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을 그만두다 上

핀치 타래코르셋페미니즘탈코르셋

'하이힐'을 그만두다 上

그만두다 시리즈 (1)

수민

하이힐 첫 데뷔

중학교 2학년인지 3학년인지 되던 때에 처음으로 굽 6cm의 힐을 신어봤다. 어린 나이에 굽 높은 구두를 신는 걸 탐탁지 않아했던 우리 엄마 덕분에, 이 6cm 힐을 신는 게 허락되는 건 어디까지나 엄마와의 외출에 한해서였다. 

하이힐을 신는 건 마치 어른의 영역을 슬쩍 훔쳐보는 것만 같았다. 항상 교복에 운동화, 그렇지 않으면 굽낮은 단화를 신는 게 대부분인 중학생이 힐을 신을 수 있는 날이라는 건 그만큼 차려입고 어딘가 재미있는 곳에 놀러가는 날이었으니까. 

힐을 신으면 종아리 모양이 더 예뻐보인다는 말은 누누이 들어왔었고, 일단 키가 커보여서 옷맵시도 살고, 윗공기를 마시니 체감되는 기분도 좋다. 아니, 적어도 하이힐을 신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공감하는 듯했고, 힐을 신어보게 된 나도 그렇게 공감하는 듯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곧잘 엎어지곤 했던 나에게 힐을 신고 걷는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붙잡을 수 있는 누군가가 옆에 없으면 불안했다. 사실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을 꼬챙이 같이 날카로운 뒷굽에 지탱해 걸어간다는 게 힘들지 않다면 이상한 거다. 3cm짜리 단화를 신고도 발목을 삐는 일이 많았던 나는 6cm 이상의 구두를 신고 나갈 때면 그래서 온 신경을 걸음걸이에 집중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제 무릎이 쑤시던 게..

6cm였던 굽은 대학생이 되고나선 9cm로 바뀌었다. 내가 하이힐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앞면이 검정 스웨이드로, 뒷면은 가죽으로 된 부티힐이었는데 모양도 예쁠 뿐더러 걷기 편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이힐은 원래 불편한 거고, 그중에서도 가장 불편하지 않은 인생 하이힐을 우연히 만날 수 있으면 행운인 거였다. 

대외활동 면접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었다. 공식적인 자리를 간다고 그날도 그 구두를 꺼내 신었다. 높은 구두를 신고서 걷는 일은 암만 편한 신발이라도 어쨌거나 고되다. 더구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된다면 차가 출발하거나 멈출 때마다 긴장을 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별 수 없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걸어다니는 뚜벅이었기에, 그날도 지하철에서 버스로 갈아타 집 근처 정류장에서 내렸다. 



정류장에 선 버스에서 내리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당시엔 요즘처럼 저상버스가 보편화되지 않았었기에 내가 탄 버스도 승하차하는 곳에 턱이 높은 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을 9cm짜리 힐을 신고 텅, 텅, 내려갔다. 왼발을 내밀고 온 체중을 실어 계단에 발을 디뎠는데 내 왼쪽 무릎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지지직” 내 무릎 속에 들어있는 뭔가 굉장히 중요한 부위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하편에 계속)

SERIES

그만두다

수민의 최신 글

더 많은 타래 만나기

오늘도 결국 살아냈다 1

매일매일 사라지고 싶은 사람의 기록

차오름

#심리 #우울
하필 이 시기에 고3으로 태어난 나는 , 우울증과 공황발작으로 많이 불안해진 나는, 대견하게도 오늘 하루도 잘 버텨냈다. 우울증과 공황발작이 시작된 건 중3. 하지만 부모는 어떤 말을 해도 정신과는 데려가주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20살이 되고 알바를 하면 첫 번째로 갈 장소를 정신과로 정한 이유이다. 부디 그때가 되면 우울증이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가지면서. 부모는 우울증은 내가 의지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4. Mit Partnerin

여성 파트너와 함께

맥주-

#여성서사 #퀴어
여성 파트너와 함께 이성애 규범과 그 역할에 익숙해진 내가, 동성애를 하기 위한 일련의 역할들과 그 수행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실용적- 불필요한 장식이 없고 기능에 충실한-인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여가로 쓸 수 있는 시간에는 사회에서 ‘여성적’ 이라고 해석하는 복장을 하고 있기를 좋아한다. 하늘하늘하고, 레이스나 프릴이 달려 있고, 패턴이 화려한 옷들. 재미있는 것은 패턴..

보장 중에 보장, 내 자리 보장!

이운

#방송 #여성
나는 땡땡이다. 아마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듣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 팟캐스트는 쓰잘데기 없는 고민에 시간을 올인하고 있는 5천만 결정장애 국민들을 위한 해결 상담소로, 철저하게 비밀을 보장하여 해결해 준다는 취지하에 만들어진 방송이다. 그리고 ‘땡땡이’는 이 취지에 맞게, 사연자의 익명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하다 만들어진 애칭이다. 비밀보장 73회에서..

13. 대화하는 검도..?

상대의 반응을 보며 움직이라는 말

이소리소

#검도 #운동
스스로를 돌이켜보기에, 다수의 취향을 좋아하는 데 소질이 없다. 사람들이 아이돌이나 예능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체온이 2~3도는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대화에 섞일 적당한 말이 뭐 있지?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 뭐라도 이야깃거리를 던져보지만 진심이 없어서인지 어정쩡한 말만 튀어나온다. 결국 혼자 속으로 “난 만화가 더 좋아.."라며 돌아서는 식이다. 맛집에도 크게 관심이 없고, 어째 운동 취향도 마이너한 듯하고.....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3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상속
장례도 끝났고 삼오제(삼우제)도 끝났다. 49재의 첫 칠일 오전, 나는 일하던 도중 이제 식을 시작한다는 가족의 연락을 받고 창가로 나와 하늘을 보며 기도했다. 부디 엄마의 영혼이 존재해서 젊고 건강할 때의 편안함을 만끽하며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을 실컷 다니고 있거나, 혹은 그 생명의 끝을 끝으로 영원히 안식에 들어가 모든 것을 잊었기를. 삼오제까지 끝나면 문상 와 준 분들께 문자나 전화로 감사 인사를 해도 좋..

[제목없음] 일곱 번째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제목없음

#여성서사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참으로 어렵다. 나같은 경우에는 끊임없이 되물어봤다. 그리고 의심했다. '저 사람은 만나도 괜찮은걸까?' '내가 착각하고 있는건 아닐까?' 처음에는 설레기도 하고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연 내가 누군가를 만나도 괜찮은걸까? 순간의 감정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에는 좋으니까로 결론이 난다. 좋은걸 어떡하나? 만나야..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