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결의
이념을 배반하게 만드는 추미애의 잘생김에 번민하고 나서 백 일도 지나지 않아, 나는 마침내 추미애를 "직관"하기로 했다. 연예인도 아니고 지지하지도 않는 정치인을 직접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지만, 추위가 매서운 1월의 어느 날, 나는 급기야 영등포시장까지 가고야 말았다.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지지하지도 않는 당의 지지하지도 않는 정치인의 일정을 매일같이 확인하다가 결국 실물을 보러 가기까지 하다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회의감이 차올랐다. 매한가지로 추미애의 얼굴에 매료된 동지와 만나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쉴새없이 한탄했다. 코트 차림의 20대 여자 둘이 재래시장에 있는 풍경도 볼 만 했을 것이다. 뒤이어 도착한 세 번째 동지가 술회하길 "시장에 너무 안 어울리는 두 사람이 있었다"던데 참으로 옳은 말이었다.
그렇게 배회하고 있을 때, 재래시장 한 켠의 전집에 DSLR을 목에 맨 남자 네다섯이 우르르 몰려 왔다. "곧 여기 오실 건데 사진 좀 찍을게요.", "깎아주지 말고 비싸게 받으세요." 10m 앞에서 플래시가 연이어 터졌다. 시장에 어울리지 않게 사람이 잔뜩 몰려 있었다.
그 중심에 추미애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당 대표이며 비례대표 없이 지역구로만 꽉 채운 5선 정치인이, 설 명절을 맞아 "재래시장 민심 동향"을 살피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김영주 의원, 박경미 대변인을 비롯한 당 지도부 인사를 대동하고, 추미애 대표는 재래시장의 상인들에게 명절 인사를 건넸다. 국회의원 보좌관과 민주당 당직자와 지구당 위원장도 그 걸음을 따랐다. 거물이 뜨니 언론도 따라붙었다. 각 언론사의 사진 기자들이 쉴 새 없이 플래시를 터뜨렸다. 시장 상인들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유서 깊은 정치권의 명절 맞이 행사였다.
그 때 추미애를 가까이서 보겠다는 일념 하에 행렬에 참여했던 우리는 얼마나 어색했을까. 이 자리를 빌어 민주당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사과 드린다. 거 사진 찍히셔야 하는데 화면에 이상한 젊은이들이 잡히고 말이야! 하지만 가까이서 본 추미애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그는 콧등에 잔주름이 잡힐 정도로 환하게 웃었고 시장 상인들이 보이는 족족 악수를 했다. 나는 넋이 나가서 만면에 미소를 띠고 추미애를 바라보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표정 관리가 불가능했다. 내 어머니보다 나이 많은 중진 정치인을 헤실헤실 웃으며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알기로 이것은 인간이 사랑에 빠졌을 때 흔히 겪는 증상이다.
잘생기셨어요
추미애가 시장 상인회 사무실에 올라가서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와 동지는 마음을 다잡고 번민을 떨치기 위해 애썼다. 소용 없는 일이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밖에 있던 민주당 관계자 여러분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아무도 내게 선사한 적 없는 수치심이 밀려왔다. 내 마음이 만들어낸 수치심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수치심도 추미애와 악수했던 경험을 돌이킬 때 피어나는 것만은 못할 것이다. 추미애가 상인회 건물에서 나올 때 우리는 쪼르르 달려가서 아는 척을 했다. 그리고 (적어도 나는) 이성을 잃었다. 여기서부터는 그 때 촬영한 동영상을 보고 복기한 기억이다. 나는 당시의 기억이 없다.
일단 우리가 누구인지 밝혔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요새 생기고 있는 20대 팬인데요."
추미애는 미소 띤 채 심상하게 답변했다. 한때 추미애가 너무 좋아서 추어탕집 상호를 추미애로 등록한 사람도 있을 정도로 인기 좋은 정치인답다.
"네~ 반갑습니다~"
우리는 용건을 말했다.
"대표님 20대 국회에서 제일 잘생기셨어요!"
"맞아요, 잘생기셨어요!"
"잘생기셨어요! 민주당 역사에서 제일 잘생기셨어요!"
이 때 추미애가 웃던 모습은 시쳇말로 '빵 터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둥지에 어미새가 먹이를 물고 오자 밥 달라고 지저귀는 아기새마냥 "잘생기셨어요!" 밖에 할 줄 몰랐다. 영등포가 지역구인 김영주 의원이 웃느라 정신 없는 추미애 대표를 끌고 가며 "광진 가서 이 얘기 해야 되는데. 영등포에서 이러면 나 삐진다." 라고 하던 것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 동영상을 확인하고 나서 알았다. 오직 추미애의 환한 미소만 눈에 들어왔다.
이후 뭔가 이성을 다잡고 막 얘기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추미애가 한마디 하자 다 부질없어졌다. "자기들이 제일 잘생겼어요. 허허허허허!" 중년들이 으레 던지는 농담에 우리는 다시 정신을 잃고 "대표님이 제일 잘생기셨어요!" 를 쏟아낼 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린이에게 말 걸 때랑 똑같은 어조였다. 낫살 먹을 만큼 먹었다고 제 아무리 잘난 체를 해도 58년생 앞에서 20대는 그저 핏덩이가 아닌가. 헌데 그렇게 감미로운 어린애 대접이 있으랴? 추미애는 요즘 유행을 따라 하이파이브를 청했는데, 이 핏덩이는 그 손을 덥석 잡았다. 그게 하이파이브였다는 것도 나중에 동영상 돌려 보고 알았다.
1분도 안 되는 찰나였지만 정말이지 황홀한 시간이었다. 나는 한동안 추미애의 잘생김에 넋이 나가 있었다. 추미애가 그렇게 웃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었다. 정치인이 환하게 웃는 걸 보려면 무엇을 해야 하지? 옳지, 표를 주면 되겠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민주당에 입당해서 지구당 활동을 열심히 하는 데까지 상상이 뻗쳐나갔다. 추미애가 계속 웃는 모습을 꽤 그럴싸한 핑계와 함께 계속 보고 싶었다.
어머니의 촌평을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추미애가 잘생겼다고 구구절절 이야기하자 어머니는 일침을 놓았다. "얼굴 보고 사람 뽑는 것만큼 구태 정치가 없다, 얘." 허튼 소리가 한마디도 없었다. 어머니는 훌륭한 공화국 시민이었다. 나는 딸이 되어 가지고 잘생긴 정치인이랑 악수 한 번 하고 오더니 민주당에 표 줘야겠다고 온갖 유난을 다 떨고 있었다. 부끄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잘난 체는 됫박으로 하고 때때로 어머니 머리 꼭대기에 올라 앉으려고 들던 게 무슨 소용인가. 핏덩이는 이런 게 핏덩이였다.
가부장의 잘생김
물론 내가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말거나 여전히 추미애는 잘생겼고 나는 추미애의 얼굴을 열렬하게 지지한다. 추미애의 잘생김은 가부장제에도 마모되지 않은 한 여자의 자의식이 자아낸 걸작이다. 게다가 추미애는 실제로 정치적 가부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 의미가 각별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도로 정계에 입문했던 사람이 대구 출신 호남의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더불어민주당의 대표가 된 것이다. 가부장제가 어떻게 프레이밍해왔든 족보란 게 있다면 이런 건 그냥 장손이다. 추미애는 해냈다. 경상도 여자에게는 가부장제와 싸우기에 앞서 가부장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존재한다는 농담을 중앙정치의 최전선에서 실현해냈다.
예쁘게 커서 사랑 받으라는 뜻으로 미애라 이름 붙여진 대구 세탁소 집 둘째 딸은 자라서 시집을 읽고 수선화를 가꾸고 연단에 서서 새색시의 마음으로 큰절을 올리겠노라 말하고 아버지뻘 남자 의원들에게 내 앞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며 호통 치는 사람이 되었다. 여성임을 결코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여성으로서의 핸디캡을 지니고 그 자리까지 싸워서 올라갔다. 그러면서도 성큼성큼 걷는 모습엔 일 점 손상이 없다. 앞장서서 나아가는 우두머리의 기상을 만방에 뻗치면서 추미애는 뚜벅뚜벅 걸어간다.
소신 있게 탄핵을 반대했으나 당론이 찬성으로 결정되자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고 환노위원장 시절 더 시일을 끌어서는 안 되겠다며 한나라당 의원들과 동조하여 노동법 날치기를 이끌어냈던 사람에게는 이토록 다채로운 면모가 있었다. 이러한 정치적 행보에 대해, 추미애에게 가해지는 정치적 비판은 추미애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가혹하기도 했다. 여성에게 더욱 공격적인 것은 우리 사회의 경멸스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할 지점은 분명히 있으나 나는 그에 대해서 이제 이 말밖에 할 수 없다. "이렇게 잘생겼는데 왜 그렇게 하셔 가지고." 이념을 배반하게 만드는 얼굴께 경배 올린다. 아름다운 추미애와 그 분의 큰 정치여 영원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