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에서는 페미니스트로서 학계에서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구구절절 토로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들 한 명 한 명이 ‘수퍼우먼’이 되는 일이 아니라 작당 모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작당 모의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첫째로 여성 한 명 한 명이 겪은 경험이 단지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그 뒤에 여성 전체라는 집단의 경험이 놓여있다는 것을 눈치채야 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나는 ‘예외’일 것이라는 생각, ‘열심히 해서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너머야 공동의 연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성은 스스로에게나 다른 여성에게나 들이미는 도덕성의 기준이 높지 않나. 어렵게 형성한 연대 역시 크고...
<핀치>구독자 여러분들, 지난 달 여러 행성들의 무자비한(?) 역행 속에서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우여곡절 카르마를 맞으며 지내고 있습니다(TMI). 오늘은 <핀치>에서 전해드리는 마지막 별자리운세가 되겠네요. <핀치>와 구독자 여러분들 덕분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감사한 경험을 했습니다. 부디 저의 운세를 읽으셨던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과 위로가 되었길 바라요. 저 역시도 구독자 여러분들 덕분에 많은 위로와 힘을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간 다른 곳에서 또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6월 18일 수성의 역행이 시작됩니다. 이는 7월 12일 순행저...
어떤 분야이건 안 그러겠느냐마는, 학계에서 여성으로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더 어려운 일이 있으니 바로 학계에서 ‘페미니스트로서’ 살아남는 일이다. 거기에 더해 만약 당신이 속한 분야가 페미니즘에 무척 적대적이라면? 페미니스트임을 커밍아웃하는 순간 지옥문이 열릴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 내 머릿속에서 페미니스트를 환영하는 학문 분야는 여성학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막막한 상황. 이번 글과 다음 글에서는 내 경험에 빗대어 학계에서 페미니스트 연구자가 겪는 어려움과 이러한 어려움을 조금씩 넘어가기 위해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여성학 외에 학문 분야에서 페미니즘에 영향을 받은 연구, 혹은 여성을 주...
안녕하세요, <핀치> 대표 정세윤입니다. <핀치>는 6월 25일부로 서비스를 종료합니다. <핀치>는 더 많은 여성의 말, 더 많은 여성의 삶을 위해 2016년 10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누구나 다시는 그 전과 같은 삶을 살지 못하리라는 예감이 드는 인생의 사건이 있습니다. 제게는 그게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었습니다. 갑갑했고, 화가 났고, 슬펐습니다. 막막하기도 했고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맞닥뜨린 질문에 수많은, 훌륭한 여자들이 자신만의 답을 찾아 나아갔습니다. 제게는 그것이 <핀치>였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여자의 말이 여자에게 닿을 수 있도록...
지난 연재에서는 최초의 프로그래머가 여성이고, 이들이 컴퓨터과학 발달의 역사에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글에서 다룰 이야기는, 여성의 영역이었던 ‘코더(coder·컴퓨터 프로그래머의 다른 말)’의 자리가 어떻게 남성의 자리로 대체되고, 긱geek 혹은 너드nerd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지다. 1946년 최초의 대형 전자식 컴퓨터인 에니악(ENIAC·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alculator)은 현대 컴퓨터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에니악 프로젝트에서 전자식 컴퓨터 시스템을 구상하고 디자인하는 일은 ‘설계자(planner)’의 일, 설계자의 아이디어와 문제 해결법을 컴...
따뜻한 봄도 이제 뜨거운 여름으로 바뀌어가는 문턱에 들어섰네요. 전염병과 사회적 소란으로 계절을 온전히 만끽할 수는 없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마냥 아쉬웠다기 보다 사회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시간이자 대가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회 구성원인 우리도 틀림없이 많은 성장을 했으리라 믿어요. 본격적인 운세 리딩에 앞서, 4월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5월부터는 신월과 만월의 메시지는 없습니다. 하지만 역행 소식은 계속 전해드린다고 했지요? 5월에는 무려 세 행성의 역행이 시작된답니다. 시작 해 볼까요? 일러스트 이민...
폴리아모리스트 채니와 대화하던 중, “세 분은 폴리아모리 모범 사례잖아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은 우리는 경악했고, 격하게 거부했으며, 모범이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밤늦게까지 머리를 싸맸다. 그날 밤, 우리는 나대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N개의 폴리아모리 관계가 존재하는데, ‘감히’ 대표성을 갖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종류의 질문도 자주 듣는다. “저는 진짜 폴리아모리스트가 맞을까요?” 그럴 때마다 나와 애인들은 선을 그으며 말한다. “저희가 폴리아모리 감별사는 아니어서요…….”...
지난 연재에서는 ‘여성의 자리를 빼앗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출산의 영역에서 여성 산파가 남성 산부인과 의사에게 밀려난 역사를 다루었다. 이번 글에서는 컴퓨터공학 분야에서 여성이 자신의 자리와 지위를 잃은 역사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머릿속에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한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는 남자인가, 아니면 여자인가? 그는 사회성이 좋은가, 아니면 썩 좋지 않은가? 그는 세련되었는가, 아니면 촌스러운가? 또 그가 남자라면 그는 여성을 어떻게 대하는가? 미국 CBS의 시트콤 드라마 ‘빅뱅 이론’의 쉘든처럼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곧잘 ‘너드nerd’나 ‘긱geek’의 이미지를 갖는다(물론 빅뱅 이론의 쉘든은 프로그래머...
승은아, 애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네가 한 명을 선택해야 하지 않겠니? 엄마, 아빠와 옥수수를 먹으며 거실에 둘러앉은 주말 오후, 뜬금없이 아빠가 말을 꺼냈다. 나는 웃음을 참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럼 누굴 택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아빠는 “음, 나는 지민이도 좋고... 우주도 좋아... 애들이 참 다 괜찮다.” 엄마는 “나도 그런데?”라고 답했고 나도 그렇다고 답했다. 내 말을 듣고 아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그렇게 똑똑하고 괜찮은 애들이 왜 너를 좋아해? 내 딸이긴 하지만 좀 이해가 안 되긴 한다.” 옆에 있던 엄마는 한술 더 뜨면서 자기도 이해가 안 된다며 말한다. “너 긴장해. 집에서 화장도 좀 하고.”...
첫 직장은 과학 기사를 생산하는 언론사였다.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가지였지만, 회사 내 여성 비율이 높다는 점이 한몫했다. 대표도 여자였고, 팀장도 여자였다. 좋은 신호라고 생각했다. 내 얘기를 들은 한 회사 선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게 과연 좋은 징조일까…… 과연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입사 후 몇 개월이 지난 뒤 알게 됐다. 이 회사 역시 남자 직원을 선호하고 키워주려 한다는 것, 같이 입사한 남자 동기는 군대를 다녀왔다는 이유로 나보다 연봉이 높다는 것. 또한, 이 회사의 여성 비율이 높은 것은 여성이 다니기 좋은 회사여서가 아니라 이 업계가 노동에 대한 보상이 적은 곳이어서 일 수 있다는...
폴리아모리랑 평등이 대체 무슨 상관이죠? :평등하지 않으면 폴리아모리에 필요한 상호 합의와 비독점성이 가능한가요? 폴리아모리랑 페미니즘이 무슨 상관이에요. :페미니즘 없는 폴리아모리는 일부다처제와 얼마나 다를 수 있나요? 페미니즘은 역차별이잖아요. 제 후배는 여자라서 혜택 받는 게 많다고 오히려 좋아하던데요. : 네? 역차별이요? 그리고 자꾸 ‘여자, 남자’를 언급하시는데, 지금 이 카톡방에도 다양한 성별이 존재한다는 걸 지우지 말아주세요. 내 여자친구는 여자여자하다고 하면 좋아하던데. 이제 그런 말도 하지 말아야겠네. :그건 두 분이 알아서 하면 될 문제고요. 굳이 카톡방에 올릴 필요가 있나요...
회상해본다. 어려서 나는 분명 글쓰기보다 만들기를 더 좋아했다. 색종이와 빈 박스, 폐건전지, 휴지심 같은 것을 오물쪼물 오리고 붙여서 바닷속 상상의 세계를 만들었다. 집에 혼자 남으면 은밀히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욕조 물속에서 전화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그때는 휴대폰 말고 가정용 무선 전화기가 있었다) 초에 불을 켠 채로 냉동실에 넣으면 어떻게 될까? 풍선껌을 잔뜩 씹고 뱉어서 녹이면 어떻게 될까? 돋보기로 검은 비닐봉지를 태워보기도 하고, 단단한 암석이 나올 때까지 텃밭을 계속해서 파보기도 하고, 개구리를 잡아다가 뒷다리를 실로 묶어 둔 다음 날 개미 떼가 그의 몸을 온통 뒤덮은 것을 보고 경악하기도 했다. 인형 놀이도...
사와 민을 만났다. 두 사람은 내 대학 동기이자 20대를 함께 보낸 오랜 동료다. 춘천에서 강연이 잡혀서 오랜만에 연락을 했는데, 마침 시간이 맞아서 약속을 잡았다. 몇 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스무 살에 처음 만난 그날처럼 반짝반짝 웃으며 나를 반겼다. “오~ 퐁~ 성공했어~” 역시 놀림도 빠지지 않았다. 나는 두 사람에게 뒤에 앉지 말고 맨 앞자리에 앉으라고 보챘고, 두 사람은 알았으니 절대 발표 같은 건 시키지 말라고 당부했다. 두 시간의 강연이 이어지는 동안 사와 민은 피곤한 내색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날 강연 주제는 상상력이었다.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타인의 세계를 상상하기, 내 경계를 넘어서 어떤 모습으로든 살아...
구독자 여러분들, 몸 건강히 잘 지내고 계셨나요? 전염병의 위험과 소란스러운 사회상황, 분노가 치미는 사건들 속에서도 일상을 유지하고 서로 지지하고 연대하며 잘 버티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낼 수 있는 한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모두의 목소리는 분명 견고하게 서로를 지탱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치는 분들은 잠시 쉬어도 좋아요. 쉬는 것이 곧 포기는 아니니까요. 지쳐 무너지지 않을 정비의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어찌 되었든,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더 나아가 목소리를 내는 모든 여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우리, 무너지지 말아요. 혼자가 아니니 두...
승은 저희가 한국일보에서 폴리아모리에 관한 인터뷰를 했잖아요. 기사 제목은 <세 명이 하는 연애… “독점 아닌 사랑이 가능할까요?”>였고요. 한국일보 메인에도 뜨고, 네이버 포털 메인에도 저희 사진과 인터뷰가 떴죠. 그런데 하루만에 1,000개 넘는 댓글이 달렸어요. 그것도 대부분 악플……. (웃음) 오늘은 우리가 기사에 달린 악플을 하나하나 까먹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추천 수가 많은 댓글부터 언급하고 싶은 악플에 대해서요. 물론 언급할 필요도 없는 성희롱은 제외했어요.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우리 심호흡해요. 후-하-후-하- 자, 이제 읽어봅시다! 1. 뭔 개소리야. 걍 소라넷이잖아. ㅋㅋㅋㅋ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