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야근과 수련의 줄다리기

핀치 타래검도운동여성서사

03. 야근과 수련의 줄다리기

야근의 신이여 제발 오늘만은!

이소리소



오늘은 도장에 갈 수 있을까? 

어떤 운동이던 꾸준한 출석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으니, 바로 야근이다. 운동가기 귀찮은 마음은 자신을 다독이면 된다지만(물론 그것조차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직장에서의 야근은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영역이다. 야근에 당첨되면 심야의 사무실에서 뻣뻣하게 굳은 허벅지를 부여잡고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다. 반복된 야근에 몸이 굳는 날이 많아지면 원하는 만큼 실력이 늘지 않는다. 저녁 일 때문에 도장에 간 날이 손에 꼽힐 때가 많았다. 저녁 7시에 수련 시작인 도장에 다닐 때는 6시 30분에 퇴근해도 빨리 도착해봤자 7시 35분. 도복을 갈아입고 호구를 착용하면 수련 종료 10여 분 전이었다. 

"조금이라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낫다." 그 마음으로 퇴근 후 지하철 계단을 내달렸다. 그렇게 도착하면 한 사람, 운 좋으면 두 사람과 대련할 정도의 짬이 생겼다. 급하게 호구를 쓰고 한 두 사람과 대련. 그 후에는 도장 뒷편에서 혼자 기본동작을 하는 나날이었다. 운동량은 늘 부족했다. 다행히 운동 시작 시간이 8시 이후인 도장으로 옮기면서 운동량에 대한 갈증은 줄었다. 도장에 일찍 도착한다 해도 피곤한 탓에 자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들었다. 도장 문 앞에서 피로감에 주춤거리기 일쑤. "자고 쉽다.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도장 마루바닥에 눕고 싶은 상상도 해봤다. “그래도 해야지”. 조금 일찍 도착하는 날이면 탈의실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수련을 시작했다. 

검도장에 가는 시간을 확보하기가 나 자신에게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 선수생활을 할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하는 만큼 실력이 쑥쑥 늘 정도로 운동신경이 딱히 좋지도 않은걸. 이런 내가 왜 그렇게 운동에 빠지지 않으려 했는지, 어떻게든 좀더 실력이 나아지고 싶어서 수련하려 했는지 나도 잘 모른다. 검도대회에서 만난 한 아마추어 선수의 말이 생각난다. “이게(검도시합) 뭐라고 이렇게 떨릴까요. 돈 되는 일도 아닌데.” 분명 나는 검도가 좋다. 이 감정은 잘 생긴 사람을 보고 금방 사랑에 빠지는 것과 다르다. 온갖 다툼 끝에 끈끈한 정이 생긴 느낌이랄까. 

싫은 기억과 좋은 기억이 함께 쌓이면 쉽게 잊힐 수 없는 정이 생기나보다. 검도를 하며 만난 사람들과 싸우기도 했고, 실력이 늘지 않아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 등을 거치며 10년을 넘겼다. 이제 검도는 자연스레 녹아든 삶의 일부다. 온몸에 땀이 쭉 빠질만큼 힘든 이 운동을 우여곡절 끝에 좋아하게 됐으니까. 하루의 마무리를 되도록이면 좋아하는 활동을 하며 마무리하고 싶다. 

10년 넘게 이 운동을 해온 만큼, 검도 도장이야말로 땀과 애정을 정직하게 쏟을 수 있는 장소다. 나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게 땀을 쏟는 즐거움이 있다. 그 즐거움을 기꺼이 몸으로 누리고 싶다. 하루의 끝을 그런 충실감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덧: 나중에 알고 보니 체력이 충분한 줄 알았던 도장의 남자 선배들도 일하다 오면 몸이 힘들어 종종 주저앉으시더라.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만성피로는 남녀의 체력 차와 상관 없나보다.

SERIES

검도하는 여자

더 많은 타래 만나기

보장 중에 보장, 내 자리 보장!

이운

#방송 #여성
나는 땡땡이다. 아마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듣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 팟캐스트는 쓰잘데기 없는 고민에 시간을 올인하고 있는 5천만 결정장애 국민들을 위한 해결 상담소로, 철저하게 비밀을 보장하여 해결해 준다는 취지하에 만들어진 방송이다. 그리고 ‘땡땡이’는 이 취지에 맞게, 사연자의 익명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하다 만들어진 애칭이다. 비밀보장 73회에서..

병원이 다녀왔다

..

낙타

정신병원과 한의원에 다녀왔다 이번엔 둘다 끝까지 치료하고 싶다.....

오늘도 결국 살아냈다 1

매일매일 사라지고 싶은 사람의 기록

차오름

#심리 #우울
하필 이 시기에 고3으로 태어난 나는 , 우울증과 공황발작으로 많이 불안해진 나는, 대견하게도 오늘 하루도 잘 버텨냈다. 우울증과 공황발작이 시작된 건 중3. 하지만 부모는 어떤 말을 해도 정신과는 데려가주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20살이 되고 알바를 하면 첫 번째로 갈 장소를 정신과로 정한 이유이다. 부디 그때가 되면 우울증이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가지면서. 부모는 우울증은 내가 의지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비건 페미 K-장녀 #1 가족의 생일

가족들과 외식은 다이나믹해지곤 한다

깨비짱나

#페미니즘 #비건
다음주 호적메이트의 생일이라고 이번주 일요일(오늘) 가족 외식을 하자는 말을 듣자마자, 다양한 스트레스의 요인들이 물밀듯이 내 머리속을 장악했지만 너무 상냥하고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나에게 일요일에 시간이 되겠냐고 오랜만에 외식 하자고 너도 먹을 거 있는 데로 가자고 묻는 말에 못이겨 흔쾌히 알겠다고 해버린 지난주의 나를 불러다가 파이트 떠서 흠씬 패버리고 싶은 주말이다. 이 시국에 외식하러 가자는 모부도 이해 안가지..

[제목없음] 일곱 번째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제목없음

#여성서사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참으로 어렵다. 나같은 경우에는 끊임없이 되물어봤다. 그리고 의심했다. '저 사람은 만나도 괜찮은걸까?' '내가 착각하고 있는건 아닐까?' 처음에는 설레기도 하고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연 내가 누군가를 만나도 괜찮은걸까? 순간의 감정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에는 좋으니까로 결론이 난다. 좋은걸 어떡하나? 만나야..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3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상속
장례도 끝났고 삼오제(삼우제)도 끝났다. 49재의 첫 칠일 오전, 나는 일하던 도중 이제 식을 시작한다는 가족의 연락을 받고 창가로 나와 하늘을 보며 기도했다. 부디 엄마의 영혼이 존재해서 젊고 건강할 때의 편안함을 만끽하며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을 실컷 다니고 있거나, 혹은 그 생명의 끝을 끝으로 영원히 안식에 들어가 모든 것을 잊었기를. 삼오제까지 끝나면 문상 와 준 분들께 문자나 전화로 감사 인사를 해도 좋..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