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에서 그런 소리가 날 수 있는줄 처음 알았어
“지지직” 그 소리는 흡사 수건이나 붕대 같은 천을 잡고 찢는 소리 같았다. 옆에 있던 사람이 듣지는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소리가 컸다. 버스 계단에서 보도 블록위로 내려와 한두걸음 걸어보는데, 소리가 난 왼쪽 무릎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다행히 못 걸을 정도는 아니어서 그냥 그대로 걸어서 집으로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와 힐을 벗고 평소처럼 생활하다보니 무릎의 통증은 점점 사그라들었지만, 워낙 요란한 소리가 났기에 걱정이 되어서 며칠 후 정형외과에 가봤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엑스레이를 찍어봤다. 그런데 나와 의사선생님이 함께 걱정하던 게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 멀쩡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머쓱. 그럼 그 통증은 무엇이었나 하고 조금 의문도 들었지만, 어쨌거나 무릎이 무사하다니 다행인 일이었다.
문제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한 번 데인 이후로 다시 똑같은 힐을 신고 걸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다시금 관절 어딘가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 걸 듣고 싶진 않으니. 결국 그해 겨울을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던 부티힐은 상자에 넣어져 신발장 맨윗칸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약 5년이 흘렀다.
하이힐 벗는 게 제일 쉬웠어요
나는 탈코르셋을 해야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란 물음엔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좀처럼 하기가 힘들다”라고 답하곤 한다. 가부장제의 구조를 효과적으로 붕괴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내가 가부장제의 한 켠에 발붙이고 살고 있는 만큼 코르셋을 전부 벗어버리기가 힘들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종류의 코르셋을 벗고자 노력한다.
그중에서 하이힐은 내가 가장 쉽게 버릴 수 있는 코르셋이었다. 매일 구두를 신고 출근해야만 하는 직업이 아니었기에 하이힐을 신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당장 감수해야 할 불이익도 없었으며, 인간으로서 제대로 걷고 뛰는 일에 일절 도움이 되지 않는 신발이라는 게 자명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 신발을 신는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나는 그게 결코 나 자신을 위해서라고는 답할 수 없었다. 왜 자진해서 높은 굽위에서 묘기를 부리고, 무릎 관절을 담보로 잡고 걸어다녔는지. 그 답을 곰곰이 생각해 본 후에 나는 무서워서 하이힐을 신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 하이힐을 신지 ‘않기로 한’ 사람이 되었다.
이 시리즈는 그렇게 하나하나씩 코르셋을 벗어나가는 과정의 기록이다. 하이힐을 벗는 건 지금까지 문제없이 대성공을 유지해오고 있지만, 종종 그렇지 못한 종류의 코르셋들도 있었다. 그 이유는 단순히 ‘관성’ 때문일 때도 있었고, 이것이 진짜 코르셋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일 때도 있었다. 앞으로 하나씩 그 과정—아직도 현재진행중인—을 이야기해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