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랑의 조건은 희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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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랑의 조건은 희생이 아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마르치아의 사랑

루쓰

내 마음이 너의 사랑을 받아주지 못해 미안해.

옛 애인 H가 떠날 때 한 말이다. 그는 항상 '자신이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전형적인 회피형이었다. '자신이 부족하고 내가 너의 사랑을 받아줄 여유'가 없다는 식이었다. 

H는 나이가 꽤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상적인 외형'이라 쉽게 마음을 열었다.  나이때문에 그가 당시 얽혀있던 '범법행위인 사건'에도 '어른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어리석었다. 그리고 그가 하고 있는 '일'도 힘든 상황이라, 그에게  맞춰 사랑했다. 그럴수록 그가 나에게 호감을 표현하여 '나도 그런 듯 하여' 시작한 관계지만 관계가 깊어질수록 나는 더 약자가 되었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만 그가 원하는 스타일,  화장법, 왁싱까지 요구했다. 또한, 그는 불쑥 불쑥 처음보는 타인에게 분노표출을 했고, '장난처럼' 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나에게 '발을 걸며' 주짓수 기술을 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들이 언젠가 나에게 '폭력'으로 나타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와중에,  H는 '본인의 나이를 운운하며' 결혼을 서두르길 바랬다.  ( 날짜도 같이 정했는데 결혼하지 않길 잘했다. ) 나에게 '결혼까지' 이야기한 사람이 별로 없었기에 난 더 H에게 푹 빠졌다. 

그러나, 그에게 시간적, 심적 여유는 더 없었고, 그의 개인적인 '사건'은 더 절정을 향해 달려가서,  관계를 끝낼 수 밖에 없었다. 난 거의 환각까지 보면서 매일 악몽을 꾸었다. 역대 힘든 사랑 BEST 3 에 뽑는 관계였다. 나를 갉아먹는 관계임에도 그를 '사랑한다는 마음의 착각'때문에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환각 증세가 심해지자 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는 저딴 회피형 말을 건냈지만 다행히도 '안전이별'을 하게 되었다. 그때의 나를 생각할 때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마르치아가 생각난다.

출처 = pinterst
출처 = pinterst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선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느끼는 감정을 감추기 위해 마르치아를 만난다. 엘리오는 처음부터 올리버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꼈다. 올리버의 작은 터치나 말, 행동에도 일부러 예민하게 굴고 마음에 들지 않은 척 행동했다. 그리고, 올리버가 다른 사람과 춤을 출 때도 질투에 폭풍담배를 피운다. 그때, 마르치아와 더 적극적으로 만난다. 그리고, 올리버와 식사자리에서 '마르치아와 거의 할 뻔 했어요.' 라는 식의 말을 던진다. 그러면서 마르치아는 엘리오에게 더 빠져든다.  엘리오는 마르치아에게 더 적극적으로 스킨십과 섹스를 한다. 그러나, 엘리오는 마르치아와 자고 온 날에도 '올리버'와의 약속 때문에 정신이 팔려있었고 올리버와 그 날 밤 스킨십을 한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둘의 마음을 확인한 후에 둘은 더 적극적으로 둘 만의 사랑을 이어나간다. 이때, 엘리오는  마르치아에게 엘리오는 소홀하게 군다. 마르치아는 섭섭함을 느끼면서 묻는다. 

난 너의 여자친구가 맞니?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마르치아는 영화 속에서 점점 비중이 줄어들고 사라진다.  '어차피 마르치아는 엘리오의 진짜사랑을 위한 조연일 뿐'이었다. 그리고, 난 더 마르치아가 마음에 걸렸다. 

마르치아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럴수록 본인탓을 할지도 모른다. 


책 <나도 아직 나를 잘 모른다>에선 뇌과학과 임상심리학을 엮어서 심리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뇌는 논리와 규칙을 찾는 '기계'와도 같아서 우연한 사건끼리도 상관관계를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의도없이 한 말, 행동에 어떤 이는 "저 사람 나 싫어해서 저런 말을 할까?" 하면서 연관성을 찾게 된다고 한다. 

사실 이런 모습들은 균형이 깨진 연인관계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혼자하는 사랑'이란 느낌을 받으며 '연인관계'에서 상태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면 더 오귀인으로 상대방의 행동에 의미를 찾는다. 본인이 잘못이 없어도 '나의 작은 행동때문에 저 사람이 날 떠났을까? 난 매력이 없을까?'하면서 스스로를 더 깎아내리게 된다. 

마르치아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희생된 존재다. 마르치아는 전혀 잘못이없으나 영화 밖에서 마르치아는 스스로를 탓하고 있지 않을까?  H 의 한마디에 '난 굳이 나의 잘못으로'을  찾았다.  내가 그의 아픔을 더 이해하지 못해서, 그의 상황에 관대하지 못해서, 내가 너무 어려서 등등 굳이 이유를 찾으면서  의미를 부여했다. 

마르치아를 만나게 된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상황이 그랬을 뿐, 넌 잘못이 없어. 굳이 잘못을 따진다면 관계를 명확하게 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의 수단으로 이용한 엘리오가 잘못된 사람이지.  그래서 '인생영화'로 자주 언급되는 '콜 마이 바이 유어 네임'을 보면서도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에 몰입되지 않았다. 마르치아도 '엘리오'와의 관계를 발판으로 마르치아 존재 가치를 스스로 인지하는 충만한 사람이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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