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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7. 동화책도, 동요도, 나도 다 빻았다

Ah

연재 초반에 정바당을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키워내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래서 그 일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느냐면… 총체적 난국 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미소지니’의 영향력은 어린이들의 세계에서도 건재했다. 동화책을 읽다 착잡해졌다 처음 불편함을 느낀 건 동화책이었다. 정바당에게 태담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아동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전까지는 동화를 그저 ‘아이들이 읽는 책’이라고 여겼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어른이 된 내가 읽기에도 좋은 책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사노 요코의 <백만 번 태어난 고양이>는 정말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 어린이도서관에서 처음 읽던 날은 초등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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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발견 1. 주어진 역할은 늙은이

조은혜

*페미니즘 책은 아니지만 페미니스트들이 읽어도 편한 이야기들이 있다. 윤이형 작가의 소설집 <<러브 레플리카>>는 그런 책들 중 하나다. 책에 실린 거의 모든 이야기들은 불편하지 않으며 생각해볼만 하다. 그 중 <대니>는 늙은 여자와 AI의 이야기로 우리가 늙은 여자를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대니>를 통해 아줌마나 할머니란 호칭으로 소비되는 늙은 여자들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생각한다. <대니>, <<러브 레플리카(윤이형 저, 문학동네)>> 소개팅을 닥치는 대로 한 적이 있다. 들어오는 소개팅은 마다하지 않았고 없는 소개팅도 물어가며 했다. 그때 만난 남자들 중 꽤 괜찮은 남자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문소리, 엄정화 그리고 조민수가 출연한 <관능의 법칙>이었다. 기대하지 않고 봤지만 영화는 꽤 재밌었다. 나이 든 여자들이 당당하게 사랑을 욕망하고 쟁취하는 과정은 통쾌했다. 영화 속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늙은 여자가 뭐! 늙은 여자는 이러면 안되냐? 영화를 보고 나온 소개남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두 번째 만난 거 치곤 좀 야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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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 오혜진의 백일몽 9. 2019 세계의 크기를 넓힌 책들

오혜진

백일몽 [day-dreaming, 白日夢]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상하는 것. 직업이 직업인지라, 사회와 나 자신에게 엄청나게 중요하거나 또는 그렇지도 않을 책들을 끝없이 읽고 써댄다. 그럼에도 아직 다 읽지 못한 채 머리맡에 쌓아둔 책들이 한가득이다. 언제 읽어도 좋은 것이 책이지만, 때로는 특정 시기에 꼭 읽혀야 할 책들을 놓쳤을까봐 조바심이 앞선다.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속한 세계의 크기가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각각의 세계에는 나름의 아귀지옥이 있기 마련이지만, 종일 학교와 집안 책상만을 오가며 학위 취득과 구직을 위해 아카데미 주변을 기웃거리는 게 삶의 전부인 사람의 관심사는 얼마나 넓고 다양할 수 있나. 나는 종종 최근 중견작가들의 소설에 등장하...

엄마, 본다 5. 거의 정반대의 행복

Ah

육아서는 읽지 않지만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쓴 글은 대체로 열심히 읽는 편이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이 그렇지만 육아는 특히 직접 경험해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대목들로 꽉 채워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를 추측하거나 상상력을 발휘하는 공을 들일 필요없이 그저 활자를 읽는 순간 그 이야기를 흡수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문장들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 그런 독자에게 ‘에세이’만큼 매력적인 장르는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에세이를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가 쓴 것이어도 어쩐지 그저 그랬다. 그런데 얼마전 작년에 읽은 책 목록을 정리하면서 아이를 낳고 난 후로 본 책들 중 대부분이 에세이라는 걸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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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본다 2. 바깥은 여름

Ah

김애란 작가를 좋아한다. 장편도 좋지만 단편소설집들은 특히 좋아한다. 이십대 때, <비행운>같은 단편집을 모국어로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래서 지난 여름 그녀의 새로운 단편소설집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주 오랜만에 설렜다. 아이의 늦은 낮잠을 재운 오후였다. 아이 옆에 조금 누워 있다가 책 생각이 나 거실로 나왔다. 마루로 햇살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던 날이었다. 아이가 자는 집은 모처럼 아주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나는 소파에 누워 첫 작품인 <입동>부터 읽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이야기의 정체를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아주 많이. 읽으면서도 울고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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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북클럽&살롱: Epilogue

주연

설렘과 긴장으로 시작했던 페미니스트 북클럽 & 살롱 시즌 1이 4가지 세션, 15주차의 만남을 거쳐 지난 연말 마무리됐다. 말하고 공부하고 나누었다 한여름에 2016년에 한국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로 첫 주차를 시작했고, 그때 한국에서 이어져 온 유구한 여성혐오의 역사를 정리하자 연표가 되었다. 이어서 혁신과 진보를 자처하는 IT 업계의 노골적인 성차별 이슈를 통해 연구실, 직장 등 이공학계 현장에 있는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2016년 한국의 여성 이공학도들이 경험하는 현장의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왜 여자한테 쿼리를 짜는 중요한 일을 시켰어?”, “너네는 순번 정해서 임신해라.”)과 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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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본다 6. 엄마는 페미니스트 (상)

Ah

최근에 자기소개를 할 일이 있었다. 오랜만이라 그랬는지 구구절절 말이 길어졌는데 집에 돌아와 곱씹어보니 ‘여성’, ‘양육자’, ‘페미니스트’라는 세 단어로 요약됐다. 아이를 기르면서 내가 가장 고민하고 또 몰입해 있는 정체성들이라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엄마는 페미니스트>는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필독서 같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출간 직후 펼친 책에서 나를 사로잡는 구석은 많지 않았다. 다른 페미니즘 서적들처럼 나를 심란하게 하지도, 깊은 고민에 빠져들게 하지도 않았다. 그때만 해도 “엄마”와 “페미니스트”라는 각각의 역할 사이에 어떤 모순도 없다고 생각했었고 내가 바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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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본다 4.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Ah

사실 나는 아직까지 본격적인 양육서를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어쩐지 양육서는 일종의 자기계발서 같고, 나는 그런 종류의 책은 잘 읽지 않는 독자다. 백이면 백 모두 다른 상황과 맥락을 그럴싸한 몇 마디로 퉁치는 것 같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지 않은 책들도 있을 테고 전문가들의 의견과 조언이 필요한 영역도 있겠지만. 하지만 그런 내게도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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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본다 8. 이상한 정상가족

Ah

나도 아이를 낳고 기르기 전에는 아동인권에 대해서 무지했다. 아동인권까지 갈 것도 없이 아이들이, 그리고 아이를 동반한 양육자들이 이 사회에서 겪는 불편과 불합리에 무감각한 사람이었다. 이 사회의 거의 모든 것이 ‘비장애인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성인에게는 일상적인 공간과 시설조차 아이들에게는 장애물이자 위험한 곳이 된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외출을 할 때면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아이에게 명백한 악의와 적의를 내뿜는 사람들을 마주치곤 했다. 그것이 아이와 함께 있는 여성인 나를 향한 적의가 아닐지 의심스러운 적도 있긴 했지만 어떤 이들은 아이가 배려의 대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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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줍는 시 6. "미래가 온다"

신나리

*이 책에는 각주 대신 디졸브(dissolve, 장면전환기법)가 사용되었음을 밝혀둔다. - 김현, <미래가 온다>, 『입술을 열면』, 창비, 2018, 190-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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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줍는 시 마지막. 이소호가 이경진의 입술을 열고 말을 불러 일으킬 때

신나리

3월 12일 화요일 아침에 집을 나서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아침에는 엄마와 아빠가 또 큰소리를 내고 싸웠다./내가 스물 아홉이나 먹어서 이런 일기를 쓰다니 참 내 인생도 안 됐다./나는 엄마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린 시절 그녀는 스스로에 대해 잘 몰랐던 거야./그래서 자신에게 맞지 않는/아주 나쁜 선택을 했다./그리고선 지금까지 처벌을 받고 있다./그 이후의 불행에 대해, 그녀는 시정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똑같이 살고 있다./이건 한심하고 멍청한 일이야./이런 생각을 해본 건 처음이다. 나는 집에서 작업실로 걸어가며 홀로 했던 생각을, 그날 오후 일기장에 적었다. 이것은 용납될 수 없는, 아무...

다시 줍는 시 14. 미모사 곁에서

신나리

언젠가는 했어야 할 이야기를 이제야 꺼내 놓는다. 나는 사랑했던 집단으로부터 배척과 적대를 당한 적이 있다. 대학 시절, 나는 친구를 돕기 위해 양성평등센터와 성폭력심의위원회의 교수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 그들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으며 심지어 수차례 우리를 모욕했다. 이후 나는 우리를 공격하던 사람으로부터 명예훼손 죄로 형사 고소를 당하기까지 했다. 대학은 내게 여성학을 가르쳐주고 여성 연대란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해준 최초의 공간이었다. 그러한 대학에서조차 인간으로, 여성으로 보호와 존중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 일로 나는 아주 큰 상처를 받았고 공동체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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