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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탈혼기 8. 위자료를 받기 위해 결혼한 여자

Jane Doe

석 달 뒤 나는 다시 B와 함께 관할 지방법원에서 만나야 했다. 나는 법원에서 보내온 문자가 알려준 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사람들은 붐볐고 언뜻 보기에는 어수선했지만 이 모든 일들은 규칙이 있었다. 마치 대학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곁눈질로 이 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훑었다. 혹시라도 오늘 마음이 바뀐 B가 이 자리에 오지 않을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아직 B는 오지 않았다. 원래 일찍 오는 사람은 아니니까. 나는 불안한 마음을 누르려 애썼다.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다. 설마 마음이 바뀐 것은 아닐까. 혹시 이 일을 까먹은 것은 아닐까. 나는 계속 문을 보고 앉아있었다. 한참 뒤...

A의 탈혼기 7. 내 잘못이 아니었다

Jane Doe

그래도 내가 그때까지 그와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적어도 한 가지 위안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나는 B에게 맞지 않았다. B는 내 손목을 잡고, 억지로 나를 꽉 안아 일어나지 못하게 한 적도 있었고, 물건을 집어던진 적도 있었고, 나를 협박한 적도 있었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고, 자살하겠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적어도 B는 나를 때리지는 않았다. 그때 폭력이라는 것이 상대를 때려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인지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겨우 아이가 태어난 뒤에야 깨달았다. B의 행동이 아이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서야 나는 그를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A의 탈혼기 6. 탈혼을 결심하다

Jane Doe

아이가 태어나고 난 뒤 나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한참 아이를 돌보다 시계를 보면 완벽히 생소한 숫자가 보였다. 갓 태어난 아이는 좀처럼 시간을 맞춰 잠을 자지 않는다. 당연히 아이를 보는 나 역시 시도 때도 없이 깨어있어야 한다. 아기가 잠시 잠에 들면 아직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일으켰다...

A의 탈혼기 5. 나가 계시라고 할까요?

Jane Doe

그 상황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그때 누구라도 엉망이 되어버린 집 모양을 보고 이 상황을 알아차려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쓰러졌다는 사실에 집중했을 뿐 주변을 둘러볼 여유는 없어보였다. 난생 처음 들것에 올려졌다. 주변에 다행히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누구라도 나를 알아볼까 두려워 몸을 바짝 웅크렸다. 그 모습을 보고 구조대원들은 놀라며 내게 물었다. “괜찮아요? 많이 아픈가봐요.” 우습게도 나는 이 상황이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더 깊이 몸을 웅크렸다. 마침내 들것에 눕혀진 내가 구급차에 올랐다. 제발 나는 나 혼자만 구급차에 타길 바랐다. 하지만 그들은 ‘보호자’인 B를 나와 함...

A의 탈혼기 4. 애가 무슨 죄가 있겠어요

Jane Doe

나는 재정을 포함해 결혼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그보다 더 많이 책임지고 있었다. 나는 가장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가족들 오직 B가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통을 들먹이며 그들을 받들어 뫼시기를 요구했다. 그 순간 이후 나는 그의 가족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 온 뒤,&...

A의 탈혼기 3. '잠깐만 맞춰주자'고?

Jane Doe

늦은 새벽이었다. 다음 날 회사에 가려면 빨리 자야 했다. 하지만 나는 서서 한참을 고민했다. 난장판이 된 집을 당장 치우는 게 맞는 것인지, 이 상황을 그대로 두고 집에 돌아온 그가 반성하게 해야 하는지. 지금 생각하자면 꽤 하찮은 고민이었다. 일단 나는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그 꼴을 계속 보고 있으면 또 화가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웅크렸다. 나는 웅크린 채로 대체 무엇이 이렇게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했다.더 이상 양보할 수 없었다. 책임져야 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게 된다. 거기에 무책임한 어른을 하나 더 책임지고 산다는 것은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우리는 지금과 달라져야...

A의 탈혼기 2. 모든 것이 달라졌다

Jane Doe

놀랍게도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나의 가족들은 조금 놀랐지만 어쩔 수 없다며 생각보다 쉽게 이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의 가족들 역시 생각보다 담담하게 이 모든 일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나는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던 상견례 자리에 안착했다. 미리 각자의 가족들을 만나 인사를 한 뒤였지만 어쨌거나 불편한 자리였다. 몇 가지 형식적인 인사말이 오간 뒤 마침내 앞으로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양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요즘 세상에 남자가, 여자가 이런 말이 어디 있냐며 부담 갖지 말고 서로 편하게 맞춰가자고 했다. 분위기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끝...

임신일기 35주차. 여성은 뭘 해도 욕 먹는 나라

ND

계속 커져만 가는 내 배를 보면서 이것 참 야만적이란 생각을 했다. 도대체 인간의 몸을 어디까지 부풀릴 셈인가, 하는.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 거장을 이기고, 유전자가위로 난치병도 고친다는 2018년에 사는데 인간이란 존재는 여전히 여성의 몸에서 열 달 동안 자란 후에야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다니. 곧 터질 것만 같이 커다래진 내 배를 바라보고 있으면, 여성의 몸을 통해야만 재생산이 가능한 현대라는 건 그 자체로 너무 여성을 배제하는 사회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까지 여성에게 가혹할 일인가? 다른 기술들은 다 발달했는데 어째서 여성의 몸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재생산 부분에서만 진보가 없냔 말이다. 여성의 몸에 대한 연구엔...

결혼고발 1. "며늘애가 그러라고 하디?"(상)

사월날씨

남편이 시부와 통화하던 중이었다. 나와 남편은 그날 저녁에 시부모와 만나기로 약속한 상태였고, 그와 관련해 무언가를 정하는 통화였을 것이다. 그때 별안간 거실에서 격양된 남편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이가 그러라고 해요?!” 남편의 항의 섞인 대답으로 인해 나는 간접적으로 시부의 발언을 알게 되었다. 어떤 문제였는지 구체적인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만큼은 뇌리에 강렬하게 박혀있다. 상세 내용이 기억에 없는 것을 보면, 그만큼 사소한 일이었을 테다. 그토록 사소한 일상에도 시부모는 며느리 탓할 구석을 만든다. 당신들 마음에 차지 않는 결정일수록 그렇다. 명확한 이유가 있어도 자꾸만 허공의 며느리를 노려본다. 남편에게...

결혼고발 에필로그. 며느리도 아내도 아닌 나의 세상을 꿈꾸며

사월날씨

결혼한 지 두 달쯤 지났을까 싶은 어느 날, 나는 별안간 집에 있던 노트를 아무렇게나 펼쳤다. 그리고는 생각나는 모든 걸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도무지 소화되지 않던 것을 울컥 토해내는 심정으로 정신없이 써 내려갔다. 어느샌가 심장 깊숙이 잔뜩 꽂혀있는 말들을 하나하나 종이 위에 꺼냈다. 두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며느리로서 시가에서 받은 부당하고 모멸적인 대우와 며느리의 위치를 똑똑히 알려주던 일상의 말들을 모두. 결코 ‘막장 시가’는 아니라서 호들갑 떨 만한 일도 아니고, 내 얘기를 듣는 이도 “아이고, 그렇구나”, “어휴, 그렇지 뭐”하고 눈썹 한 번 내린 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릴 테지만, 내게는 분명코 영혼을 상하게...

결혼고발 12. 결혼 없이도 가져야 하는 것

사월날씨

컴퓨터 수리점 방문을 몇주째 미루다 온 참이었다. 기계를 잘 모르는 젊은 여자가 무시당하거나 바가지 쓰기에 딱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쪽에서 어떤 설명을 하든 나는 무얼 물어야 할지 모를 터였다. 내 대기번호가 불리고, 접수대에 다가가 백팩을 열었다. 백팩이 날 더 어려보이게 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 시선 때문에 실용성과 편안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고장난 컴퓨터 하나 맡기는 데 참 신경쓸 게 많은 삶이다. “전원이 안 들어오는데요,”라 말하며 컴퓨터를 꺼내는 사이, 아니나 다를까. 그래서 뭐가 안 되는데요? 중년남성의 퉁명스럽고 고압적인 말투가 날아왔다. 뭐가 안 되긴, 전원이 안 된다고 방금 말했고, 설명을...

결혼고발 11. 결혼한 딸의 새로운 위치

사월날씨

명절이면 아버지 쪽 친척들이 우리 집에 모인다. 집안 둘째 아들인 아빠가 실질적인 장남 역할을 맡아왔기 - 그보다 엄마가 실질적인 맏며느리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겠다 -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에는 시골 할머니댁에서 모이자는 고모부의 제안이 있었다. 친척들의 SNS 대화방에서 그것을 보고 나는 무척 반가웠는데, 장소를 제공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명절 부담이 꽤 줄어드는 까닭이다. 다만 사위인 고모부가 아니라 엄마나 작은 엄마, 그러니까 며느리가 이런 의견을 평화롭게 제시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며느리에게는 애초에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는 데다, 더구나 며느리의 노동을 줄이는 방향의 대안이라면 반발과 투쟁을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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