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

영화

<책> 카테고리의 최신 기사

다시 줍는 시 마지막. 이소호가 이경진의 입술을 열고 말을 불러 일으킬 때

신나리

3월 12일 화요일 아침에 집을 나서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아침에는 엄마와 아빠가 또 큰소리를 내고 싸웠다./내가 스물 아홉이나 먹어서 이런 일기를 쓰다니 참 내 인생도 안 됐다./나는 엄마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린 시절 그녀는 스스로에 대해 잘 몰랐던 거야./그래서 자신에게 맞지 않는/아주 나쁜 선택을 했다./그리고선 지금까지 처벌을 받고 있다./그 이후의 불행에 대해, 그녀는 시정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똑같이 살고 있다./이건 한심하고 멍청한 일이야./이런 생각을 해본 건 처음이다. 나는 집에서 작업실로 걸어가며 홀로 했던 생각을, 그날 오후 일기장에 적었다. 이것은 용납될 수 없는, 아무...

다시 줍는 시 28. 여성의 고통은 어떻게 시가 되는가1 : 박서원과 고통으로 세계와 자신을 파멸시키기

신나리

시인 박서원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9년 그는 잡지 『문학정신』에 「학대증」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한다. 이후 총 5권의 시집, 『아무도 없어요』(1990), 『난간위의 고양이』(1995), 『이 완벽한 세계』(1997), 『내 기억속의 빈 마음으로 사랑하는 당신』(1998), 『모두 깨어있는 밤』(2002)을 차례로 출간한다. 그런데 다섯 번째 시집의 출간 이후 그는 문단에서 자취를 감춘다. 긴 시간이 흐른 뒤인 2016년, 문단에는 그가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리고 신문 기사를 통하여, 박서원이 2012년 5월 16일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이 알려진다. 이후 2018년,...

내가 없는 한국문학사

허윤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민음사, 2018)의 출간 이후, 책을 소개할 때 종종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그때마다 한국문학사에서 정전화한 비장애인-이성애자-남성 중심의 거대 ‘문학’을 부수고, 복수의 다양한 목소리가 교차하는 ‘문학들’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 ‘문학’을 설명할 사례가 지난주 SNS에서 화제였던 이외수의 「단풍」 사건이다. 짧게 지는 가을 단풍을 ‘화냥년’에 비유한 이 시는 SNS에서 논쟁을 이끌어냈다. 이외수는 이 시의 여성혐오적 구조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독서량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난독증이 심하고, 난독증이 심한 사람일수록 작가의 의도를 간파하거나 행...

엄마, 본다 9. 어린이책 읽는 법

Ah

대부분의 근로노동자가 업무 지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연차, 업무의 진행상황 등에 따라 하루 일과가 조금씩 달라지듯이 주양육자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매일 열심히 자라고 그에 따라 나의 일과도 조금씩 바뀐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는 업무는 '책 읽어주기’다. 새벽수유와 수면교육 등 지난날을 지배했던 과제들을 떠올려보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은 그래도 낭만적인 일이다. (물론 여러분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은 나의 책 읽어주기 현장과는 다를 것이다. 매일 똑같은 그림책들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두 시간 가까이 읽어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시 줍는 시 14. 미모사 곁에서

신나리

언젠가는 했어야 할 이야기를 이제야 꺼내 놓는다. 나는 사랑했던 집단으로부터 배척과 적대를 당한 적이 있다. 대학 시절, 나는 친구를 돕기 위해 양성평등센터와 성폭력심의위원회의 교수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 그들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으며 심지어 수차례 우리를 모욕했다. 이후 나는 우리를 공격하던 사람으로부터 명예훼손 죄로 형사 고소를 당하기까지 했다. 대학은 내게 여성학을 가르쳐주고 여성 연대란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해준 최초의 공간이었다. 그러한 대학에서조차 인간으로, 여성으로 보호와 존중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 일로 나는 아주 큰 상처를 받았고 공동체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

엄마, 본다 8. 이상한 정상가족

Ah

나도 아이를 낳고 기르기 전에는 아동인권에 대해서 무지했다. 아동인권까지 갈 것도 없이 아이들이, 그리고 아이를 동반한 양육자들이 이 사회에서 겪는 불편과 불합리에 무감각한 사람이었다. 이 사회의 거의 모든 것이 ‘비장애인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성인에게는 일상적인 공간과 시설조차 아이들에게는 장애물이자 위험한 곳이 된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외출을 할 때면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아이에게 명백한 악의와 적의를 내뿜는 사람들을 마주치곤 했다. 그것이 아이와 함께 있는 여성인 나를 향한 적의가 아닐지 의심스러운 적도 있긴 했지만 어떤 이들은 아이가 배려의 대상이라...

엄마, 본다 6. 엄마는 페미니스트 (상)

Ah

최근에 자기소개를 할 일이 있었다. 오랜만이라 그랬는지 구구절절 말이 길어졌는데 집에 돌아와 곱씹어보니 ‘여성’, ‘양육자’, ‘페미니스트’라는 세 단어로 요약됐다. 아이를 기르면서 내가 가장 고민하고 또 몰입해 있는 정체성들이라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엄마는 페미니스트>는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필독서 같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출간 직후 펼친 책에서 나를 사로잡는 구석은 많지 않았다. 다른 페미니즘 서적들처럼 나를 심란하게 하지도, 깊은 고민에 빠져들게 하지도 않았다. 그때만 해도 “엄마”와 “페미니스트”라는 각각의 역할 사이에 어떤 모순도 없다고 생각했었고 내가 바로 “엄마...

다시 줍는 시 8. 그의 비명과 나의 비명 사이에서

신나리

매일 서울의 한 종합 시장 거리를 걸어서 통과한다. 작업실이 시장 근처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낮에 그곳을 걸어서 통과하는 일은 내게 무척 자극적이다. 이번 겨울, 내가 본 것들을 그려보자면. 거리 입구에서 커다란 바구니에 시래기를 잔뜩 담아 팔던 노인 그리고 수북하게 담겨 있던 시래기 위로 끊임없이 내리던 눈송이들. 한 블록마다 서 있던 풀빵 장수들, 놀랍게도 풀빵의 이름은 국화빵, 붕어빵, 은어빵으로 모두 달랐다. 아주 좁고 긴 골목 끝에 앉아 조개와 굴을 까서 팔던 노인 부부, 비가 오는 으슬으슬 추운 날에도 그곳에 하염없이 앉아계시곤 했다. 낮에는 과일 장수로 지내고 밤에는 외제차를 몰고 달린다던 소...

엄마, 본다 5. 거의 정반대의 행복

Ah

육아서는 읽지 않지만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쓴 글은 대체로 열심히 읽는 편이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이 그렇지만 육아는 특히 직접 경험해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대목들로 꽉 채워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를 추측하거나 상상력을 발휘하는 공을 들일 필요없이 그저 활자를 읽는 순간 그 이야기를 흡수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문장들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 그런 독자에게 ‘에세이’만큼 매력적인 장르는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에세이를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가 쓴 것이어도 어쩐지 그저 그랬다. 그런데 얼마전 작년에 읽은 책 목록을 정리하면서 아이를 낳고 난 후로 본 책들 중 대부분이 에세이라는 걸 알게...

다시 줍는 시 6. "미래가 온다"

신나리

*이 책에는 각주 대신 디졸브(dissolve, 장면전환기법)가 사용되었음을 밝혀둔다. - 김현, <미래가 온다>, 『입술을 열면』, 창비, 2018, 190-194쪽....

엄마, 본다 4.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Ah

사실 나는 아직까지 본격적인 양육서를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어쩐지 양육서는 일종의 자기계발서 같고, 나는 그런 종류의 책은 잘 읽지 않는 독자다. 백이면 백 모두 다른 상황과 맥락을 그럴싸한 몇 마디로 퉁치는 것 같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지 않은 책들도 있을 테고 전문가들의 의견과 조언이 필요한 영역도 있겠지만. 하지만 그런 내게도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책이 있다....

엄마, 본다 2. 바깥은 여름

Ah

김애란 작가를 좋아한다. 장편도 좋지만 단편소설집들은 특히 좋아한다. 이십대 때, <비행운>같은 단편집을 모국어로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래서 지난 여름 그녀의 새로운 단편소설집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주 오랜만에 설렜다. 아이의 늦은 낮잠을 재운 오후였다. 아이 옆에 조금 누워 있다가 책 생각이 나 거실로 나왔다. 마루로 햇살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던 날이었다. 아이가 자는 집은 모처럼 아주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나는 소파에 누워 첫 작품인 <입동>부터 읽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이야기의 정체를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아주 많이. 읽으면서도 울고 읽고...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