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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혼자 살기: 헤프거나 이기적이거나

김평범

나는 혼자 서울에 사는 20대 여성이다. 별 특이한 일은 아니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거주 20~30대 여성의 44.4% 는 보증금·월세 , 34.6% 는 전세 로 집을 점유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내가 자취를 시작한 것은 대학생 때부터다. 대학에 다닐 때는 친동생과 함께 지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혼자 살기 시작했다. 학생인 동생과는 서로 생활 패턴도 엇나간데다 기자 초년생으로의 생활이 많이 고되다보니 걸핏하면 동생에게 화를 냈고, 잦은 싸움이 반복되자 서로 견디지 못하고 각자의 생활을 꾸렸다. 그러면서 처음 혼자 얻은 집이 지금의 '월세가 아주 기막히게 싼 자취방' 이다. “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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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12. '여아선호'라는 판타지

Ah

정바당이 남자아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나를 엄습했던 막막함과 두려움에 대해서는 이미 2화에서 언급한 바가 있는데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전부는 아니었지 싶다. 배 속 아이가 아들이라는 걸 알렸을 때 사람들이 보였던 반응들도 한 몫 했다. 대부분 짧은 탄식이거나 위로였다. 어떡하냐고, 힘내라고, 괜찮다고, 첫째가 아들이고 둘째가 딸이면 이백점짜리라고. 그런 말들이 나를 더 막막하고 자신없게 만들었다. 막상 아이를 낳고 나서도 비슷한 에피소드들이 추가됐다.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가서, 병원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서, 수리센터에 핸드폰을 고치러 가서 아이 얘길 하다보면 대부분 개월 수와 함께 성별을 제일 먼저 물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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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하기 좋은 날 프롤로그. 30대, 여성, 비혼, 소속 없음

윤이나

평소와 같은 날은 아니었다. 문제의 전화가 걸려온 날, 나는 당시 살고 있던 망원동에서 한참 떨어진 강남의 한 아이엘츠 전문 어학원에서 오후반 수업을 듣고 있었다. 평소라면 일을 시작하거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시간에, 팔자에 없는 영어 논술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겨울에 아무 대책없이 일단 한 번 지원했던 영국의 대학원 몇 군데에서 봄과 함께 합격 연락을 전해왔고, 가을 입학을 위해서는 여름까지 영어 시험 성적을 제출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글쓰기라는 기술이라고 하기도 모호한 기술을 가지고 지금까지 잘도 버텨냈다 싶었던 즈음, 여기,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더는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작정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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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하기 좋은 날 1. 유니콘은 없다

윤이나

스스로를 비혼이라고 지칭한 것은 비혼이라는 단어를 안 직후부터다. 비혼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접하고, Miss 와 Mrs 의 세상에서 Ms 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성인이 되고나서였다. 이전까지는 미혼과 기혼, 결혼이라는 기준에 따른 두가지 기준만 존재하는 세상에 살았다. 이런 사회에서는 결혼은 당연히 언젠가는 하는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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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생활일지 1. 혈연보다 우연

백희원

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하면 돌아오는 사람들의 반응은 선선한 편이다. 젊은 여성 둘의 생활이라는 게 아기자기한 인상을 주는 모양이다. 어쩐지 귀여워하는 느낌이랄까. 여기에 함께 산 지 5년이 넘었다고 하면 조금 놀란다. 싸우지 않느냐는 말 다음으로 많이 듣는 질문은 “친구는 결혼 안한대?” 다. 줄곧 “글쎄요. 저희 둘 다 아직은 별 생각이 없어서요” 로 가볍게 일관해 왔지만 어느 순간 질문이 울컥 올라왔다. 왜 우리의 현재를 건너뛰고 미래를 물어보지? 지금 나와 친구가 꾸려나가고 있는 생활은 결혼 전의 일시적인 소꿉장난에 불과해보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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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하기 좋은날 2. 엄마 딸은 결혼을 안 해

윤이나

오랜만에 나름 다정한 모녀의 산책길이었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깬 것은 아마도 친척이나 타인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또 다시 엄마 입에서 흘러나온 ‘네가 결혼을 하면’이라는 가정의 문장을 듣고서야, 이때가 그때라는 것을 알았다. 사랑하는 어머니, 딸은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랍니다. 하지만 정말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엄마는 내가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아무렇지 않게 ‘결혼 뭐, 하면 하고 아니면 말고’의 태도를 보여준 것이 문제였다. 그러니 나름대로 비혼을 선언해봤자 ‘얘가 또 이러네’ 정도의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SNS에는 비혼을 선언한 딸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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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하기 좋은 날 3. 돈. 좌표파악, 아니 주제파악.

윤이나

최근 가장 인상적인 제목의 책은 바로 <혼자 사는데 돈이라도 있어야지>다. 책 제목을 보는데 갑자기 커진 눈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만화 속 여성 캐릭터가 되어 외쳐야 할 것만 같았다. “이건 사야 해!” 따뜻함이 흘러 넘치는 위로의 말들이나, 자신을 먼저 돌보라는 독려에는 늘 시큰둥했던 내가 유일하게 반응한 제목이다. 그렇다. 혼자 산다면, 다른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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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생활일지 2. 함께하면 더 나은 자립

백희원

나는 독립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이 자유를 획득하면 불안이라는 값비싼 청구서가 끝없이 날아온다. 지난해 1인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는 응답의 비중이 82.5%로 가장 많이 나온 집단은 30대 초반 여성이었다.(2017 한국 1인가구 보고서, KB금융경영연구소) 이 설문에서는 모든 세대에 걸쳐 여성 1인가구의 만족도가 남성보다 높게 나왔지만, 또 한 편에는 서울에 사는 2-30대 1인가구 여성의 절반이 주거비와 치안으로 인한 불안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에 대한 보도기사가 있다.(서울여성가족재단, 2016) 통계에 드러나는 여성 1인가구의 이 양면적인 모습에 나는 완전히 공감할 수 있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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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하기 좋은 날 11. 결혼 없이 어른 되기

윤이나

얼마 전에 이사했다. 해외에 다녀온 뒤 잠시 부모님 댁에 머물다가 여름은 작가를 위한 창작실에서 보냈고, 이제야 내방을 찾아 나선 것이다. 친구가 지인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지인이 계약보다 빨리 나가게 되면서 비게 된 방에 살게 됐다. 이전 이사들이 그러했듯이 책상과 행거 같은 필수 가구는 이어받았고, 다른 가구들은 거의 늘리지 않았다. 짐도 마찬가지로 이사 용달을 부르지 않고 몇 개의 옷가지와 생활용품들을 직접 옮겼다. 내가 갖게 된 또 한 번의 임시의 방은 이전의 방들이 그러했듯이 가구나 물건이 많이 없고, 단출하다. 언젠가의 다짐처럼 캐리어 하나에 꾸려지는 삶을 살 만큼의 미니멀리스트는 되지 못했지만, 언제나 겨우 이만큼만 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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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고발 12. 결혼 없이도 가져야 하는 것

사월날씨

컴퓨터 수리점 방문을 몇주째 미루다 온 참이었다. 기계를 잘 모르는 젊은 여자가 무시당하거나 바가지 쓰기에 딱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쪽에서 어떤 설명을 하든 나는 무얼 물어야 할지 모를 터였다. 내 대기번호가 불리고, 접수대에 다가가 백팩을 열었다. 백팩이 날 더 어려보이게 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 시선 때문에 실용성과 편안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고장난 컴퓨터 하나 맡기는 데 참 신경쓸 게 많은 삶이다. “전원이 안 들어오는데요,”라 말하며 컴퓨터를 꺼내는 사이, 아니나 다를까. 그래서 뭐가 안 되는데요? 중년남성의 퉁명스럽고 고압적인 말투가 날아왔다. 뭐가 안 되긴, 전원이 안 된다고 방금 말했고, 설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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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생활일지 4. 생활동반자법이 도입될 때 사라져야 할 것들

백희원

결혼을 삶의 선택지에서 제거하면서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지워버린 또 하나의 선택지가 있었다. 임신과 출산, 양육. 국가에서 아무리 출산력 지표를 만들고 나를 가임기의 자궁으로 보아도, 출산과 육아는 내게 완전히 비현실 이다. 결혼의 기미도 없는 딸에게 갑자기 손주를 보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치는 아빠에게 화도 안났던 것은 너무 터무니 없는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손주라니. 그게 무슨 소리람. 코로 웃어 넘기는 내 옆에서 아기라면 껌벅죽는 엄마도 손사래를 쳤다. 나는 서울에서 친구와 둘이 살고 있는 30대 초반의 여성이다. 월급을 받아서 월세를 낸다. 내가 나를 먹이고 입히고 기르는 이 일인분의 경제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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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생활일지 3. 아파트에는 왜 꼭 안방이 있을까

백희원

문제는 집이다. 얼마 전에 지역에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여성 비혼공동체 멤버분의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가장 답을 구하고 싶었던 것은 솔직히 주거안정 문제였다. ‘집은 어떻게 하셨나요?!’ 내 마음의 소리가 들렸는지 강연 중에 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자초지종을 들으며 나는 ‘역시나’, ‘이럴 수가’, ‘부럽다’가 섞인 복잡 미묘한 탄식을 조그맣게 내뱉고 말았다. 살고 있던 지역에 거주기간 50년이 보장되는 반영구 공공임대주택이 생겼고 비혼 멤버 중 한 사람이 신청해서 입주했다. 직접 들어가보니 다른 멤버들도 입주할 수 있을 것 같아 추천한 결과 한 명씩 같은 아파트단지에 들어와 모두 가까이 모여 살 수 있게 되었다.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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