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2)

핀치 타래코르셋이름페미니즘

너의 이름은 (2)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수민

송은이는 왠지 송은이처럼 생겼고, 김숙은 왠지 김숙처럼 생겼다. 송은이에게 ‘김숙’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준다면 어딘지 어색하게 느껴질 것 같다. 김숙이 ‘송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이 둘을 처음보는 사람들일지라도 송은이가 나오는 방송을 보여주며 “보기 중 이 사람의 이름을 고르시오”라고 한다면 ‘김숙’과 ‘송은이’ 중 후자를 고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실제로 사람들이 그렇게 정답을 맞춘다고 한다.** 

©올리브
©올리브


심리학에서 말하는 ‘도리언 그레이 효과’라는 게 있다. 내부적인 요인—성격이나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외적인 요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가리킨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이름과 관련해 수행된 실험들은 사람의 이름이 도리언 그레이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제시한다. 우리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느냐에 따라 우리의 성격이,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고, 따라서 우리의 외모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름은 그냥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이름에는 어쩔 수 없이 특정한 ‘이미지’가 연결되게 되어있다. ‘봉순’이라는 이름과 ‘예원’이라는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인상이 같지 않은만큼, 각각의 이름을 부여받은 개인은 그에 따라 성격도 외모도 다르게 형성되어갈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때부터 여자애치곤 목소리가 별로 예쁘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치마보다 바지를 입는 날이 더 많았다. 탈코르셋이란 말이 세상에 등장하기 한참 전이었지만 이미 내 옷장은 화려한 프린트나 프릴과 레이스가 달린 옷보다는 심플하게 떨어지는 무늬없는 옷들이 채우고 있었다. 악세서리와도 담을 쌓고 산다. 이건 내가 ‘수민’이기 때문일까? 내 이름이 ‘하나’였거나 ‘세라’ 또는 ‘세련’이었다면 보다 화려하게 꾸미고 좀더 높다란 목소리를 냈었을까? 

‘하나’라는 이름에 기대하는 바가 ‘수민’이라는 이름에 기대하는 바와 다르기 때문에 결과에도 차이가 나게 된다면, ‘여자’라는 이름은 어떠한가. 사람들이 ‘여자’라는 이름에 무엇을 기대했고 또 그 이름을 부여받은 나는 ‘여자’라고 이름지어졌다는 이유로 무언가 의식하지 못한 채 나를 바꾸어나간 부분은 없을까.  과연 ‘여자’라는 이름에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정당한 걸까. 애초에 왜 ‘세라’와 ‘하나’는 남자 이름이 아니라 여자 이름이었나. 인생을 27년 산 이 시점에서 나는 왜 여자 이름도 남자 이름도 아닌 것 같다는 이유로 ‘수민’을 마음에 들어하게 되었을까.  



**Zwebner, Y. & Sellier, Anne-Laure & Rosenfeld, N. & Goldenberg, Jacob & Mayo, Ruth. (2017). We look like our names: The manifestation of name stereotypes in facial appeara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2. 527-554.

수민의 최신 글

더 많은 타래 만나기

[제목없음] 일곱 번째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제목없음

#여성서사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참으로 어렵다. 나같은 경우에는 끊임없이 되물어봤다. 그리고 의심했다. '저 사람은 만나도 괜찮은걸까?' '내가 착각하고 있는건 아닐까?' 처음에는 설레기도 하고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연 내가 누군가를 만나도 괜찮은걸까? 순간의 감정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에는 좋으니까로 결론이 난다. 좋은걸 어떡하나? 만나야..

주접

플레잉 카드

헤테트

#플레잉카드 #트럼프카드
버드 트럼프Bird Trump 원고를 하고 있는데 택배가 왔다. 까마득한 언젠가 텀블벅에서 후원한 플레잉 카드 (=트럼프 카드) ! 원래 쟉고 소듕한 조류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맹금류를 제외한 새를 무서워하는 편) 이건 보자마자 이성을 잃고 냅다 후원해버렸다. 그 뒤로 잊고 살았는데 오늘 도착. 실물로 보니 과거의 나를 매우 칭찬해주고 싶다. 아름답지 않은 구석이 없어, 세상에. 하다못해 쓸데없이 많이 들어있는 조..

병원이 다녀왔다

..

낙타

정신병원과 한의원에 다녀왔다 이번엔 둘다 끝까지 치료하고 싶다.....

4. Mit Partnerin

여성 파트너와 함께

맥주-

#여성서사 #퀴어
여성 파트너와 함께 이성애 규범과 그 역할에 익숙해진 내가, 동성애를 하기 위한 일련의 역할들과 그 수행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실용적- 불필요한 장식이 없고 기능에 충실한-인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여가로 쓸 수 있는 시간에는 사회에서 ‘여성적’ 이라고 해석하는 복장을 하고 있기를 좋아한다. 하늘하늘하고, 레이스나 프릴이 달려 있고, 패턴이 화려한 옷들. 재미있는 것은 패턴..

13. 대화하는 검도..?

상대의 반응을 보며 움직이라는 말

이소리소

#검도 #운동
스스로를 돌이켜보기에, 다수의 취향을 좋아하는 데 소질이 없다. 사람들이 아이돌이나 예능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체온이 2~3도는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대화에 섞일 적당한 말이 뭐 있지?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 뭐라도 이야깃거리를 던져보지만 진심이 없어서인지 어정쩡한 말만 튀어나온다. 결국 혼자 속으로 “난 만화가 더 좋아.."라며 돌아서는 식이다. 맛집에도 크게 관심이 없고, 어째 운동 취향도 마이너한 듯하고.....

보장 중에 보장, 내 자리 보장!

이운

#방송 #여성
나는 땡땡이다. 아마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듣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 팟캐스트는 쓰잘데기 없는 고민에 시간을 올인하고 있는 5천만 결정장애 국민들을 위한 해결 상담소로, 철저하게 비밀을 보장하여 해결해 준다는 취지하에 만들어진 방송이다. 그리고 ‘땡땡이’는 이 취지에 맞게, 사연자의 익명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하다 만들어진 애칭이다. 비밀보장 73회에서..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