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 첫 데뷔
중학교 2학년인지 3학년인지 되던 때에 처음으로 굽 6cm의 힐을 신어봤다. 어린 나이에 굽 높은 구두를 신는 걸 탐탁지 않아했던 우리 엄마 덕분에, 이 6cm 힐을 신는 게 허락되는 건 어디까지나 엄마와의 외출에 한해서였다.
하이힐을 신는 건 마치 어른의 영역을 슬쩍 훔쳐보는 것만 같았다. 항상 교복에 운동화, 그렇지 않으면 굽낮은 단화를 신는 게 대부분인 중학생이 힐을 신을 수 있는 날이라는 건 그만큼 차려입고 어딘가 재미있는 곳에 놀러가는 날이었으니까.
힐을 신으면 종아리 모양이 더 예뻐보인다는 말은 누누이 들어왔었고, 일단 키가 커보여서 옷맵시도 살고, 윗공기를 마시니 체감되는 기분도 좋다. 아니, 적어도 하이힐을 신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공감하는 듯했고, 힐을 신어보게 된 나도 그렇게 공감하는 듯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곧잘 엎어지곤 했던 나에게 힐을 신고 걷는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붙잡을 수 있는 누군가가 옆에 없으면 불안했다. 사실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을 꼬챙이 같이 날카로운 뒷굽에 지탱해 걸어간다는 게 힘들지 않다면 이상한 거다. 3cm짜리 단화를 신고도 발목을 삐는 일이 많았던 나는 6cm 이상의 구두를 신고 나갈 때면 그래서 온 신경을 걸음걸이에 집중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제 무릎이 쑤시던 게..
6cm였던 굽은 대학생이 되고나선 9cm로 바뀌었다. 내가 하이힐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앞면이 검정 스웨이드로, 뒷면은 가죽으로 된 부티힐이었는데 모양도 예쁠 뿐더러 걷기 편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이힐은 원래 불편한 거고, 그중에서도 가장 불편하지 않은 인생 하이힐을 우연히 만날 수 있으면 행운인 거였다.
대외활동 면접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었다. 공식적인 자리를 간다고 그날도 그 구두를 꺼내 신었다. 높은 구두를 신고서 걷는 일은 암만 편한 신발이라도 어쨌거나 고되다. 더구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된다면 차가 출발하거나 멈출 때마다 긴장을 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별 수 없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걸어다니는 뚜벅이었기에, 그날도 지하철에서 버스로 갈아타 집 근처 정류장에서 내렸다.
정류장에 선 버스에서 내리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당시엔 요즘처럼 저상버스가 보편화되지 않았었기에 내가 탄 버스도 승하차하는 곳에 턱이 높은 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을 9cm짜리 힐을 신고 텅, 텅, 내려갔다. 왼발을 내밀고 온 체중을 실어 계단에 발을 디뎠는데 내 왼쪽 무릎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지지직” 내 무릎 속에 들어있는 뭔가 굉장히 중요한 부위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하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