 것은 여성이 다니기 좋은 회사여서가 아니라 이 업계가 노동에 대한 보상이 적은 곳이어서 일 수 있다는...

Mad (Feminist) Scientists 5. 하나의 성(sex)만이 존재하던 때

하미나

과학이 철학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지나간 이론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철학과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가르치고 2000년 전 책을 읽게 하지만 자연과학대학에서 이들의 과학을 가르치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좀 어렵다. 무수히 쏟아지는 최신의 연구를 습득하기만 해도 바쁠 것이다. 한편 고대에는 철학과 과학의 경계가 불분명했다. 과학의 첫 시작을 기원전 6세기의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에 두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왜 하필 시작이 또 유러피언 백인 남자일까?). 이때의 과학은 근대적 과학 방법론과 아주 다르고 ‘과학science’이라는 말 자체도 발명되지 않았으니 과학보다는 자연철학이라고 말하는 게 더 알맞다. 고대 그리스...

Mad (Feminist) Scientists 시즌 2 3. 여자의 자리를 빼앗는 사람들 - 컴퓨터과학(1)

하미나

지난 연재에서는 ‘여성의 자리를 빼앗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출산의 영역에서 여성 산파가 남성 산부인과 의사에게 밀려난 역사를 다루었다. 이번 글에서는 컴퓨터공학 분야에서 여성이 자신의 자리와 지위를 잃은 역사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머릿속에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한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는 남자인가, 아니면 여자인가? 그는 사회성이 좋은가, 아니면 썩 좋지 않은가? 그는 세련되었는가, 아니면 촌스러운가? 또 그가 남자라면 그는 여성을 어떻게 대하는가? 미국 CBS의 시트콤 드라마 ‘빅뱅 이론’의 쉘든처럼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곧잘 ‘너드nerd’나 ‘긱geek’의 이미지를 갖는다(물론 빅뱅 이론의 쉘든은 프로그래머...

Mad (Feminist) Scientists 6.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르니 너는 집에서 애를 보렴

하미나

『사회계약론』, 『에밀』 등의 저서를 남긴 프랑스의 교육학자,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며 프랑스 혁명과 민주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알려졌다. 한편 그가 대단한 성차별주의자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대부분의 철학자가 여성혐오자여서 그럴까?). 내 지도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루소는 18세기의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인물로, 그가 말하는 자유와 평등은 오직 남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루소가 보기에 여성에게는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진리를 파헤칠 재능이 없었다. 그는 여성의 자리를 가정으로 지정하면서 남성이 공직에 나가 일할 수 있도록 여성은 그의 옷을 바느질하고 집안일을 도맡는 역할을 해야 한...

Mad (Feminist) Scientist 시즌 2 6. 슈퍼우먼이 되지 않아도

하미나

지난 연재에서는 페미니스트로서 학계에서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구구절절 토로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들 한 명 한 명이 ‘수퍼우먼’이 되는 일이 아니라 작당 모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작당 모의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첫째로 여성 한 명 한 명이 겪은 경험이 단지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그 뒤에 여성 전체라는 집단의 경험이 놓여있다는 것을 눈치채야 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나는 ‘예외’일 것이라는 생각, ‘열심히 해서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너머야 공동의 연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성은 스스로에게나 다른 여성에게나 들이미는 도덕성의 기준이 높지 않나. 어렵게 형성한 연대 역시 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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