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이자연, 여자 차현우 유아인이 SNS상에서 많은 이들과 설전을 벌였을 때 모든 커뮤니티는 아수라장이었다. 며칠 동안 승자도 패자도 없는 지리멸렬한 싸움이 이어졌고, 끝내 유아인이 ‘애호박’과 ‘빛’, 꽤 간극이 큰 별명을 짊어지게 되면서 잠잠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면, 이제와 고백하건대 이 세상에 없는 남자가 되어있었다. 보편적으로 남성들 사이에 많이 쓰이는 이름 하나를 골라서 SNS 계정 하나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곳 저곳을 들쑤시면서, ‘나도 같은 남자지만’ 으로 시작하는 강력한 논리를 펼치고 다녔다. 꽤 영악하게 계정을 운영했다. 뭇 남성들 계정에서 관찰한 게시물과 비슷한 것들을 며...
우리에게 없던 이름 tvN의 수목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WWW(아래 검블유)>는 첫 방영부터 반응이 뜨거웠다. 등장 인물의 8할을 여성들이 나눠 가지면서, 멋지고 야비하고 정의롭고 당찬 모습 또한 여성들의 몫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열망했던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녀의 이름은 배타미다. 대한민국 인터넷 포털사이트 점유율 1위를 기록한 ‘유니콘’의 기획본부장인 배타미는 38살의 워커 홀릭으로, 유니콘의 대중적 장악을 이끌어낸 중심 인물이다. 단언컨대 배타미는 드라마의 혁명이고 혁신이다. TV 속에서 이런 여성을 마주한 적이 있었던가 싶어서 이 낯섦이 무척이나 반가워진다. 물론 당차고 씩씩하고...
영화 <콜레트>는 인물의 정체성과 ‘이름’이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남편을 대신 해서 글을 쓰던 콜레트가 남편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자신의 이름을 적어버렸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타인과 확실히 구별되는 자기정체성을 느끼면서,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이름을 확인하고, 부르고, 또 그에 대답하는 과정은 결국 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는 일이 된다. 얼마 전 종영한 MBC <신입사관 구해령>은 노처녀인 채 사관이 되어버린, 조선시대 가부장사회에서 쓸모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구해령’의 이야기이다. 평소에 서책을 좋아하지만 연애 소설은 소...
최근 지인의 부탁으로 두 달 동안 학원에서 일을 했다. 중학생들에게 영어 회화와 문법을 가르치는 게 주된 업무였다. 스무 살부터 첫 직장을 가질 때까지 7여 년을 강사로 일한 덕에 아이들과 경계를 허물고 가까워지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여느 ‘요즘 아이들’을 둘러싼 무성한 소문들이 무색하게 학생들은 어른을 잘 따랐고, 말과 행동을 스스로 점검할 줄 알았으며, 선생님의 관심을 원했다. 그날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늘어놓다가, ‘청소당번’이나 ‘시험 기간’ 같이 내게 너무 멀어져 버린 단어를 쓸 때엔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적당히 친절하고 적당히 영악한 아이들을 보면서 그 나이답게 잘 커 가고 있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