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이는 왠지 송은이처럼 생겼고, 김숙은 왠지 김숙처럼 생겼다. 송은이에게 ‘김숙’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준다면 어딘지 어색하게 느껴질 것 같다. 김숙이 ‘송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이 둘을 처음보는 사람들일지라도 송은이가 나오는 방송을 보여주며 “보기 중 이 사람의 이름을 고르시오”라고 한다면 ‘김숙’과 ‘송은이’ 중 후자를 고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실제로 사람들이 그렇게 정답을 맞춘다고 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도리언 그레이 효과’라는 게 있다. 내부적인 요인—성격이나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외적인 요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가리킨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이름과 관련해 수행된 실험들은 사람의 이름이 도리언 그레이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제시한다. 우리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느냐에 따라 우리의 성격이,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고, 따라서 우리의 외모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름은 그냥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이름에는 어쩔 수 없이 특정한 ‘이미지’가 연결되게 되어있다. ‘봉순’이라는 이름과 ‘예원’이라는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인상이 같지 않은만큼, 각각의 이름을 부여받은 개인은 그에 따라 성격도 외모도 다르게 형성되어갈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때부터 여자애치곤 목소리가 별로 예쁘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치마보다 바지를 입는 날이 더 많았다. 탈코르셋이란 말이 세상에 등장하기 한참 전이었지만 이미 내 옷장은 화려한 프린트나 프릴과 레이스가 달린 옷보다는 심플하게 떨어지는 무늬없는 옷들이 채우고 있었다. 악세서리와도 담을 쌓고 산다. 이건 내가 ‘수민’이기 때문일까? 내 이름이 ‘하나’였거나 ‘세라’ 또는 ‘세련’이었다면 보다 화려하게 꾸미고 좀더 높다란 목소리를 냈었을까?
‘하나’라는 이름에 기대하는 바가 ‘수민’이라는 이름에 기대하는 바와 다르기 때문에 결과에도 차이가 나게 된다면, ‘여자’라는 이름은 어떠한가. 사람들이 ‘여자’라는 이름에 무엇을 기대했고 또 그 이름을 부여받은 나는 ‘여자’라고 이름지어졌다는 이유로 무언가 의식하지 못한 채 나를 바꾸어나간 부분은 없을까. 과연 ‘여자’라는 이름에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정당한 걸까. 애초에 왜 ‘세라’와 ‘하나’는 남자 이름이 아니라 여자 이름이었나. 인생을 27년 산 이 시점에서 나는 왜 여자 이름도 남자 이름도 아닌 것 같다는 이유로 ‘수민’을 마음에 들어하게 되었을까.
**Zwebner, Y. & Sellier, Anne-Laure & Rosenfeld, N. & Goldenberg, Jacob & Mayo, Ruth. (2017). We look like our names: The manifestation of name stereotypes in facial appeara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2. 527-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