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검도 시작했어요? 여자가 격투기하는 거 드물잖아요."
송년회 자리에서 받은 질문이었다. 주최자 외에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는데 ‘검도하는 사람’이라는 내 말에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안경 쓰고 수더분한 표정에 별 말 없이 앉아 있어서였을까? 검도말고 다른 취미를 돌아보면 확실히 그림과 글쓰기처럼 격한 움직임과 한참 먼 것들 뿐. 그러다보니 이런 질문을 받으면 왠지 납득하고 만다.
여기에 보통 추가되는 질문은 보통 "한 지 얼마나 됐어요?"이다. 대학교 2학년 때인 2005년부터 했으니 햇수로 10년은 족히 넘겼다. 뻣뻣하고 배움이 더딘 몸을 갖고 대학 검도 동아리의 문을 연 첫 순간이 기억조차 안난다. 여튼 "10년 넘게 했어요"라 하면 이렇게들 반응한다. "와! 대단하네요. 본인 옆에 긴 막대기 있으면 안 되겠다." "혹시 젓가락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나요?" 이쯤 되면 내 마음 속 외침의 데시벨이 좀 커진다.
"아니야, 아니라구! 긴 막대기는 누가 휘둘러도 공포스럽고 젓가락은 한 손으로 잡기에도 턱 없이 작다구!"
검도가 무도의 영역이긴 하지만 우리가 보는 무술영화의 등장인물처럼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순간은 사실 없다. 정말 검도해서 일상에 보탬이 된다면 이런 정도다. 일단 죽도를 휘두르다 보니 손의 악력이 세다. 유사시 사람을 밀어 넘어 뜨릴 때 쓰일 수 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잘 안 열리는 병뚜껑을 힘껏 열 때 주로 쓰인다. 남자인 아빠도 못 여는 병뚜껑을 간혹 내가 따는 순간이 있다.
또 하나 보탬이 되는 건 동체시력. 날아오는 상대방의 죽도에 하도 맞는 과정에서 상대의 날아오는 칼이 재빨리 감지되곤 한다. 그래서일까. 어쩐지 회사에서 점심식사를 할 때 떨어지는 젓가락을 좀더 빠르게 잡을 수 있다. "오" 하는 탄성이 나오지만 짧게 지나갈 뿐. 여기에 굳이 보태자면 헉헉 댈 만큼 두들겨 맞으며 대련을 해온 탓인지 야근할 때나 회사 모임으로 등산을 떠날 때 단련된 체력이 요긴하게 쓰이는 정도다. 그나마도 서른을 넘기며 그 체력이 점점 줄어든다.
무술이라곤 하나 호신술로 써먹기에 참으로 요원하고, 심지어 취미로 검도를 하는 사람 자체가 주변에서 흔치 않다. 그 작디 작은 검도 인구 중에서 더더욱 가뭄에 콩나듯 존재하는 여성 검도인이란 뭘까. 생활 체육인으로서의 지난 검도 수련생활이 마냥 즐거웠다고는 말 못 하겠다. 하지만 10년 넘게 검도를 수련하며 한 인간으로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며 더 나은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시작할, 이 여자 검도인의 이야기는 느려도 거북이 걸음으로 꾸준히 성장해온 나날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