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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동반자법

가정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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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생활일지 7. 생활동반자법은 시대정신

백희원

때로 직관이 먼저 일을 한다. 슬슬 2018년이라는 말이 입에 붙기 시작하던 늦겨울에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적었다. 그리고 한 달 뒤에는 그 아래 이런 문장을 덧붙였다. 이 두 문장으로 인해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에서 여성 동거생활을 하고 있는 멤버를 중심으로 다섯 명이 모여 ‘보스턴피플’팀을 만들었다. 보스턴피플이라는 이름은 회원 김주온이 19세기 미국에서 함께 사는 여성들의 관계를 “보스턴결혼”이라고 불렀던 데에서 따와 지었다. 막상 주온은 빼고 네 사람이 만나 봄에 맛있는 식사를 하며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그 전에 긴 대화를 나눠본 적 없는 사이였...

동반생활일지 6. 맞춤형 가족의 시대

백희원

아주 가까이에서 여자친구의 눈을 들여다봤던 적이 있다. 해질 녘의 눈부신 햇빛 때문에 한층 더 연해보였던 갈색 눈동자는 언제나 또렷한 심상으로 떠오른다. 나는 작년까지 그 부드러운 질감의 연애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헤어질 때 비겁하게 굴었던 스스로를 외면하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동성과의 연애 경험이 있다는 걸 숨기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다. 벨기에였던가. 나중에 동성결혼이 합법인 나라에 가서 살자고 농담처럼 이야기했을 때 마음 속에 떠올랐던 당혹감도 생각난다. 이별을 생각하진 않았지만 ‘우리 둘 다 좀 먼 미래엔 남자를 만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희미하게 스쳤던 것 같다. 여성 둘로 이루어진 가족이라는 게 단지...

결혼고발 12. 결혼 없이도 가져야 하는 것

사월날씨

컴퓨터 수리점 방문을 몇주째 미루다 온 참이었다. 기계를 잘 모르는 젊은 여자가 무시당하거나 바가지 쓰기에 딱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쪽에서 어떤 설명을 하든 나는 무얼 물어야 할지 모를 터였다. 내 대기번호가 불리고, 접수대에 다가가 백팩을 열었다. 백팩이 날 더 어려보이게 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 시선 때문에 실용성과 편안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고장난 컴퓨터 하나 맡기는 데 참 신경쓸 게 많은 삶이다. “전원이 안 들어오는데요,”라 말하며 컴퓨터를 꺼내는 사이, 아니나 다를까. 그래서 뭐가 안 되는데요? 중년남성의 퉁명스럽고 고압적인 말투가 날아왔다. 뭐가 안 되긴, 전원이 안 된다고 방금 말했고, 설명을...

비혼하기 좋은 날 11. 결혼 없이 어른 되기

윤이나

얼마 전에 이사했다. 해외에 다녀온 뒤 잠시 부모님 댁에 머물다가 여름은 작가를 위한 창작실에서 보냈고, 이제야 내방을 찾아 나선 것이다. 친구가 지인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지인이 계약보다 빨리 나가게 되면서 비게 된 방에 살게 됐다. 이전 이사들이 그러했듯이 책상과 행거 같은 필수 가구는 이어받았고, 다른 가구들은 거의 늘리지 않았다. 짐도 마찬가지로 이사 용달을 부르지 않고 몇 개의 옷가지와 생활용품들을 직접 옮겼다. 내가 갖게 된 또 한 번의 임시의 방은 이전의 방들이 그러했듯이 가구나 물건이 많이 없고, 단출하다. 언젠가의 다짐처럼 캐리어 하나에 꾸려지는 삶을 살 만큼의 미니멀리스트는 되지 못했지만, 언제나 겨우 이만큼만 짊어...

동반생활일지 5. 나다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백희원

나이에 호들갑 떠는 게 늘 싫었다. 뭐하나 내 뜻대로 할 수 없던 십대 시절에 “그때가 좋을 때다” 소리를 듣는 것도, 겨우 스물 한 살이 된 동갑내기들이 “우리는 헌내기야”라며 자조적인 코드를 만들어 공유하는 것도, 함께 활동해 온 동료를 ‘친구’라고 소개하면 “아 둘이 동갑이야?”라는 질문이 돌아오는 것도 늘 어이 없었다. 스물 아홉살의 겨울, 아빠는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흥얼거리며 놀리듯 서른 살이 되는 소회를 물었지만 내 안에 그런 것이 있을리가....

동반생활일지 4. 생활동반자법이 도입될 때 사라져야 할 것들

백희원

결혼을 삶의 선택지에서 제거하면서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지워버린 또 하나의 선택지가 있었다. 임신과 출산, 양육. 국가에서 아무리 출산력 지표를 만들고 나를 가임기의 자궁으로 보아도, 출산과 육아는 내게 완전히 비현실 이다. 결혼의 기미도 없는 딸에게 갑자기 손주를 보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치는 아빠에게 화도 안났던 것은 너무 터무니 없는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손주라니. 그게 무슨 소리람. 코로 웃어 넘기는 내 옆에서 아기라면 껌벅죽는 엄마도 손사래를 쳤다. 나는 서울에서 친구와 둘이 살고 있는 30대 초반의 여성이다. 월급을 받아서 월세를 낸다. 내가 나를 먹이고 입히고 기르는 이 일인분의 경제에 아...

동반생활일지 3. 아파트에는 왜 꼭 안방이 있을까

백희원

문제는 집이다. 얼마 전에 지역에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여성 비혼공동체 멤버분의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가장 답을 구하고 싶었던 것은 솔직히 주거안정 문제였다. ‘집은 어떻게 하셨나요?!’ 내 마음의 소리가 들렸는지 강연 중에 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자초지종을 들으며 나는 ‘역시나’, ‘이럴 수가’, ‘부럽다’가 섞인 복잡 미묘한 탄식을 조그맣게 내뱉고 말았다. 살고 있던 지역에 거주기간 50년이 보장되는 반영구 공공임대주택이 생겼고 비혼 멤버 중 한 사람이 신청해서 입주했다. 직접 들어가보니 다른 멤버들도 입주할 수 있을 것 같아 추천한 결과 한 명씩 같은 아파트단지에 들어와 모두 가까이 모여 살 수 있게 되었다. 월...

동반생활일지 2. 함께하면 더 나은 자립

백희원

나는 독립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이 자유를 획득하면 불안이라는 값비싼 청구서가 끝없이 날아온다. 지난해 1인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는 응답의 비중이 82.5%로 가장 많이 나온 집단은 30대 초반 여성이었다.(2017 한국 1인가구 보고서, KB금융경영연구소) 이 설문에서는 모든 세대에 걸쳐 여성 1인가구의 만족도가 남성보다 높게 나왔지만, 또 한 편에는 서울에 사는 2-30대 1인가구 여성의 절반이 주거비와 치안으로 인한 불안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에 대한 보도기사가 있다.(서울여성가족재단, 2016) 통계에 드러나는 여성 1인가구의 이 양면적인 모습에 나는 완전히 공감할 수 있다. 내...

비혼하기 좋은 날 4. 어느 날 가계부가 물었다

윤이나

경고! 하루 카페인 권장량을 아득히 넘어섰어요! 경고라니, 무슨 기상특보라도 뜬 줄 알았다. 경고라는 사실을 한 번 더 강조하듯 빨간색으로 표시된 메시지를 누르자, ‘비싼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어요’라는 문구 위로 테이크 아웃 커피 컵이 쪼르륵 늘어서 있었다. 오늘 커피를 두 잔 마셨고 프랜차이즈 카페 전용 카드를 충전했으며, 지인에게 커피 기프티콘을 보냈다는 이미 알고 있는 소비의 나열 끝에 가계부가 해 준 조언은 이것이었다. 포기할 수 없다면, 할인이라도 받아보는 건 어떨까요? 돈을 좀 체계적으로 관리해보자는 결심과 함께 5년 동안 손수 입력하던 가계부 대신 계좌, 신용카드와 자동 연동이 되는 가계부 앱을 사용하기...

비혼하기 좋은 날 3. 돈. 좌표파악, 아니 주제파악.

윤이나

최근 가장 인상적인 제목의 책은 바로 <혼자 사는데 돈이라도 있어야지>다. 책 제목을 보는데 갑자기 커진 눈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만화 속 여성 캐릭터가 되어 외쳐야 할 것만 같았다. “이건 사야 해!” 따뜻함이 흘러 넘치는 위로의 말들이나, 자신을 먼저 돌보라는 독려에는 늘 시큰둥했던 내가 유일하게 반응한 제목이다. 그렇다. 혼자 산다면, 다른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 한다....

비혼하기 좋은날 2. 엄마 딸은 결혼을 안 해

윤이나

오랜만에 나름 다정한 모녀의 산책길이었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깬 것은 아마도 친척이나 타인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또 다시 엄마 입에서 흘러나온 ‘네가 결혼을 하면’이라는 가정의 문장을 듣고서야, 이때가 그때라는 것을 알았다. 사랑하는 어머니, 딸은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랍니다. 하지만 정말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엄마는 내가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아무렇지 않게 ‘결혼 뭐, 하면 하고 아니면 말고’의 태도를 보여준 것이 문제였다. 그러니 나름대로 비혼을 선언해봤자 ‘얘가 또 이러네’ 정도의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SNS에는 비혼을 선언한 딸에게 “...

비혼하기 좋은 날 1. 유니콘은 없다

윤이나

스스로를 비혼이라고 지칭한 것은 비혼이라는 단어를 안 직후부터다. 비혼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접하고, Miss 와 Mrs 의 세상에서 Ms 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성인이 되고나서였다. 이전까지는 미혼과 기혼, 결혼이라는 기준에 따른 두가지 기준만 존재하는 세상에 살았다. 이런 사회에서는 결혼은 당연히 언젠가는 하는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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