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내가 몸치라는 사실을. 검도 초보 시절부터 최근 몇년 전까지 내가 대련하는 모습을 본 이들의 반응은 한결 같다. "로봇이냐? 뻣뻣해!" 하지만 이런 나도 부드러운 동작으로 상황에 맞는 공격을 해낼 때가 있다. 오래 수련하면서 뻣뻣한 몸의 감각을 어느 정도 활성화시켰나보다.
지난 토요일에 진행된 주말 수련. 내 몸이 자연스럽게 상황에 맞는 공격을 ‘해버렸다’. 다시 생각해도 해버렸다라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상대와 정면 머리치기 공격을 동시에 시도했고 내 칼이 먼저 상대방의 머리에 닿았다. 공격하려고 몸이 공중에 뜬 찰나, 상대의 죽도로 살짝 밀쳐낸 다음 머리치기 공격을 시도. 내 죽도가 상대의 정중앙 머리를 정확히 쳤다.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나보다 힘 쎄고 빠른 사람의 죽도를 부드럽게 제꼈다. 비껴낼 생각을 미리 안 했는데 순간의 반응으로 상대 죽도를 젖혀 중심을 확보하다니. 이걸 해낸 내 몸이 신기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검도의 공격기술 중 하나인 ‘제치는 머리치기(일본어로는 払い面: 하라이 멘)’ 기술이라고. 습관적으로 앞뒤로 왔다갔다 하는 상대가 공격하러 앞으로 나오는 찰나에 쓰기 좋은 기술이라고 한다. 이 글을 보는 검도 숙련자가 있다면 나중에 한 번 시도해보셔라. 평소에 연습하던 기술이 나온다거나, 혹은 연습하진 않았더라도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공격이 몸으로 표현되는 순간. 이럴 때는 뇌가 머리보다 몸에 있는 것 같다.
연습하던 동작이 원하는 순간에 딱 나오면 좋겠지만 마음처럼 되진 않는다. 대신 전혀 생각지 못 할 때 연습한 동작이 나오면 참 기쁘다. 역시 꾸준히 반복하면 몸이 반응해서 타돌한다. 그렇게 만들어내는 움직임은, 스스로 해낸 이에게는 경이롭기까지 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확실히 격투기는 상대와 마주하는 과정에서 내면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공격기술을 해냈을 때의 쾌감이 강하다. 두려움을 지닌 나를 넘어서고 나아가 나를 이기는 것. 검도라는 격투기를 통해 그 기분을 순간에 압축해서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