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연말 분위기를 느낄 새도 없었네요
<내 가슴 속에서 지구는 돌고> 그녀가 일어났다 내 의자를 넘어뜨렸다. 나는 온종일 넘어진 의자를 맴돌았다 일어선 그녀는 내 책장에 꽂힌 책들의 제목을 큰 소리로 읽고 있었다 나는 온종일 그녀를 바라보며 맴돌고 있었다 (햇볕이 따가운 5월의 피렌체 공항 내 가슴 속에서 지구는 돌고 흰 벽에 기대어 선 그녀의 목걸이는 빛나고 또 다른 사랑을 위하여 그녀의 목걸이는 이륙을 준비한다 피레네 산맥을 자동차로 넘어온 나 또한 다음 차례로 지상을 떠나지만, 묻지 않는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의자를 넘어뜨렸다. 나는 온종일 넘어진 의자를 맴돌았다 일어선 그녀는 내 책장에 꽂힌 책들의 제목을 큰 소리로 읽고 있었다 나는 맴도는 그녀를 바라보며 온종일 맴돌고 있었다 내 가슴 속에서 지구는 돌고 구름은 내게 내 사랑의 이름을 묻지 않는다 - 박상순, <내 가슴 속에서 지구는 돌고>, 『Love Adagio』, 민음사, 2004, 32-33쪽. <그녀가 내 의자를 넘어뜨렸다.> 2017년의 다이어리 첫 번째 장에는 한 해의 다짐이 호기롭게 적혀 있다. “1. 휘둘리지 말자. 2. 당황해도 침착하게!” 달이 넘어갈 때마다, 혹시나 잊을까 하여 1월의 페이지로 넘어가 다짐들을 가슴 속에 새기곤 했다. 그러나 올 한 해는 기록할 만큼 타인에 휘둘렸고 마음 운영에 실...
힘내라. 니 자식은 꽤 큰 걸 기대하네. 돈 많이 벌고, 알았지?
지난 시리즈까지 다양한 형식과 주제를 다루는 여성 미술가들을 살펴보았다면, 오늘은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주체성에 대해 거리낌 없이 발화하며 ‘노골적'이기를 두려워 않는 솔직하고 당당한 급진주의자들을 만나 보자. 애니 스프링클 & 베스 스티븐스 (Annie Sprinkle and Beth Stephens) 애니 스프링클, 베스 스티븐스. 조각, 사진, 영상, 잡지, 단명하는 것들, 수집 자료. 1973-2017 설치 장면. 노이에 갤러리, 카셀. Annie Sprinkle and Beth Stephens, sculptures, photographs, videos, magazines, ephemera, and archiva...
여성 아티스트들은 남성 아티스트에 비해 ‘보통 인간’으로의 정체성보다는 한층 과잉된 캐릭터성을 커스터마이징 해야 하는 숙제와, 자기검열에 대한 (남성에 비해)비교적 엄격한 사회적 요구를 함께 안고 있다. 이런 모든 과제를 극복하고 자의식 어필에 주저함이 없는 여성 아티스트들만이 두각을 나타내고 살아남는다. 물론 이미 대체 불가한 네임밸류를 쌓아 올린 여성 아티스트들조차 씬과 미디어의 대상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달에는 지코, 올티 등 한국의 남성 힙합 아티스트들이 단체 채팅방에서 니키 미나즈(Nicki Minaj)를 향한 성희롱성 발언을 한 것이 공개되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 불합리의 지점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분노는 실제...
미루던 설거지를 해야합니다 쓸 컵이 없어서
*<딜루트의 '어떤 게임이냐 하면'>에서는 매달 스팀에서 플레이 해 볼 만한 게임을 직접 고르고 플레이 해 본 후 소개합니다. 이미지 제공 AZAMATIKA...
산타 할아버지는 있어! 니들이 착한 아이가 아닐 뿐이라고!
해외배송이 일반화되면서 남의 나라 온라인 쇼핑몰 구경할 일이 많아졌다. 미국이나 유럽의 의류 쇼핑몰들은 SPA브랜드라 할지라도 반드시 드레스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어서, 한국에서는 아무 데도 입고 나가지 못할 것 같은 드레스들을 매 시즌 여러 벌씩 판매하고 있다. 저가 브랜드라면 가격이 비싸지도 않다. 예산 200달러 정도면 드레스부터 백, 구두까지 장만할 수 있다. 그런데 유럽 사람들은 이런 걸 어디에 입고 가는 걸까? 의문은 2016년 가을에 풀렸다. 암스테르담으로 일주일간의 출장을 다녀오게 되었는데, 마침 내가 암스테르담에 도착하는 날인 목요일 저녁에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의 시즌 갈라 쇼가 열린 것. 꽤 좋은 좌석을 골랐음에...
또 다시 12월이 돌아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은 년도의 끝자리만 바뀌었지 별 다를 것 없이 알차게 낭비한 1년을 돌아보게 된다. 반복되는 연말 역시 화려하지 못하다. 맛 좋은 술에 음식과 함께 은은하고 따뜻하게 지난 한 해의 이야기를 나누는 송년회 파티보다는 오밤중에 이불을 뻥 차게 만드는 순간들을 잊고 싶어서 늘 가는 술집에서 늘 먹는 술을 꼴꼴,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붓는 정도일까. 어쩐지 모르게 반짝이고 행복하며 소비적이어야 할 연말을 배신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그랬다. 오랜만에 <스킨스>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
그룹 샤이니의 김종현씨가 강남의 오피스텔에서 중태에 빠진 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긴급하게 이송되었지만 끝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매일 저녁 프라임 타임 보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팀을 다룬 드라마 <뉴스룸> 중에는 이러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미국의 한 하원 의원이 연설 도중 총격을 맞고 쓰러졌다는 겁니다. 프로듀서들은 소식의 출처를 확인합니다. 첫 번째 취재원이 사망을 말합니다. 경쟁 언론사들이 속보를 줄줄이 터뜨리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취재원이 사망을 말합니다. 기다리던 다른 언론사들마저 의원의 사망을 속보로 내보냅니다. 하지만 <뉴스룸>의 팀은...
오늘 해야하는 작업을 생각하다보면 남들이 보기에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마음이 춥습니다. <핀치>에 ‘무정의 우대’ 시리즈를 마지막으로 기고한 지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이 시리즈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박보검’ 편을 1년 동안 썼습니다. 변명을 대자면 끝이 없지만, 미뤄지게 된 가장 큰 이유를 두 가지 설명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제가 올해 초 <프로듀스 101 시즌2> 를 보면서 ‘본격적인 남자 아이돌 팬덤’을 실시간으로 경험해버린 것이 이유입니다. 온갖 리얼리티를 미친 듯이 보는 시청자가 저의 또 다른 직업이지만, 그렇게까지 광기 어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시청하는 모두가 ‘방송국도, 시장도, 산업도, 사회도, 국가도, 그리고...
화장대 위가 포화상태가 될 떄 쯤 정리를 하는데
결혼은 안 할거에요? 직장 동료가 묻는다.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더 복잡한 거짓말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런 거 관심 없다고 해야 할 것만 같다. 나이를 몇 살 더 먹자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한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꿈꾸는 표정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알콩달콩 예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너는 그런 거 관심 없잖아. 친구들은 내가 결혼을 별로 안 하고 싶은 줄 안다. 젊은 날의 내가 ‘사랑은 이데올로기고 연애는 성역할 수행’이라고 바락바락 우기던 게 기억에 남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예전엔 정말 결혼을 꿈꾸지는 않았다. 자유로운 삶이 좋았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는 게 즐거웠다. 우리 엄마도,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