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스피커를 통해 임산부석을 비워두라는 공익광고가 흘러나왔다.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로 “임산부 배려석에 계신 이모 삼촌, 우리 엄마가 지금 힘들대요.”로 시작하는 캠페인이었다.
언뜻 들으면 별 거 아닌데, 왠지 모르게 거슬렸다. 이 찜찜함은 전철을 타고 몇 정거장을 이동할 때가지 계속 됐는데,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자는 다른 캠페인들을 떠올려 보고나서 그 찜찜함의 이유를 알게됐다.
임산부 배려석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캠페인이라 하면, 임산부가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가방 등에 달려있는 임산부 배지를 알아차린 시민들이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게 대부분이다. 이런 광고 속에서 임산부는 언제나 간접적으로 자신의 힘듦을 호소한다. 이날 들었던 공익광고도 마찬가지다. 임산부를 위해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자는 내용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주체는 임산부가 아닌 임산부의 아이였다.
아무 말 하지 않고 힘들어하는 모습만 묵묵히 내비추는 임산부 대신, 배지를 달고 주변 사람들이 알아서 비켜주기를 바라는 임산부 대신, 엄마를 위해 양보를 부탁하는 태아 대신, 임산부가 자기 입으로 직접 “내 몸”이 힘드니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호소하는 건 NG인가?
한 때 임산부 배려석에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라고 써있는 것을 두고 논란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내일의 주인공”이라는 것이 뱃속의 아이를 지칭하는 거라면, 임산부를 임산부 자체로 존중해주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주인공을 품고 있는 ‘캐리어’이기 때문에 존중하는 것이냐고.
힘든 티를 내거나 배지를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남들이 비켜줄 때까지 기다리는 임산부가 등장하는 공익광고는 이제 지겹다. 우리 엄마 운운하며 대신 힘듦을 호소해주는 아기의 목소리도 그다지 반갑지 않다. 내가 보고 싶은 건 새로운, 하지만 충분히 납득가능한 공익광고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는 비임산부에게, 임산부가 직접 “제가 지금 몸이 너무 힘드니 자리 좀 양보해주시겠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넣는 건 어떤가. 말하지 않아도 티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기 보단, 차라리 확실하게 말하고 또 흔쾌히 양보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공익광고가 모두에게 이로운 것 아닐까. 내일의 주인공을 언급하지 않아도, “임산부 배려석”이라는 문구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