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 그리고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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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그리고 Here

이운

그는 눈이 보이지 않도록 해맑게 웃을  때 행복해보였다. 그의 웃음은 주위 사람들까지도 행복하게 해주었다. 나는 그의 웃음이 좋았다. 그랬던 그가 웃음을 잃어버렸다. 평소 외로움을 타던 그에게 찾아온 남자 때문이었다. 남자는 자기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에게 눈길을 받으면 뿌듯해진다는 등의 이유들을 대며 그에게 살을 빼라고 했단다. 맛집 투어를 즐기던 그가 PT를 끊고 식단 조절을 시작했다. 한 달 만에 8키로가 빠져서 나타난 그는 전과 같은 웃음을 짓지 않았다. 애인이 자기 모습을 좋아해서 기쁘다는 말만 했다. 안타까웠다. 

그는 그가 좋아하던 것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의 옷을 입고 나타났다. 불편해 보였고, 그 자신도 썩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 예뻐졌다’, ‘애인 생기니까 사람이 달라지네’ 라고 했다. ‘칭찬해줘서 고마워.’ 라는 말과 함께 미소를 지었지만, 내가 좋아하던 웃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말들이 칭찬은 맞는 건지, 그에게 족쇄를 채우는 말들은 아닌지, 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루는 그가 술을 마시자고 연락을 했다. 오랜만이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사람들을 만나도 좋아하던 술을 멀리하면서 물만 마셨기 때문이다. 그의 헤헤 거리며 웃는 술주정이 그리웠고, 술에 취해 알아볼 수 없게 보내는 카톡도 그리웠었는데,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어서 그런지 그는 금방 취했다. 하지만 전처럼 웃음을 짓지 않았고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사실 너무 힘들다고, 살을 빼도 거울 속 자신이 예뻐 보이기는커녕 징그러워 보인다고 했다. 어제 꿈속에선 폭식도 했단다. 자책감에 꿈속 자신의 뺨을 때리다가 놀라 일어났다고 했다. 자신은 그 남자의 트로피가 아니라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그 남자가 싫었다. 처음에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더 마음에 안 들어졌다. 그의 핸드폰을 가져와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가 뭔데 살을 빼라 마라야. 너나 좀 관리하고 예쁘게 꾸미고 나타나봐라. 날씬한 사람을 원하면 애인한테 바라지 말고, 네 살들을 그렇게 빼봐. 왜 엉뚱한 곳에 네 욕망을 풀어. 다시 연락하기만 해봐.” 엉엉 울던 그는 나의 전화에 놀란 듯 했지만, 나를 말리지는 않았다. 

그 날 이후로 그는 다시 맛집 투어를 시작했다. ‘다이어트’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그는 웃음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고, 너무 외롭다고 말하던 그는 다시 다이어트를 했다. 자신이 살이 쪄서 연애를 못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웃음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이 그를 다이어트에 집착하게 만든 걸까 화가 났다. 그래도 그의 다짐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나를 말려야 했을까, 아니면 다시 다이어트를 한다고 한 그를 말려야 했을까. 오랜만에 만난 그의 표정은 연애를 할 때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 살이 빠지지 않아 다이어트 약을 먹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식욕이 억제되는 덕분에 안도감과 함께 우울증도 찾아왔단다. “나 이 세상을 떠날까봐. 사회에서 내놓는 사이즈에 맞추려고 나를 줄여야 하는 게 이상해.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으려고 살을 빼려고 하는 것도 이상하고 무서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다이어트를 그만두지 못하는 자신이 끔찍하단다. 그는 다이어트 약의 부작용으로 토를 하면서 숨도 못 쉴 만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누가 그들에게 그의 몸에 대해 평가할 자격이나 권리를 주었을까. 그런데 왜 아무도 그가 받을 상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주지 않은 걸까. 그 상처들 때문에 거울 속의 자신을 자책하고 꾸짖었을 그는 얼마나 아프고 외로웠을까. 꼬르륵 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먹방을 보면서 잠이 들었을 그를 안아주고 싶다. 족쇄를 차게 하는 말을 들었을 그의 귀를 막아주고, 지울 수 없는 상처에 울고 있었을 그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 

나는 그가 눈이 사라지도록 웃을 때를 좋아한다. 다이어트 걱정 따위는 없이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도 좋다. 난 그런 그의 모습들을 내 마음에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 그가 자신의 모습을 볼 수만 있었다면 덜 아파하고 자신을 더 사랑해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가뿐히 무시해버렸을 수도 있다. ​


어디에나 존재할 그들을 위로하고 싶은 밤. 오늘따라 왼쪽 팔에 다짐을 하며 새긴 타투가 간질거린다. 나는 그와 같이 상처 받은 여성들과 함께 힘을 내자고 마음먹으며, 서로 맞잡은 듯 혹은 기도하는 듯 보이는 그림의 타투를 새겼다. 나의 아픈 과거와도 같은 그들을 위해 새긴 손이 부끄러워지지 않게 내일도 나는 용기를 내야겠다. 그와 동시에 속으로 말할 것이다. ​ 

잘 가 과거의 나야. 좋은 기억들만 담아서 다음 미래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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