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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우리 이민갈까? 11. 퀴어를 위한 나라는 없지만

유의미

파트너십 비자를 신청할 때의 일이다. 한국에서 신체검사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관계를 파트너라고 써 달라고 하니까 단어를 이해 못했는지 남편이냐고 몇 번을 물었다. 비자 신청에 혼선이 생기는 게 싫어서 정확하게 하고 싶었지만, 그 자리에서 커밍아웃하고 싶지는 않았다. 파트너로 표기해 달라고 여기저기에 반복해서 요청했으나 하나같이 남편인지 묻는 집요한 상황에 결국 남편이라고 쓰시든지 마음대로 하시라고 해버렸다. 뉴질랜드에서는 그런 일이 아직 없다. 파트너가 아직 입국하지 않아 대신 전화했을 때 은행 업무 상담도 가능했고, 공동 계좌를 만들러 갔을 때도 무슨 관계인지 왜 만드는지 쓸데없는 개인적인 정보를 물어보지 않았다. 고양이 보험...

언니, 우리 이민갈까? 17. 영어만 들으면 졸렸던 이유

유의미

한국 사회에 ‘탈조선’이 화두가 된 지도 꽤 되었고, 몇 년 전 2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한 취업 포털의 조사 결과에서는 10명 중 7명이 기회가 되면 이민을 가고 싶다고 응답했다. 특히 여성의 경우는 이민 의향이 더 높게 나왔다.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스물 다섯 살까지 외국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고, 대학생 때도 교환학생 같은 해외 교류 프로그램에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오히려 절대로 외국에서 살지 말고 한국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우습지만 영어 때문이었다. 일러스트 이민...

언니, 우리 이민갈까? 10. 뉴질랜드 현모양처 되기

유의미

내 꿈은 현모양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페미니스트가 가지기에 적합한 꿈은 아니지만, 좋은 아내와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의 나쁜 점은 뭘까? 다른 꿈을 지닌 여성이 사회적 억압과 비틀린 기대로 인해 엄마와 아내의 역할에만 갇혀서는 안 되겠지만, 나는 그런 여성이 아니다. 일터에서 이루고 싶은 대단한 꿈이 없고, 노동에 애정과 열정이 없고,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이 중요하다. 어차피 어떤 일이든 하면서 살아갈 거라면, 좋아하는 사람들을 정성껏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

언니, 우리 이민갈까? 22. 결혼, 끝나지 않는 팀플

유의미

뉴질랜드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니 가끔은 여기가 뉴질랜드인지 한국인지 모르겠다. 전혀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고 익숙한 하루하루가 반복된다. 더는 길을 헤매지 않는 대신 어딜 가면 뭐가 있는지 다 알겠고, 차로 한 시간 이내의 가까운 관광지는 이미 모두 가본 것 같다. 물론 조금 더 멀리 나간다고 해도 관광지에 복잡한 시설을 들이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매력을 강조하는 뉴질랜드 특성상 가서 만나게 되는 풍경이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 더 유명한 관광지라고 해도 그냥 모래사장이 있고 바다가 있고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뉴질랜드 이민을 한창 검색할 때 가족 단위의 시간이 많아질 테니 관계를 잘...

언니, 우리 이민갈까? 12. 유토피아를 기대했다면

유의미

유토피아라는 국가의 궁극적 이념은 공익이 허용하는 한에서 시민들을 되도록 많은 시간 동안 육체적 노동에서 자유롭게 하며, 시민들이 자유를 만끽하고 정신적인 고양에 힘쓸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것에 인생의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뉴질랜드에 살면서 외국 생활의 환상이 하나씩 부서졌다. 해외에 나가보지 않은 채 상상만으로 그렸던 모습은 실제와 달랐고, 예측하지 못했으니 준비도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었다. 다른 삶을 꿈꾸며 희망을 갖는 것도 좋지만, 이민은 중대한 결정이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의 신중한 판단을 돕기 위해, 내가 가졌던 환상과 직접 경험한 현실을...

언니, 우리 이민갈까? 18. 뭐 해 먹고 살 거냐면

유의미

커튼 틈새로 비집고 들어온 뜨거운 볕이 얼굴에 내리쬔다. 그 눈부신 열기에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조금 열고 커튼을 확 젖히면, 태양 빛이 방안으로 한꺼번에 쏟아진다. 함께 침대에 누워있던 고양이들은 신이 나서 한달음에 뛰어올라 창가에 앉는다. 저 뜨거운 태양 덕분에 뉴질랜드는 겨울에도 때때로 덥다. 물론 흐리고 비가 오는 종일 으슬으슬 몸이 떨려오는 날도 있지만 말이다. 밤에는 차가워서 맨발로는 밟을 수도 없었던 거실도, 날이 밝으면 따뜻하게 데워진다. 시리얼, 요거트, 과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고양이의 밥그릇과 물그릇을 채워준다. 틈틈이 던져 넣어둔 빨래가 꽤 쌓인 게 보이는 날에는 세제를 넣고 세탁기를 돌린다. 인간의 머리카락...

언니, 우리 이민갈까? 23. 이민 왜 왔냐면

유의미

뉴질랜드는 이민자의 나라다. 원주민 마오리가 살던 땅에 유럽인이 이주해왔을 뿐 아니라, 여전히 해외에서 태어난 많은 사람이 뉴질랜드로 향한다. 작년 한 해 동안 뉴질랜드의 순 이민자 수는 약 5만 명이고, 뉴질랜드에서 매년 태어나는 아기의 숫자는 약 6만 명이다. 순 이민자 수와 출생자 수가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이대로라면 여기서 태어난 사람과 여기로 이주한 사람의 수가 비슷해질 것이다. 순 이민자가 아니라 뉴질랜드에 이민해 들어온 사람의 수만 따지면 작년 기준으로 15만 명에 조금 못 미친다. 여기서 태어난 사람들은 외국으로 나가기도 할 테니 조만간 이민자가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이민자의 수와 꼭 같지는 않겠지만, 뉴질랜드 땅이...

언니, 우리 이민갈까? 27. 엄마와 나의 퀸스타운

유의미

오클랜드에 있다고 뉴질랜드 구석구석 여행을 다니는 건 아니었다. 서울에 있다고 꼭 부산 여행을 자주 갈 수 있는 건 아니듯이 말이다. 지난번 갑자기 받은 휴가로 떠난 네이피어 여행 외에 뉴질랜드를 본격적으로 여행한 건 딱 한 번 더 있었는데, 엄마가 놀러 왔을 때였다. 나는 엄마에게 내 뉴질랜드 이민을 백 마디 말로 설득하는 것보다 한 번 눈으로 보여주는 게 더 확실한 효과가 있을 거라 믿었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이 공기와 이 바다를 본다면 누구라도 여기 살고 싶어질 테니까, 엄마 딸이 모든 걸 뒤로 하더라도 이 평화롭고 여유로운 땅에서 살겠다는 이유를 조금은 알아줄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엄마를 초대했고, 여행을 좋아하...

언니, 우리 이민갈까? 21. 고작 그 소속감

유의미

대학교 시절, 정말 들어가고 싶었던 봉사 동아리가 있었다. 경쟁률이 높아서 면접까지 통과해야 활동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정성껏 자기소개서를 써내고 저녁때까지 학교에 남아 면접을 봤고, 면접 때도 최선을 다해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해서 겨우 합격했다. 그렇게 들어간 그 동아리는 처음에는 정말 천국 같았다. 원하던 활동을 할 수 있었고, 사람들도 모두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딘가 불편하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아리 엠티에 가서 그 이상한 느낌은 좀 더 선명해졌다. 준비된 프로그램이 다 끝나 자유시간이 되자 여성 회원들은 따로 마련된 방에 둘러앉아 사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한두 달쯤 활동한...

언니, 우리 이민갈까? 13. 새 보금자리와 타협하기

유의미

뉴질랜드에 가면 대도시인 오클랜드에 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고 온 건 거기까지였다. 서울 안에 서대문구가 있고 마포구가 있는 것처럼 오클랜드 안에도 타카푸나, 글렌필드, 폰손비 등 다양한 지역이 있는데 그 중 어디에 살지 결정한 적이 없었다. 직장도 학교도 이 나라에 아는 사람도 없으니 어디에 머무르든 상관이 없는데, 상관이 없으니까 오히려 막막했다....

언니, 우리 이민갈까? 14. 운전으로 주체성을 회복하다

유의미

보금자리를 찾을 때 여러 조건 중 하필 ‘위치’를 포기해서 생긴 어려움이 있다. 시티에서는 숙소에서 몇 걸음 가지 않아도 카페가 있었고, 주위를 둘러보면 언제나 식당이 있었다. 이사 온 동네는 그렇지 않았다. 작은 식당이 몇 개 있었지만, 카페라도 가려면 삼십 분쯤 걸어야 했고, 그 외엔 모두 그냥 길이고 집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공터’라는 단어가 늘 낯설고 궁금했다. 서울의 모든 곳은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고 주변에서 빈 곳을 볼 수 없었다. 뉴질랜드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 땅이 꽤 보인다. 책에 나왔던 공터란 이런 곳이었을까 생각한다. 여유로운 느낌도 들지만, 오히려 휑하고 쓸쓸해서 걸어 다니기 무서운 길도 많다....

언니, 우리 이민갈까? 19. 가장 구체적인 두려움

유의미

한국에만 살아봤을 때는 외국에 나가면 시야가 넓어진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책을 읽고 신문을 보며 관심 분야라면 어떻게든 찾아보니까, 외국이라고 해도 대단히 새로울 것도 특별히 더 배울 것도 없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와보니 읽거나 들어서 이미 다 알던 이야기라도 와서 직접 온몸으로 경험하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한국보다 땅이 엄청 넓다더라.’ 하는 말은 아무리 걸어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던 날의 얼얼한 발바닥과 상점 하나 보이지 않는 텅 빈 거리의 막막한 기분으로 생생해졌고, ‘겨울이 엄청 습해서 춥대요.’하는 말은 삼 일째 마르지 않던 면생리대와 겨우내 콧속에 머금던 차고 축축한 곰팡이 냄새로 기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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