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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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폭력

<퀴어> 카테고리의 최신 기사

언니, 우리 이민갈까? 11. 퀴어를 위한 나라는 없지만

유의미

파트너십 비자를 신청할 때의 일이다. 한국에서 신체검사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관계를 파트너라고 써 달라고 하니까 단어를 이해 못했는지 남편이냐고 몇 번을 물었다. 비자 신청에 혼선이 생기는 게 싫어서 정확하게 하고 싶었지만, 그 자리에서 커밍아웃하고 싶지는 않았다. 파트너로 표기해 달라고 여기저기에 반복해서 요청했으나 하나같이 남편인지 묻는 집요한 상황에 결국 남편이라고 쓰시든지 마음대로 하시라고 해버렸다. 뉴질랜드에서는 그런 일이 아직 없다. 파트너가 아직 입국하지 않아 대신 전화했을 때 은행 업무 상담도 가능했고, 공동 계좌를 만들러 갔을 때도 무슨 관계인지 왜 만드는지 쓸데없는 개인적인 정보를 물어보지 않았다. 고양이 보험...

허윤, 오혜진의 백일몽 3. 인공의 세계

허윤

백일몽 [day-dreaming, 白日夢]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상하는 것.   쉬는 시간에 일본 드라마를 보는 것은 나의 오래된 취미다. 일에서 돌아와 잠들기 전, 혹은 혼자 밥을 먹을 때 보기에 가장 적절한 것이 일본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한 회씩 끊어지는 에피소드, 가벼운 사건 전개, 감정이입을 요구하지 않는 인물 등.  나는 일본 드라마 특유의 인공미를 무척 좋아한다. “네, 이것은 다 드라마 속 이야기입니다.”라는 설정이, 오히려 재현물로서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제 사람들이 다 떠나고 없는 일본 드라마의 유령을 지키고 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일본의 황금기를 함께 지켜본 일본 드라마는 2010년대 이후 눈에 띄게 하락세를 드러냈다. 시청률이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작품의 문제의식이나 질이 낮아진 것이 더 문제였다. 한국에서 일본 드라마를 시청하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 드라마가 케이블과 종편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거쳐 발전하고 있는 중, 일본 드라마는 도리어 그 문제의식이나 재현방식이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 시장에서 일본 드라마의 점진적 후퇴에는 한국 드라마의 질적, 양적 성장이라는 배경도 존재한다. 일러스트 이민 ...

언니, 우리 이민갈까? 2. 내가 선택한 지옥

유의미

지난 3월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총격 테러가 발생했다. 이민에 반대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의 테러였다. 50명이 사망했고 또 50명이 다쳤다. 테러범은 이슬람 사원을 공격했고, 많은 무슬림 교도들이 희생됐다. 같은 날, 내가 지내던 오클랜드에서도 폭발물로 의심되는 가방이 발견됐다.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는 기사를 봤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다음 날 시내에 나가니 평소와 달리 이상할 만큼 백인들밖에 안 보였다. 주차장에서 깨진 유리창을 보고 덜컥 겁이 났고, 길에서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던 백인 남성이 무서웠다. 그날 외출을 하기 전에 수없이 고민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의연하게 일상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나오자...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그리고 로맨틱하게

유의미

결국, 왕자님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어릴 때 읽은 동화는 모두 그렇게 끝났다. 나중에는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아도 결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주인공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왕자님을 만나 행복하게 산다.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던 신데렐라는 파티에서 왕자님을 만나 팔자를 폈고, 독이 든 사과를 먹은 백설공주도 왕자의 키스로 목숨을 구한다. 아, 인어공주는 이웃 나라 왕자님을 사랑하다 물거품이 됐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녀들에게는 모두 왕자님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교롭게도 다들 이성애자였나보다. 동화뿐만이 아니다. 영화 속 여주인공은 모두 남자를 사랑했다. 노래 가사에서도 애니메이션에서도 소설에서도 심지어 학교...

'좋은' 성소수자는 과연 '좋은'가

루인

성소수자 운동에서 동성애가 아닌 다른 성소수자 관련 범주로 활동하는 활동가에게 정체성 범주의 가시화는 매우 중요한 의제다. 이성애를 자연 질서로 여기는 사회에서 비이성애 실천이나 트랜스젠더퀴어와 관련한 다양한 범주는 모두 특이하고 이상한 행위거나 ‘동성애’로 인식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가시화 운동은 세상 모든 사람이 이성애-비트랜스가 아니라고 말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려는 작업이기도 하다. 트랜스가 정신 이상 및 이상 성욕과 관련 있는 변태 행위고, 무성애는 미성숙하고 아직 좋은 사람을 못 만나서 생긴 현상/착각이며, 바이섹슈얼은 문란하고 자신을 동성애자로 인정할 용기가 없어 변명하는 행위...

젠더 다양성: 논의를 복잡하게 만들기

루인

최근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에게서 예전에는 학생들이 젠더 위계 질서를 말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면 요즘은 젠더 위계 질서보다 젠더 다양성을 말하는 것에 관심이 더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트랜스젠더퀴어 혹은 젠더 다양성을 주장하는 일련의 흐름으로 인해 여성과 남성 사이에 발생하는 불균형한 차별, 젠더 위계 질서를 말하기 어려워졌다는 식의 주장은 꽤나 널리 퍼져 있다. 이 주장은 젠더 위계 질서를 다루는 논의와 젠더 다양성 논의는 서로 모순되거나 배척한다는 이해를 전제한다....

나라는 교회에게 무엇을 감사한단 말인가?

루인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처음으로 서울시청광장에서 개최되기로 한 2015년 봄, 새에덴교회의 소강석 목사는 성소수자 운동이 네오마르크시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성소수자는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라는 내용을 두 차례에 걸쳐 설교했다. 그 후, 일부 기독교 교단은 그 해 서울퀴어문화축제 개최 기간이 끼어있던 주간을 동성애 반대 주일로 지정하고 소속 교회에서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내용으로 주일예배 설교를 진행했다. 급하게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설교를 준비해야 했던 목사 중 일부는 소강석 목사의 설교 내용 일부 혹은 전부를 그대로 사용했다. 동시에 성소수자가 한국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라는 소강석 목사의 주장은 현재 동성...

깃발의 정치학

루인

인천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의 반응은 ‘왜 인천에서?’였지만, 사실 2016년까지 서울과 대구에서만 열린 퀴어문화축제는 2017년 부산과 제주에서 첫 행사가 열렸고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지역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기 시작했다. 2018년 4월에는 전주시에서 처음 퀴어문화축제가 열렸고 10월에는 광주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부산, 제주, 전주(광역시가 아니다), 광주 등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환영했다. 하지만 인천광역시에서 열린다고 했을 때, 반응은 달랐다. 인천은 인구 300만 명에 가까운 대도시이자 광역시지만 서울 주변에 있는 위성도시와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동시에 지난 6.1...

우리 잘 결혼할 수 있을까

유의미

결혼은 안 할거에요? 직장 동료가 묻는다.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더 복잡한 거짓말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런 거 관심 없다고 해야 할 것만 같다. 나이를 몇 살 더 먹자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한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꿈꾸는 표정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알콩달콩 예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너는 그런 거 관심 없잖아. 친구들은 내가 결혼을 별로 안 하고 싶은 줄 안다. 젊은 날의 내가 ‘사랑은 이데올로기고 연애는 성역할 수행’이라고 바락바락 우기던 게 기억에 남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예전엔 정말 결혼을 꿈꾸지는 않았다. 자유로운 삶이 좋았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는 게 즐거웠다. 우리 엄마도, 엄마...

쉿! 조용해지는 커밍아웃

유의미

11시 55분, 교과서를 덮고 오른발을 책상 밖으로 미리 뻗는다. 5분 뒤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제일 먼저 뛰어나가기 위해서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날도 급식실에 일등으로 도착했다. 그런데 그날의 점심시간은 유독 초조했다. 제일 먼저 밥을 받아놓고도 먹는 둥 마는 둥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친구들은 어디 아픈 건 아니냐며 나를 걱정했다. 그 다정함이 새삼스럽게도 소중해서 괜히 슬퍼졌다. 조금 뒤에도 너희는 여전히 나에게 다정할까?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하는 날이었다. 나는 두려웠다. 모두 한순간에 나를 경멸하게 될까 봐 친구를 잃어버릴까 봐 겁났다. 동성애자에 관한 이야기를 해본 적은 있지만, 우리와 관련 없는 사람들 얘기였...

나중은 없는, 지금 우리의 축제를 위해

유의미

말과 탈 2017년 7월 15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제18회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오십 명이 참석했던 대학로의 첫 퍼레이드 행진과는 달리, 이제는 100개가 넘는 단체가 부스로 참여하고, 총 8만 5천 명이 참석한 대규모의 행사가 되었다. 한편 이렇게 세간의 이목을 끄는 만큼 해가 갈수록 말도 많고 탈도 많아진다. 이번 축제 이후의 그런 ‘말’과 ‘탈’은, 축제와 전혀 관계 없는 내가 들은 것만 해도 셀 수 없다. 혐오 세력의 근거 없는 비난은 그렇다 쳐도, 지지자들의 입장에서도 아쉬웠던 점과 부족했던 점에 관한 토로와 비판이 많이 나왔다. 사실 처음에는 그런 말들이 화가 났다. 밀도 높은 업무를 직접 할 자신은 없지만, 성...

티나는 부치, 일반 스타일

유의미

[서울/25] 신촌에서 맥주 한잔해요. 머짧 두 명, 일스 한 명 있어요. 맥주 마시기 부담스러운 외모는 아님. 그대들도 그랬으면. [경기/17] 키 150대 마르고 애교 많은 긴머리 일스 데려갈 예쁜 언니 없나? 빠른 오프, 사심 환영. 내적 외적 괜찮으면 동갑, 연하도 ok [부산/31] 주말 쉬는 직장인. 부담스럽지 않게 천천히 알아가고 싶어요. 영화, 여행, 운동 좋아해요. 꾸밀 줄 아는 한글자 분들 연락 주세요. 레즈비언 전용 메신저에 등장할 법한 쪽지들이다. 내가 지금 가상으로 구성해본 것이지만, 이 메신저를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쪽지를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애인이나 친구를 찾는 레즈비언들은 구구절절 외모와 성격을 명시한다. 이 메신저는 글자수의 제한이 있는 짧은 쪽지 위주의 공간이라 이 정도에서 끝나지만, 이전에 웹사이트를 이용하던 시절엔 더욱 세세하게 원하는 이상형의 조건을 한 페이지씩 늘어놓는 경우도 많이 봤다. 자기소개와 선호하는 상대에 관한 예시에는 ‘숏컷’, ‘긴 머리’, ‘단발’과 같은 머리 길이에 관한 언급이 빈번하게 들어간다. 그 외에도 화장을 하는지, 하이힐을 신는지, 옷을 캐주얼 하게 입는지 등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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