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민 (전도연)은 장애가 있는 아이 종화에게 몰두하고 있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핀란드까지 가서 종화의 치료를 위해 힘쓰고 있다. 상민의 남편은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며 '알아서' 상민이 하길 바란다. 상민은 외로운 존재다.
상민은 핀란드에서 종화를 보낸 국제학교에서 기흥을 만난다. 상민은 오로지 자기 이야기를 집중있게 들어준 기흥에게 끌렸던 건 아니었을까. 둘은 ‘불륜’인 걸 알면서도, 서로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둘의 애착관계는 거부형(상민) - 안정형(기홍)으로 보인다. Fraley와 Davis(1997)에 따르면 안정형은 세상을 탐색하는 안전기저로서 낭만적인 연애상대를 이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반면, Shaver & Clark(1994)에 따른 거부형은 친밀한 정서적 관계가 없어야 편안하고,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상민의 행동을 보면 기홍에게 끌리면서 방어적으로 경계를 하고, 정서적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안정형인 기홍은 다른 사람과 친밀해지는 것이 쉽고, 타인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까봐 걱정하지 않는다. 둘은 핀란드에서 하룻밤을 함께 했지만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지나가던 길이었어요.
몇달 후, 상민은 남산에 위치한 쇼룸 밖에서 우연히 기홍을 만난다. 기홍은 지나가던 길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상민은 우연이 아닌 걸 안다.
상민 : ‘일하는 곳이 산밑에 있어서 매일 오르락 내리락 하거든요.
기홍 : 어디 산이요?
상민 : 남산이요.
핀란드에서 둘은 산책을 하며 짧은 대화 속에 상민은 자신의 정보를 남겼다. 상민의 했던 말을 기억하고 기홍이 남산을 다 돌아다닌 걸로 보였다. 저 대사는 ‘무서울 정도로 소름끼치지만’ 애착유형에 봤을 때, 기홍은 (얼핏보면 집착형으로 보이지만) 타인을 대하는 행동에 망설임이 없다.
나 역시 연애에서 상민처럼 타인을 경계한다. 처음 상대방을 사랑하면 쉽게 빠져들지만, 순간적으로 그들이 떠날까봐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경계가 있는 나의 애착유형은 모든 연애에 영향을 끼친다.
G를 떠나보내고 몇달 후, O를 만났다. G와 연애에서 '안전이별'을 했지만 나는 치유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O가 경험한 일을 들으면서 O에게 빠져들면서도 '그의 잘난 커리어’에 스스로 위기의식을 갖고 부족한 사람처럼 느꼈다.
O에게는 배울 점이 많았지만, 난 위축되고 있었다. O는 거부형에 가까웠고, 나는 두려움형이었다. 거부형은 독립과 자기만족을 중요시하며, 타인에게 의존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O와 나는 ‘합의 이별'을 했다. '그를 잡더라도 나는 그리 행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의 이별 사유는 O의 개인사정이었다. O는 연애할 상황이 아니었고 ‘자신의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러나, O가 겪고있던 고통을 난 흡수하고 있었고, 그 고통이 내 잘못인 것처럼 더욱 그의 '눈치'를 봤다. 두려움형의 특징은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원하지만, 타인에게 완전히 의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타인과 친밀해지는 것에 불편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O에 대한 나의 감정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지나치게 친밀해져 내가 다칠까봐’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O와 만남 초반엔 O가 더 적극적이었지만, 어느샌가 나는 ‘사실 그렇지 않은데도’ 은근한 거리감을 두었다.
이러한 나의 모습과 O의 힘든 개인사정에 연애는 더 힘들어졌다. 나 역시, 스스로 위축된 모습이 좋아보이지 않아 이별을 결심했다. 그래서 정말 '잘 헤어졌지만', 그때의 내 모습이 더 나약해보여서 난 스스로 마음에 쓰여 그때가 자꾸 떠오른다.
김명숙(2008) 연구결과를 보면, 이처럼 ‘거부형:두려움형’이 만나면 긴장/위축 상황은 고조되나, 신뢰행동에서 평균정도의 수준을 보였다. 특히, 이 관계에서 호감표현이 증가할수록 관계만족도가 높아진다. 우리 관계에선 충분한 호감표현할 ‘심적여유’가 서로에게 부족하였으니 우리 관계의 끝은 당연한 걸수도 있겠다.
O와 헤어진 후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다. 나의 지난 연애들에 대한 본질적인 원인에 접근하고 싶었다. 상담사 분이 한 말 중 인상깊은 말이 있었다. "어릴적 아버지와의 애착관계에서 불안감이 올 수 있어요. 그러나 그 불안감을 숨기기보다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터놓고, 불안감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존중하며 나아가면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가 되지 않을까요?" 난 충분히 ‘사랑하는 관계라면’ 의존해도 되지만, 친밀함을 불편해하며 불안감을 숨기려고 살았다. 그동안 연애에서 오는 원인을 살펴보고, 애착유형을 알고나니 나의 연애에 대한 불안감이 조금은 감소했다.
<남 과 여>의 상민과 기홍 관계가 ‘적절한 관계’는 아니지만 기홍이 ‘감정’에 대하는 태도는 배우고싶다. 망설이지 않는 그의 태도를 이해하고 배운다면, 내가 당장 안정형이 아니라도 괜찮다. 안정형을 만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나의 불안감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충만한 관계에 앞서, 나의 마음을 챙기는 일이 변화의 시작이다.
참고문헌
김명숙(2008), 성인애착유형 조합에 따른 이성교제행동과 이성관계만족간 관계, 홍익대학교 교육학과 상담심리전공 박사학위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